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선가... 사람하고 헤어질 때면 단 게 먹고 싶어지더라고. ,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거. 맞아, 평소에도 단 걸 좋아하는 편이긴 해. 그런데 혼자 남게 되면 더 강렬하게 찾는단 거지.  남자답지 않은 건 알아. 우습다, 그러는 여자애들도 있더라고. 그런데 조건반사라고 해야 하나. 잘 안 고쳐지네. 아니다. 고치려는 노력도 안 하긴 했다. 입 안에 단 맛이 퍼지면 이별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게 되거든. 마음이 누그러진달까. 많이들 그렇지 않아?

 

슬프지 않은 건 아니야, 그야 슬프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 체념이 온 몸에 퍼지는 거야. 할 수 없지, 붙잡아도 갈 사람은 간다. 누군가는 떠나고, 나는 남는다 그런 체념.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느냐면 섬세하고 다정하지만 신경질적인 사람이었어. 감정의 기복이 굉장히 커. 살면서 그 정도로 감정 고조의 폭이 큰 사람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니까. 좋을 땐 너무 좋고 나쁠 땐 너무 나빠지지. 자식한테도 그랬던 것 같아. 기분이 좋을 땐 한없이 좋은 거야, 내가 엄마 아들이란 사실에  견딜 수 없을 만큼 감동하고 울컥하고, 북받쳐하고.  그런데 기분이 바닥일 땐 강렬하게 혼자 있고 싶어 한달까. 알아, 다들 어느 정도 그렇긴 하지. 다만 내 엄마는 좀 더 심했단 거야. 물론 상식이 있으니까 기분이 나쁘다고 자식을 내치거나 하지야 않지, 하지만 몹시 귀찮아했던 것 같아. 아무튼 자기감정을 컨트롤하는 데 서툰 사람이었지. 성인인데 감정적 안정감이 없달까. 자식이 다 눈치 챌 정도니까 심하긴 하지.

 

자라면서 말이야, 그런 엄마랑 둘이만 있던 시절이 좀 됐어. 아빠가 다른 지방에서 일을 했거든. 어쩔 수 없잖아, 아빠한텐 처자식을 먹여 살릴 막중한 임무가 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난 아빠 쪽이 훨씬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2주에 한 번씩 대여섯 시간을 운전해 밤길을 오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해 보면 너도 알 거야. 아빤 보통 목요일 자정 쯤 와서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 새벽에 돌아갔어. 그러니까 집에 도착할 즈음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했을 거야. 지쳤겠지. 그런데도 엄마나 날 위해서 하루쯤 가까운 데 나들이라도 가려고 꽤 노력을 했거든. 좋은 아빠였어. 

 

아빠는 엄마와는 좀 반대라고 해야 하나, 감정의 기복이 없는 건지 잘 드러내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무던하다고들 했어. 그래서 아빠랑 있으면 나까지 느긋해졌어. 엄마는 잘해주다가도 내가 조금만 실수하면 기분이 확 상해 버리거든. 아, 나 때문에 엄마 지금 화난 건가? 어쩌지? 이런 불안이 좀 있었어. 어느 시점에 화를 낼지 잘 모를 때도 있었고. 근데 아빤 늘 웃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아슬아슬한 불안이 없었지. 어떻게 봐도 나한테는 백 퍼센트의 아빠야.

 

그러니까 내 마음은 아빠한테 많이 기울어 있었지. 그래서겠지. 자주 그랬대.  '엄마 좋아, 근데 아빠는 훨씬 훨씬 더 좋아.' 

뭐, 엄마가 서운하긴 했겠지,  어쩌겠어, 나야 애였잖아.

 

엄마는 괜찮다가 어떤 날이면 그런 걸로 트집을 잡아.

엄마가 아빠한테 화를 내는 레퍼토리가 늘 똑같았거든.

내 주위 아무도 이렇게 안 산다, 다들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 산다, 이렇게 떨어져 살아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러다 나한테 불똥이 튀어.

엄마도 2주에 한 번씩 보면 너한테 화도 안 내고 만날 웃을 수 있다, 2주에 한 번 보는데 소리칠 일이 뭐 있어. , 그래, 넌 아빠만 더 좋아해 봐.

 

그래, 알아. 맞아. 사람이 철이 좀 없다고 해야 하나. 나쁜 사람은 아닌데 너무 자기중심적인 거야. 아빠가 다른 지방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같이 갈 수 없다는 것도 이해를 했고, 시간도 흘렀고. 상황이 변했으면 상황에 적응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어른인데. 그런데 무지하게 자기 안에만 갇혀서 자기가 힘들다는 생각에만 빠진 거야. 정말 곤란하지.

 

, 시간이 지날수록 초기 몇 년보단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이니까 불평불만이 간간이 터져 나왔지. 그런데 말이야,  

나중에 나 좀 크고 엄마가 그러는데 그게 다 나 때문이었다는 거야.

 

? 그래, 내 엄만데 이런 말하기도 뭣한데... 아니, 진짜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란 전제는 내가 깔아놓고 말하는 거다? 어디까지나 부모라도 누구나 사소한 인간적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야.

 

책임회피라고 해야 하나, 남 탓을 좀 하는 사람이야, 엄마가. 하하, 그러면서 혼자만 살았으면 아빠랑 이주에 한 번을 보든 한 달에 한 번을 보든 괜찮았다는 거야. 근데 어린애가 아빠 보고 싶다고 울고 아빠 한 번 왔다 가면 자지러지고 하니까 감당이 안 됐다는 거지. 그러면서 아빤 가버리면 그만인데 엄마가 매번 그 뒷감당을 하느라 힘들었대. 하기야 아빠가 가고 남겨지면 엄마 마음도 허전했을 거 아냐. 근데 내가 울고 넘어가니까 엄마 감정을 추스를 틈이 없는 거지, 그랬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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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엄마가 얄팍한 수를 쓴 거지. 내가 평정심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기가 힘든 것도 있었을 테고, 또 어린 아들이 스스로 마음을 보듬는 시간을 좀 줄여주고도 싶었겠지. 

 

그래서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나서기 무섭게 내 입에 초콜릿을 넣어줬어. 평소엔 뭔가 보상이 아니면 단 게 허락되진 않잖아, 그 나이 땐.  그런데 아빠가 갈 때면 입에 몇 개고 초콜릿이 들어 와. 사람이 단 걸 먹으면 무장해제 되는 느낌이 있지 않아? 그러면 이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되고 아, 할 수 없다 싶어지더라고. 그래, 나는 남았고 또 원래의 일상이 시작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납득하게 돼. 그래서야.

 

아하하, 정말이야. 내가 초콜릿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굳이 이런 이야길 하는 게 아니라니까. 알겠으니까 그만 먹으라고? , 끊으려면 끊을 수 있지. 초콜릿이 뭐라고. 하지만 별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내가 초콜릿을 못 끊는, 아니 안 끊는 이런 사연도 있다, 그런 이야기라니까.

, 알았어, 이제 그만 먹는다.

.

아무튼 말이지, 그래서 나한테 이별은 맛은 언제나 초콜릿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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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나이 마흔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들 한 마디 할 동안 열 마디 한다며 타박 받을만큼 급하고 남 이야기 들을 줄 모르는 성격이었거늘, 걷고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늦된 아이를 만나고 변해갑니다. 이제야 겨우 기다리고,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람에게 처음 다가온 특별함,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의 이야기가 따뜻함으로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이메일 : toyo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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