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사랑의 으뜸은 ‘존중’ 몸소 보여준 어머님 “존경합니다”


146114600953_20160421.JPG » 집을 방문한 시어머니가 딸을 안고 있다. 손녀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언제나 사랑이 가득하다. 송채경화 기자남편이 남자친구이던 시절 그의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생각을 굳혔다.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되겠다고. 아들의 여자친구를 처음 보는 눈빛에는 호기심과 함께 애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좋았다. 결혼하고 본격적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묶이면서 시어머니가 더 좋아졌다.


지난해 모성애에 대해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보자고 이 칼럼을 처음 시작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기쁨보다 당혹스러움이 더 컸다는 내용의 첫 칼럼에 대한 반응은 참담했다. 수백 개의 악플이 달렸다. 악플 내용의 강도도 심한데다 내 아이에 대한 내용이라서 그런지 가슴이 정말 쓰라렸다. 며칠을 앓았다. 그러다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칼럼 잘 봤다. 응원한다.” 이 한마디로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내 글의 열렬한 팬이다. 기사든 칼럼이든 꼭 챙겨 보고 “기사 쓰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칼럼 너무 재밌다” 등의 격려를 한다. 육아에서 여성이 독박을 쓰는 구조를 비판한 글을 쓰고는 시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할지 약간 걱정한 적이 있다. 그때도 시어머니는 “네 글을 보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바보처럼 육아와 살림을 도맡은 걸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집안일에서도 육아에서도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며느리가 달갑지 않을 만도 한데 그저 “우리 집안에 여성해방주의자가 들어왔다”며 웃었다. 남편이 2주에 한 번씩 24시간 ‘독박 육아’를 한다는 내용의 지난 칼럼에 대한 반응은 “우리 며느리 인생 즐기면서 지혜롭게 잘 사네, 부럽네”였다. 핏줄로 이어져야만 모성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어머니에게 배웠다. 사랑하지만 소유하지 않으며 존중하는 것이 모성애라는 것도.


시어머니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짧게 교편을 잡았다가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됐다. 아이 셋을 키우며 일흔을 넘긴 시어머니가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자식들을 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을 모두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짚이는 데가 있다. 감당하기 힘든 희생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에겐 손주가 다섯 명이 있지만 여태껏 그들을 도맡아 키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복직하면 아이를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무너져 아쉬웠지만 이제는 그 아쉬움을 부끄러워하기로 했다. 자식 셋을 오롯이 키워낸 것, 그리고 그 자식의 배우자들을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는 것으로 시어머니는 존경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 9개월이 된 딸아이는 점점 더 예뻐진다. 몸짓은 경이롭고 웃음소리는 청량하다. 요즘따라 아이에게 자주 안겨본다. 아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마시면 봄의 나뭇가지에서 돋아난 연둣빛 새순처럼 싱그러운 냄새가 난다. 아이가 사랑스러울수록 한편에서는 두려움이 커진다. 이 아이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존중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으면서 넓은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아이의 앙증맞은 이마에 입을 맞추며 다짐해본다. 존경받을 수 있는 어머니가 되자고. 나의 시어머니가 그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이 글은 한겨레21 제1108호(2016.4.25)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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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채경화
결혼 안 한다고 큰 소리치다가 서른넷에 결혼했다. 아이를 안 낳겠다고 떠들다가 결혼한지 1년 만에 아이가 생겼다. ‘평생 자유롭게 살겠다’던 20대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하루하루 모성애를 탐구하며 보내는 서른 여섯 초보 엄마. 2008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를 거쳐 <한겨레21> 정치팀에서 일하다 현재 육아휴직중이다.
이메일 :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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