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과학일까, 수학일까?>라는 어린이책이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행위가 바로 요리이며,
힘들고 귀찮지만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평생 해야하는 것이 요리라는 걸,
어린이들이 알기 쉽게 이야기한 책이다.
아이들은 초등 3,4년만 되도 수학 시간에 ml,l,g,kg 에 대해 배우고
동,식물이나 물리적, 화학적 반응을 다룬 본격적인 과학공부가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요리는 수학과 과학은 물론,
사회(음식을 통해 배우는 각 지역과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이야기)나
미술(색의 조화와 비율 등) 등의 교과까지 통합적으로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고질적인 교육 문제가
조기교육과 사교육에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어쩌면 오랜 세월동안 '삶과 교육을 분리' 해 온 현실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아이들이 1kg는 몇 g이 되는지 공식처럼 외우게 할뿐,
거의 매일같이 먹는 달걀 하나, 사과 한 개 무게가 몇 그램 정도인지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소스나 양념장은 물론 우유에 코코아 분말을 넣을 때도 비율을 어떻게 맞추어야
맛있어지는지, 조리법과 수학은 우리 엄마들이 부엌에서 매일같이 다루는
일상이자, 삶의 전공 분야인데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요리 초보인 아이들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
수학과 과학을 즐겁게 경험하면서도 30분 안에 마법같은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요리 두 가지를 소개해 볼까 한다.
아이가 만드는 치즈와 팝콘!!
이미 방송에서도 많이 소개된 리코타 치즈 만들기를 아이들과 함께 해 보았다.
정말 간단하단 소문을 워낙 많이 듣긴 했지만, 직접 해 보니 더. 간단했다.^^
30여 분만에 우유가 치즈로 변신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진작 만들어 보지 못한게 후회가 될만큼 쉽고 재밌었다.
치즈를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주말 오전에 아이들과 만들어
빵이나 샐러드용으로 먹으면 딱일 듯.
재료는 - 우유 1리터, 레몬즙 3,4큰술(없으면 식초), 소금 1작은술
로 했는데, 레시피에 따라 조금씩 차이나기도 하니 다른 레시피도 참고 바람.
- 위 사진에서처럼, 일단 냄비에 분량의 우유와 레몬즙, 소금을 넣고
약한 불에 천천히 끓여준다.
- 몇 분 지나면 치즈가 보슬보슬하게 응고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재밌다.
- 약한 불로 조리하니, 어른이 지켜보는 조건으로 유아기 아이도
천천히 나무주걱으로 저으면서 만들 수 있고, 초등이면 제법 잘 할 수 있다.
- 30분 정도 시간이니, 6-10살 정도의 아이들이 집중하기에 딱 적당할 듯 하다.
요리에 아직 익숙하지않거나, 어린 아이들일수록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지나치게 길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 30분이 지나도 냄비 속에선 큰 덩어리로 뭉쳐지지 않지만,
면보에 부어 물기를 빼고 치즈를 걸러내면, 치즈다운 모양이 드러난다.
- 이때, 너무 오래 끓이거나 물기를 너무 많이 빼면 치즈 식감이 퍽퍽해질 수 있으니 주의!
그릇에 담기도 전에 손으로 집어먹어 얼마 남지 않은 완성샷!
정말 치즈네! 신기하다! 우리가 만들었어! ...
뭐 이런 감탄사들이 가장 먼저 오간다.
몇 등분으로 나눌 지, 식구 수나 먹기 편한 크기에 따라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해서 잘라보게 하면
수학에서 배운 분수를 이때 적용해 써 먹을 수 있다.
이렇게 한번 실체험을 하고 나면, 치즈라는 발효식품에 대해 다시
인식하게 되고 그냥 허옇게 보였던 우유가 단백질과 물 성분으로 분리되는 과정,
치즈의 다양한 종류와 차이, 치즈를 즐겨먹는 문화권의 역사와 음식문화까지
예전보다 좀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번엔 팝콘 만들기.
전자레인지로 돌려 먹는 봉지 팝콘은 버터가 많아 손이 미끌거리고
좀 느끼하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냄비에 팝콘용 알갱이랑 버터(또는 식용유), 소금을 조금 넣고 뚜껑을 닫고
처음엔 중간불 정도, 팝콘 알갱이가 터지기 시작하면 조금씩 불을 줄여가며
다 튀겨질 때까지 뚜껑을 열지 말고 기다려보자.
버터나 식용유 양이 너무 적으면 팝콘이 탈 수 있으니 주의!
사람이나 음식이나 역시 비율이 중요하다.^^
초등 고학년 수학에 이 비율 문제가 참 많이 나오는데, 추상적이기 보다
이렇게 여러번 요리를 하다보면 몇 %가 전체 양의 어느 정도인지 감이 생기게 된다.
아이들이 가장 집중하는 시간^^
냄비 뚜껑은 가능하면 유리로 되어있으면 좋다.
팝콘이 부풀어오르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으니.
이걸 처음 해 보는 아이, 그리고 어린 아이들일수록
굉장히 신기해하고 재밌어 한다.
요리 시간도 몇 분밖에 안 걸리는데다, 단숨에 딱딱한 팝콘 알갱이가
사서 먹는 하얀 팝콘으로 변하는 마법같은 과정을 직접 보면서도 믿기 어려워 한다.
사실은 팝콘 알갱이 속에 있던 수분이 열에 의해 변화하면서 일어난 현상일 뿐인데.
과학은 교과서나 실험실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매일 일상을 보내는 집안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어떤 과학 현상들이 벌어지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자.
3,4살 때부터 누나와 팝콘을 집에서 만들어 먹던 둘째가
어느날, 요리법을 적은 메모 하나를 가져 왔다.
어린이 프로를 티비에서 보던 중에 <캬라멜 팝콘> 만드는 레시피가
있었던 모양인데, 그걸 얼른 받아적었던 모양이다.
누나만 있으면 엄마 없이도 간단한 요리는 둘이서 만드는데
캬라멜 소스 만들면서 손가락으로 얼마나 찍어먹는지..
글쓰는 걸, 꼭 필요할 때 외엔 별로 즐기지않는 사내 녀석인데
이제 요리할 땐 재료와 분량이 중요하단 걸 확실하게 알아가는 듯.
캬라멜 팝콘 만들기
- 팝콘 한 봉지랑 버터 40그램, 설탕 60그램
급하게 받아적느라 삐뚤삐뚤한 아들의 레시피 메모가 너무 귀여워
엄마는 또 심각한 아들앓이를^^
이날 해 본 <캬라멜 팝콘 만들기>를 주제로 초등1학년이었던 둘째가
일기를 써 갔는데, 선생님께 굉장히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글이 무척 생생해서 맛있는 팝콘 냄새가 진짜 나는 것 같다며
국어 시간에 친구들에게 이 일기를 발표하기도 했다고..
요리는 레시피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물론, 만들어 먹은 생생한 경험을
글로 기록하고 싶은 의욕도 길러준다.
완성된 캬라멜 팝콘은 각자 한 봉지씩 담아 들고
거실에 모여 디비디보며 주말 오후를 ..
달콤하고 따뜻한 팝콘 한 봉지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된 아들.
그 많던 앞니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만들자 마자 너무 맛있어 엄마인 나까지 허겁지겁 집어먹느라
과정샷을 거의 찍지 못했다.
일단 검색해 보면 멋진 사진들과 더 자세하고 친절한 레시피들이
차고 넘치니 참고해서 아이들과 꼭 만들어 보시길.
수학, 과학 공부는 물론 사회, 문화, 국어, 영어 공부까지 되는 요리교육.
요즘 인공 지능이다 뭐다 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막연한 불안에 떨기 보다,
당장 아이들과 즐겁게 오늘 하루를 보내는 것,
그리고 미래에 중요한 삶의 기술이 되어줄 요리를 하나라도 더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학원과 학습지에 맡겨두었던 가공된 교육을
우리 삶 곁으로 하나씩 되돌려 오는 일.
시간이 많이 걸릴 지 모르지만
가정은 최소한 20년간 아이를 품는 공간이다.
서둘지 않고 하나씩 천천히, 아이들과 요리해 가다보면
수학과 과학 뿐 아니라, 삶에 대한 아이의 의욕과 동기,
부모와의 소통까지 키워주는 고마운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부엌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익숙치 않은 부모일수록,
한번 할 때마다 10년씩 늙는다;;
그런데.. 이것도 하다보면 요령이 는다.
결국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연습이 필요하다.^^
팝콘과 치즈는 실패가 거의 없으니 주말에 꼭 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