얼마전,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제목이었다.
가정 경제에 빈혈이라.. 정말 공감가는 말이다.
돈 쓸 곳은 줄어들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늘어만 가는데
소득의 통로는 늘기는 커녕 점점 막혀가는 느낌이고
크고 작은 부채는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일어날 지경이다.
시대가 이렇다보니
이미 많은 부분의 지출을 차단시키고자 부단히도 노력해 왔지만
15년 살림을 해 본 결과,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줄지않는,
또 줄이기가 힘든 부분이 바로 식비였다.
옷은 사고 싶은 걸 당분간은 참을 수 있고
생필품도 꼭 필요한 것들만 구입해 줄일 수 있지만,
먹는 것과 관련된 비용은 일정한 금액 이하로는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영유아기에는 먹는 양이 그리 많지않아 잘 못 느꼈는데
두 아이가 초등1, 6학년인 요즘, 아이들은 정말 무서울 만큼 먹는다.
유아기에 아이들 밥 해 먹였던 건, 소꼽장난처럼 여겨질 만큼
양적으로도 많이 먹고 질적으로도 다양한 재료와 영양소를 필요로 한다.
가끔 아니 자주, 부모가 먹는 분량까지 넘본다..;
특히 아들이 그런데, 자기 몫은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내가 먹고 있는 걸 간절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쳐다볼 때가 많다.
"엄마.. 뭐 또 없어요?"
실컷 저녁 다 먹어놓고 이런 말 할 때도 참 많다.
매달 들어오는 수입은 늘어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이 일을 어쩌나.
식비를 줄이기위한 이런저런 궁리 끝에 시도해 본게
바로 이 부엌살림 다이어트였다.
일단, 매번 장보러 갈 때마다 그날 기분대로 사들였던 식재료 구입을 차단시키고
부엌에 이미 있는 것부터 먹기 시작했다.
어찌된 것이, 냉장고 속은 현실의 시간과는 흐르는 속도가 다른건지
엇그제 넣어둔 것 같은데 벌써 몇 주,
냉동실은 몇 달이나 훌쩍 지나있는 것들이 참 많다.
곧 먹을 거야, 언젠간 먹겠지.. 하는 마음으로.
냉장고를 열면 우리집에 뭐뭐가 있는지, 이 재료들로 뭘 해 먹을 수 있을지
금방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리를 시작했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일주일,
길어도 2주일 안에는 다 먹을 수 있을 양만큼만 보관하기로 했다.
냉장고 공간을 3/4만 채우기로 정했는데, 벌써 몇 년째 살림 다이어트를 하다보니
이젠 냉장고 문을 열면 한 눈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파악이 된다.
나는 이게 너무 만족스럽고 좋은데, 가끔 친정 엄마가 오실 때가 문제다.
우리 가족을 아주 불쌍하게 여기신다..;
좋은 식재료가 가장 신선할 때 조리해 먹기,
매번 식재료를 사기보다, 냉장고에 이미 있는 것들의 조합으로만 만들어 먹는 연습하기,
냉동 보관은 일정한 분량을 넘기지 않도록 유지하기,
밑반찬도 조금씩 만들어 남기거나 버리지 않기 ...
이렇게 몇 년을 하다보니, 일단 외식하는 횟수가 훨씬 줄었다.
조미료 범벅의 바깥음식보다,
집에 있는 좋은 쌀로 금방 지은 밥에 김을 싸 먹는 게 훨씬 맘이 편했다.
그리고 또 하나 드는 생각은,
아이들에게 값비싼 보약이나 영양제를 사 먹일 돈으로
좋은 식재료와 제철 채소들로 제때 깔끔하게 해 먹이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아이들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냉장고 속을 뭘로 사서 채울까가 아니라,
오늘은 또 어떤 걸 꺼내 요리해서 좀 더 비울까를 생각하는 식으로 변한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지갑에서 나가는 돈은 이미 줄어든 셈이니까.
냉장고 속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나니,
부엌살림 다이어트에도 조금씩 의욕이 생겼다.
식재료를 꺼내서 효율적으로 재빨리 조리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자잘한 물건들, 거의 쓰지 않는 물건들이 부엌에 얼마나 많은지는
살림해본 주부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우리집도 정말 어마어마했다.
받은 물건들, 신혼 때부터 가지고 있지만 쓰지 않는 물건들,
비싼 돈을 주고 샀지만 너무 무거워서, 아까워서 쓰지않는 냄비와 식기들..
옷도 입는 옷만 계속 입게 되는 것처럼
부엌살림도 그렇다. 손에 착 달라붙고 쓰기 편하고 만만한 것들만 쓰게 된다.
냄비, 조리도구들은 종류별로 그런 것들만 모아 한 자리에 모았다.
꺼낼 때도 기분좋고 사용한 후 다시 보관할 때도 수월하다.
열어볼 때마다 기분좋고, 더 이상 내게 필요한 게 없다, 충분하다 확신이 드니
더 이상 부엌살림 쇼핑에는 욕심을 내지 않게 되었다고
온라인 쇼핑몰을 보아도 가끔 구경만 할뿐, 쉽게 현혹되지 않는 내가 자랑스럽다.^^
돈 나가는 구멍이 차단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어딘가.
친환경 독일제 주방용품이니, 북유럽 주방용품이니..
그런 물건들이 살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라는 생각은
정말 착각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독일제, 프랑스제 냄비들이 없으면 왠지 내 살림이 초라할 것 같은
그런 어리석은 생각은 누구 주입시켰던 걸까.
효율적이고 즐거운 부엌일을 원한다면
불필요한 물건의 양을 줄이고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
부엌 공간의 여백이 생기면,
꼭 그 먼 북유럽 주부들의 살림도구까지 끌어들이지 않아도
주방이 빛날 수 있다.
서랍장 구석에 잠자던 소품들을 깨끗해진 조리대 옆에 걸어두니
이게 이렇게 예뻤나..싶다.
다 바자회나 100엔숍에서 산 몇 천원을 넘지 않는 물건들이다.
부엌을 다 정리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심플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 건,
작가가 미리 써 둔 초고를 가지고 원고를 다듬어 가는 것과 같다는 것.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원고를 처음부터 쓰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법이다.
일단 쓰기 위해 책상에 앉기까지가 시간이 걸리고,
글 전체를 구상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기위해 책을 뒤지고 이리저리 검색을 하고,
그럼에도 글이 쉽게 안 풀릴 땐 자주 서성이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겨우 초고가 완성되면 그 다음 퇴고의 과정이 또 남아있다.
하지만, 미리 써 둔 초고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의 절반 이상은 완성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부엌살림도 그런 것 같다.
효율적으로 꾸려진 공간과 꼭 필요한 식재료가 금방 파악되는
부엌에 서 있는 주부는 이미 초고를 손에 든 작가와 같다는 것.
부엌일이든 글쓰기든 공부든
다 그런 것 아닐까.
기본이 갖춰져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리고 또 즐겁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형성된 자신감은 외부의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된다.
마트 진열대의 유혹에도, 온라인 쇼핑몰의 아름다움에도
내가 주체가 되어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
불필요한 소비가 대폭 줄고 돈이 모이게 된다.
부엌살림 다이어트.
일단은 냉파.. 냉장고 파괴, 해체부터 시작해 보자.
우리집 냉장, 야채, 냉동실을 어느 작은 구멍가게라고 생각하고
쇼핑하듯 하나씩 골라내 보자.
늘 돈이 없다 하소연했던 게 부끄러워질 만큼,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재료들로 주말 식단을 꾸려보자.
이번 주말동안 지불예정금액이었던 돈만 모아도
다가올 설날을 조금 더 여유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냉장고에 든 재료 모두를 돈으로 대충 환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이미 식재료 부자라고 느낄 수 있다면,
바로 그때가 돈이 모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