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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에 결혼해서 1년만에 첫 아이 필규를 낳고 꼬박 23개월간 이어오던 젖을 떼면서

나는 바로 둘째가 들어설것을 기대했었다.  나와 일란성 쌍동이인 내 언니가 그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째는 금방 생기지 않았다. 



서른 다섯이란 나이가 부담스러웠었던 나는 둘째를 빨리 낳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생겼다. 

1년간을 노력하다가 임신이 안 되자 유명 산부인과의 불임클리닉에 등록했다.  의사와 상담후 배란 유도제를 복용했다.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들러 초음파를 통해 배란여부를 확인한 후 병원에서 정해준

날짜에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일은 어색했지만 임신을 원했기에 감수해며 노력했다.

두번의 배란 유도제가 실패로 끝나자 병원에서는 나팔관조영술을 해보자고 했다.  



나팔관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그 검사를 받기 위해 필규와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다.  검사만 전문으로 하는 병동은 조용했다. 그곳에서 생기있는 생명이라곤 필규 뿐이었다.

아주 오래 기다린 후에 간호원은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방사선실로 들어갔고

그 순간 문은 닫혔다. 나를 따라 오던 필규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이 달래는 소리가 들렸으나 데인듯이 날카로운 필규의 울음소리는 병원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쉽게 진정될 수 없는 공포와 분노의 울음이었다.



산부인과를 다니는 내내 필규와 함께였고, 의사와 상담을 할때에도 주사를 맞을 때에도

필규는 늘 내곁에 있었다. 나는 늘 내가 무슨 검사를 하는지, 의사와 어떤 얘기를 했는지

필규가 이해할 수 있는 말들로 설명해주곤 했다.

이것이 나와 필규의 관계였다.

그런데 오늘은 내 두려움에 몰두해 있어서 필규에게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갑작스러운 호명을 따라 방사선실로 들어갔고, 아무 의심없이 내 뒤를 같이 따라 오던 필규 앞에서 문은 굳게 닫힌 것이다.

아빠가 있었으나 필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옷을 갈아입고 차가운 검사대 위에 누울때도 필규는 온 힘을 다해 울며 소리치고 있었다.

'필규야, 엄마 금방 나갈꺼야. 조금만 기다려'

나는 문을 향해 소리쳤다. 필규는 숨을 쉬지도 못할 정도로 격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젊은 간호원과 젊은 검사요원이 다가와 건조한 목소리로 검사 과정을 설명했다.

필규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는 복도에 온 신경이 가 있는 상태에서 차가운 검사대 위에 누워, 그녀들이 내 옆에서 철컥거리며금속으로 된 검사도구들을 만지거나

커다란 주사기에 약물을 넣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이 모든 과정이 정말 나를 위한 일인지 회의가 들었다.

당장이라도 이 검사를 거부하고 밖으로 뛰어 나가고 싶었다.



내 몸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검사원은 빠른 목소리로 힘을 빼지 않으면

아플거라고, 긴장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녀의 목소리엔 원할하게 검사를 진행 할 수

있도록 내가 협조하라는 암묵의 훈계가 담겨 있었다.

차갑고 거친 느낌이 내 몸을 관통했다. 금속이 부딛치는 소리, 알수없는 기계소리.

그 사이로 필규의 힘든 울음소리는 계속 들려 왔다.



나는 슬프고, 노여웠고, 마음 아팠다.

내 몸을 다루는 그녀들의 손놀림은 재빠르고 기계적이었다.

그녀들에게 내 몸은, 수없이 검사대 위에 오르고 또 지나가는 익명의 대상일 뿐이다.

내겐 성스럽고 신비한 나의 자궁이, 그녀들에겐 매일 되풀이 되는 업무의 대상일 뿐이다.

훈련된 대로, 늘 해오던 대로 일사천리로 검사를 진행하는 그녀들의 태도는

지극히 건조하고 기계적이었다. 검사를 받으려는 내 마음과 감정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어떤 두려움과 걱정을 하고 있는지 그녀들에겐 관심없는 일이다.

현대의 고도의 분업화된 병원체계에서 환자들이 고유의 인격과 개성으로 존중받는 일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들의 관심은 오직 내 자궁과 나팔관 뿐이다. 그 것들이 독특하고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한 인격 안에 포함되어 있는 그녀의 일부라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질문이나 말투가 조금만 더 따뜻했어도, 또 밖에서 울부짖은 아이의 감정과

그 소리를 들으며 검사를 받아야 하는 내 심정을 아주 조금만 어루만져 주었더라도

그렇게 슬프고 마음 아프진 않았으리라.



나는 새삼스럽게 아이를 갖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여자들이 겼고 있을 마음의 고통들과

그녀의 몸에 가해지는 의료적 폭력들을 생각했다.

아무리 사소한 검사라도 받는 사람들에겐 생경하고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두려움과 염려들을 풀어주는 일이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자신이 검사할 대상이 혹 문제가 있을짇 모르는 기관을 지니고 있는 익명의 환자가 아니라

고유의 감정과 역사와 인격을 가지고 있는 소중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늘 마음에 품고

있으면 되는 일이다.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눈빛에서도 말투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느껴진다. 그러면 검사의 과정들은 환자의 감정에 수용되고

그녀는 두려움없이 자신을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검사가 끝나고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 한 구석에 눈물로 기진해 있는 필규가 나를 바라 보았다.

'엄마가 아무말 없이 갑자기 들어가 버려서 많이 놀랬지..'

필규는 힘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나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그 작은 몸뚱아리를 안고서야 나를 채우던 두려움과 분노에서

놓여 날 수 있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쓴 '크리스티안 노스럽' 박사는 그 자신이 여자이면서

여자의 몸과 정신과 삶의 치유를 다루는 새로운 차원의 건강관리센터를 창설했다.

그녀의 센터를 찾아오는 여성들에게 그녀는 몸보다 마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묻는다.

그녀의 생활과 그녀의 몸에 일어난 역사와 그녀가 맺고 있는 관계들과, 그 모든것에 대한

그녀의 감정에 귀 기울인다.



불임이든, 자궁암이든, 지독한 생리통이든 여자의 몸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삶의 모든

문제와 감정들을 몸으로 드러낸다고 그녀는 말한다. 몸은 각 기관들의 기능의 조합이 아니라

그 몸의 주인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며, 관계맺는 모든 역사 그 자체임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센터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감정과 내 역사와 내 삶을 존중받으면서 자신의 문제를 함께 치료하는 의사와 환자

우리 현실에선 아직 꿈 같은 일일까.



나팔관 조영술을 받은 후에 나는 불임클리닉 다니는 일을 그만두었다.

병원의  지시를 받으며 남편과 잠자리를 하고 수시로 내 몸을 열어 배란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어느새 생명을 의사들이 만들어 주는 것 처럼 병원을 의지하게 된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 내 가치관과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을 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이는 가장 좋은 순간을 서택해서 내게 올것이었다. 그것이 늘 내 믿음이었다. 



병원에 의지하는 동안 나는 생명에 대한 내 가치와 믿음을 잊고 있었다.

병원 다니는 일을 그만두고 날짜에 상관없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남편과 사랑을 나누었다.

그 사이 우리는 작은  집을 마련했고, 그 집을 고치는 일에 즐겁게 몰두했다.

새 집에 이사하고 얼마 안 있어 나는 둘째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을 비우고, 집착하지 않고,  내가 진정으로 편하고 행복해지자 아이는 내 안에 스르르 찾아온 것이다.



둘째는 2007년 3월에 태어났다. 봄에 낳을 아이라서 태명이 '봄이'였다.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따스한 햇살속에 꽃샘추위를 품고 온다.  따스하지만 강인하게

모든 생명을 일깨우며 봄은 온다. 내 안의 봄이도 그런 강인하고 아름다운 생명력과 환한 웃음을 품고 오리라 믿었다.



필규와 함께 열달동안 봄이가 자라는 것을 같이 나누며 행복하게 태교를 했다.

2007년 3월 5일, 우리집 마루에서 봄이를 낳았다. 남편과 필규가 함께 탯줄을 잘랐다.

봄이는 내가 바랬던 것처럼 봄처럼 부드럽고 환하게 웃는 사랑스런 딸아이였다.

'윤정'이라는 이름을 얻은 봄이는 이제 네살 이쁜 소녀가 되어 있다.

아무리 열나고 아파도 병원약은 절대 입에 대지 않고 생으로 끙끙 앓아서 이겨내는

야무지고 강인한 아이다. 정말 '봄'같은 아이다.



나는 '봄이'를 기다리면서 내 안의 생명에 대한 소중한 가치와 믿음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고

내 집에서 '봄이'를 낳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출산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다섯 살 오빠가 탯줄을 잘라주었던  '봄이'는 올 해 1월엔 동생이 나오는 순간을 오빠와 함께 지켜 보았다.



서른 일곱 내 인생에 가장 충만한 행복을 안겨 주었던 아이.

세살 차이로 동생이 생긴 후에 만만치 않은 시간들을 겪으며 언니가 되어가고 있지만 태어날때도 지금도 '봄이'는 여전히 우리집의 가장 환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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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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