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의료기록이 다 모였다. 수집을 시작한 지 한 달만의 일이다. 우리가 다니는 아동전문병원의 피부과, 영상의학과, 정형외과, 비뇨기과에 각각 전화를 넣었더니 각 과에서 의료기록 외부 공개 동의서를 집으로 보내왔다. 각 과마다 한 장씩, 동의서에 서명을 해서 보내고 나니 우편으로 이메일로 속속—이라고 하기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의료기록이 도착했다. 지난 3년간 찍은 영상 자료(MRI 3회, 엑스레이 2회, 초음파 2회)도 모두 CD에 담겨왔고, 그간 진료 때마다 상담하고 진료받은 내역이 담긴 리포트가 A4 용지 수십 장에 출력되어 왔다. 재작년 탈장수술 때의 전후 사정과 수술 당시, 그리고 수술 이후 결과를 담은 리포트도 왔고, 혈액검사 결과도 가장 최근 것과 그 전 것이 A4지 한 장에 요약되어 담겨왔다.
한 장 한 장, 리포트를 넘겨보다가 흠칫 놀랐다. 그날 그날의 진료/상담 내용이 생각보다 자세히 기술되어 있어서다. 특히 아이의 상태를 묘사하는 나의 말과 그 마음을 귀담아 들었음이 드러나는 대목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놀람은 때때로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사실 그간 의료진과의 대면은 나에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KT는 확실히 알려진 게 별로 없는 병이어서 늘 뭔가 공부하면서 의문점을 기록해놓지 않으면 의사들을 만났을 때 물어볼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병원 약속이 다가오면 며칠을 긴장하며 최대한 많은 질문을 메모해가려고 애쓴다. 그러면 의사들은 내가 메모해 간 내용을 다 물어볼 때까지 기다려준다. 때로는 질문 내용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뒤죽박죽, 한탄하듯 뱉어내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에도 의사들은 나를 격려하며 성의껏 들어준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협진에서 나중에 있을지 모를 수술 얘기를 하다가 격앙된 나를 보고 방사선과 의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한번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지금 엄마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하자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자는 거예요. 여기 우리 모두, 당신 압박하려고 서 있는 거 아니니까 긴장 풀어요. 우리, 당신 도와주러 온 거예요.”
의사들이 먼저 이렇게 말해주면 마음을 가다듬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여러 전문가 앞에서 아이의 상태와 치료 가능성을 놓고 질문하고 토론해야 하는 엄마의 긴장감과 부담감을 이해하고 무슨 질문이든 들어주며 아는 만큼 성실히 답해주는 사람들. 의사에겐 사소하고 기초적인 질문이라도 부모 입장에선 중요한 물음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쉽게 설명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내 아이를 보는 의료진이라면 내가 아이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믿고 의지해도 되겠다는 자신이 생긴다. 그 동안 우리가 만난 이곳 의료진들은 전문가로서의 입장만을 내세워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기보다는 아이의 몸 상태와 발달 상황을 함께 고려하면서 보호자의 의견과 결정을 존중하는 태도가 강했다. 아이 발에 맞는 신발을 찾을 수 없어 헤매다 수제화를 맞춤 제작해 신겨 갔을 때, 우리 의사는 “이거 어디서 했어요? 여기 발 모양 변형 때문에 고생하는 다른 아이들한테도 소개 좀 시켜주게 알려줘요” 하고 내게 신발 업체 이름을 물었더랬다. 그리고 그 내용들 모두 고스란히 진료기록에 남아 있었다.
<우리가 다니는 병원의 로고. 저 빨간색 손수레는 실제로 병원에서 아이들을 태워 이동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어 병원을 이용하는 아이들에게 인기 아이템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에서 이렇게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주는 분위기, 다른 어린이 환자들까지 염두에 두고 부모와 소통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 건 우리가 보는 의사들이 모두 아동병원 소속 의료진이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들부터 청소년기 아이들까지, 다양한 이유로 매일같이 아이들을 대하는 의사들 이어서일까. 이 병원은 일반 병원에 비해 아이와 부모의 마음에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주는 분위기가 강하다. 내가 한 의사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이가 지루해하면 다른 의사/간호사들이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놀아주는 것도,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 장난감 자동차에 태워 놀러가듯 데려가는 것도 이곳이 아동전문병원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서였다면 아마 이런 대접, 받지 못했을 거다. 한국에는 한 병원 안에서 여러 과의 협진 체계를 통해 소아 환자를 집중적으로 돌보는 아동 전문 병원이 드물고, 대형 종합병원에서는 KT 같은 희소질환을 겪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병원’은 병을 치료하러 가는 곳이라는 개념이 강해서, 당장 치료법이 없는 희소질환이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큰 좌절감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영어에서 ‘병원’을 뜻하는 단어 hospital을 가만히 살펴보면, 애초 이 병원이라는 의료 시설은 ‘보살핌’과 ‘환대’를 의미하는 hospitality라는 말을 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병원, 특히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아동병원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 또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잘 길러내는 데 꼭 필요한 또 다른 ‘소셜 마더링’(사회적 양육)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갓 태어난 아이, 특히 질환이나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유기하거나 입양 보내는 사람들을 쉽게 비판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요건들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그것들을 갖추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런데 선천성 질환이나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이런 아동 전문 병원은 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미숙아 집중 치료실과 재활 치료시설 등을 갖춘 아동 전문 병원이 전국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면, 그래서 선천성 질환과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곳이 가까이 있다는 걸 예비 부모들이 안다면, 장애와 선천성 질환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유기되는 아이들의 수, 그리고 제때 대처하지 못해 목숨을 잃거나 신체 기능을 잃는 아이들의 수는 분명 크게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내가 임신 20주 초음파에서 아이의 한쪽 다리가 더 클 수 있다는 소견을 들었으면서도 겁내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임신 초기부터 지역사회의 여러 시설을 통해 많은 심적, 물리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혹여 아이가 건강상에 문제를 갖고 태어난다 하더라도 혼자 막막해하지는 않으리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케이티를 낳은 후 현실이 되었다.
한국에도 아동 전문 병원이 많아져서 우리 아이같이 희소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믿고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의학 정보뿐 아니라 마음의 위로까지 얻을 수 있는 의료환경이 조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임신과 출산, 양육의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기관과 단체, 의료 시설이 존재한다면, 충분한 준비 없이 부모가 된 이들도, 질병과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도 모두 조금 더 용기 내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아이의 지난 3년을 담은 의료기록을 고이 모아 또 다른 아동병원에 보낼 준비를 한다.
그 곳 의사들에게선 또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