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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아이 교육 중 가장 독특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학교 공부 외에 아이가 좋아하고 즐겨할 수 있는 취미를

부모가 함께 탐색하며 찾을 때까지 관심을 가져준다는 점이다.


초등학교까지 이런저런 경험과 탐색의 기회를 가진 아이들이

하나의 분야를 찾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 때가

바로 중학교 시기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대학 입학 후에 전공 공부외에 동아리 활동을

선택해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일본 아이들은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자신의 취미와 연관된 클럽 부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의 이런 클럽 활동이 대학 동아리와 조금 다른 점은

운동부든 문화예술부든, 모든 활동이 방과후 학교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활동에 드는 비용도 모두 의무교육비에 포함이 되어있는데,

어떤 부에 가입하는 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학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1년에 몇 만원쯤 드는 활동비 정도다.


저성장시대에 들어선지 오래된 요즘의 일본 학교는

예산이 부족해 많은 비용이 드는 부(특히 악기 구입이 필요한 브라스 밴드부 등)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아이들도

자신이 관심있는 취미 분야를 학교생활을 통해

3년동안 충분히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올 봄에 공립 중학교에 입학한 큰아이는

농구, 테니스, 베드민턴, 육상 등의 스포츠부와

미술, 브라스밴드, 합창부 등을 견학하며 탐색기간을 거친 뒤

결국, 브라스 밴드부에 가입하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금관악기와 목관악기 등으로 구성된

일본 중,고등학교의 브라스 밴드부 활동을 소개한 책자의 몇 장면인데,

음악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아이들, 악보도 제대로 못읽는 아이들,

악기를 처음 만져보는 아이들, 누구라도 흥미만 있다면 조건에 상관없이 가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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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의 담당 선생님들이 있긴 하지만,

이제 막 초등학생 티를 벗은 왕초보 신입생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2학년 선배들이다. 스포츠부든, 문화예술부든, 선배가 후배들을

도와주고 기술적이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전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의 사진은 브라스 밴드 중에서도 클라리넷 파트를 맡게 된 우리 큰아이를 위해,

선배들이 손글씨로 써 준 음악 기호들이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일일이 가르쳐주고, 잘 이해하지 못할 때는

하나하나 손글씨로 메모해 가며 잘 외울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데..

저도 이제 겨우 15, 16살밖에 되지 않았을텐데 어쩜 이리 야무질 수가 있을까.

딸아이도 선배들의 이런 정성어린 돌봄에 날마다 감동받는 눈치인데

그런 정서적인 교류가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낯선 악기에

빠른 속도로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 같다.


운동을 선택한 아이들은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전,

아침 7시 반부터 연습을 시작하고 전체 수업이 끝난 뒤에도

저녁 6시 정도까지 학교에 남아 연습하는 게 보통이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이렇게 아이들이 바빠지다보니,

학교에 공부를 하러 다니는 건지, 부 활동을 하러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저러다 공부할 시간이나 있을까, 하소연하는 엄마들도 많다.


그런데, 일본 아이들이 좀 특이한 것이,

아니 어릴 적부터 그렇게 자라도록 유도하는 분위기라 그런건지,

이 취미 부서활동을 열심히 잘 하는 아이들이 공부도 잘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가정도 학교에서도

중,고등학교 아이들의 학교 생활 목표를

공부도, 부 활동도 둘 다 열심히!!

로 두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한 분야의 매력에 눈을 뜨고

그걸 열심히 해서 어느정도 실력을 갖추게 되면

아이의 자신감과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 사회성 등이

엄청나게 쑥-  자라게 되기 때문이다.

00는 농구를 잘해, 00는 그림을 잘 그려, 00는 또 대회에 나간다네..

공부와는 무관한 분야라 해도, 스스로 선택한 취미를 즐겨하는 것 자체가

예민한 청소년기에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브라스 밴드부에 가입해 이제 겨우 한달 쯤 된 딸아이는

날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습하고 있다.

그런 1학년들에게  "오늘은 무슨 노래 듣고 싶어?"라  묻는 2,3학년 선배들.

"토토로요! 디즈니요! "

앞다투어 신입생들이 신청곡을 외치면,

플룻, 클라리넷, 트럼펫, 튜바 등의 악기들이 어우러진 곡들을

즉석에서 품파품파 연주해주는 선배들이 아이들은 얼마나 멋져 보였을까!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저녁 6시가 넘어야 돌아오는 피곤한 하루 일과인데도

요즘 딸아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엄마, 오늘은 콘트라베이스 담당 선배가 결석해서

 소리가 좀 허전했어요. 저음이 있어야 깊은 소리가 나는데."


이제 겨우 중학생이 되었을 뿐인데,

아이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성큼 들어선 느낌이 든다.

엄마는 듣고보도 못한 전문용어들을 남발(?)하며 날마다 음악 이야기들을

한보따리씩 쏟아내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자기가 세상의 중요한 사람이 된 듯,

지금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고싶어 크게 숨을 들이쉬고 있는 듯 하다.

매일밤 고단할텐데도 늦게까지 그 많은 숙제를 빠짐없이 해 가는 것도

그런 충만감과 의욕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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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있었던 브라스 밴드 학부모 설명회 때의 모습이다.

이제 곧 여름 중학생 콩쿨대회 연습이 한창인 2,3학년들의 연주는

생각보다 훌륭해서 깜짝 놀랐다.

다른 학부모들도 오랜만에 듣는 라이브 연주에 감동한 모습들이었다.

열 대여섯살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너무 대견했다.


보는 사람들이 칭찬해주지 않아도 직접 연주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오랜 시간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저 아이가 시작하면 내가 따라 들어가 음을 입히고

또 그 다음 아이가 그 위에  음을 입혀 화음을 만들고..

서로 눈을 맞추며 기다려주고 뒷받쳐주고..

그렇게 서로 하모니를 만들어온 아이들.


학교생활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해도 아름다운 음악이 어울어지는

이 순간 자체가 아이들의 삶을 격려하며 자신을 갖게 해주지 않을까.

그런 선배들을 뒤에 앉아서 지켜보는 우리 아이를 포함한 1학년들은

'나도 저렇게 멋지게 연주해야지'하는 마음을 저절로 갖게 되지 않을까.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시절을 풍성하게 채워 줄

음악이란 취미를 통해 아이가 더 성장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아이들의 연주를 듣고 나오면서,

'내가 만약 중학생 시절로 다시 돌아가, 취미를 선택한다면..'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공교육 제도 안에서도 아이들이

좀 더 다양하고 공평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있었으면 좋겠다.

일본 역시, 입시제도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취미와 공부는 서로 별개가 아니라

양립을 통해 오히려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취미를 실제 실력으로 끌어올리기까지

아이들이 스스로 투자한 시간, 노력, 인내심,

또 그걸 통해 길러진 체력과 지구력이

결국 공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딸아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앞으로의 3년이

부모로서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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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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