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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 하나에 셋째를 낳을 때 주변에서 염려가 크셨다.
 '언제 키우냐'는 것이다.
 하긴 대학 동기중에 제일 먼저 결혼해서 출산을 한 친구의 첫 아이는,
 벌써 고등학교 입학을 눈 앞에 두고 있는걸 생각하면 그런 걱정이 나올만 하다.
 남편 나이는 나보다 세 살이 더 많으니 직장을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남편이 운 좋아 정년 퇴직할 때까지 회사에서 버틴다해도
 막내 나이가 겨우 열 두살 언저리일텐데
 무슨 대책이 있어 셋째를 낳았을까... 싶기도 했으리라.


 특별한 대책......... 이야  없.었.다.
 늦게 결혼해서 늦게 첫 아이를 얻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처럼 기뻤던 우리 부부는,
 다른 것 보다도 아이들을 많이 갖고 싶었을 뿐이다.
 적어도 셋은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 셋을 어떻게 키울것인지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랄까.
 없으면 없는대로 키우면 되지.. 그정도의 생각 뿐 이었다.


 그토록 소원하던 셋째를 얻은 후 19개월이 흘렀다.
 나는 마흔 둘이 되었고, 남편은 마흔 다섯이 되었다.
 이 정도 나이의 다른 부부들은 청소년 자식들을 키우면서 학원비 대랴, 공부 챙기랴 퍽이나 바쁜 모양이다.
 결혼 전엔 나도 마흔이 넘으면 커가는 아이들 보면서 문화 생활도 누리고
 여행도 다니고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는 중년을 꿈 꾸었더랬다.
 부유하진 않더라도 가끔 내가 좋아하는 음악공연에도 다니고
 친구들도 만나고 취미 생활도 누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하하하... 지금 돌이켜보니 내 희망사항이야말로 참 깜찍한 착각이었다.


 현실의 나는, 

 여전히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아홉살 첫 아들과 아웅다웅하고
 다섯 살 딸 아이의 늘어나는 요구를 들어주느라 정신없는 바쁜 엄마일 뿐이다.
 결혼 9년 동안 세 아이를 띄엄띄엄 낳은 덕에 아직도 맘 놓고 극장 한 번 갈 수 없고,
 음악회니 취미 생활이니 하는 것들은 그림의 떡으로 여기며 살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 이뿐 얼굴을 물고 빨고 하느라 그나마 화장이랍시고 바르던 립스틱도 치운지 오래고,
 세 아이 다 재운 다음에야 이불 위에 쓰러질 수 있는 형편이라
 자기전에 얼굴에 크림 하나 바르기도 귀찮아 잊어버리는 게으른 엄마가 되어 버렸다.
 늘 어린 아이 손 잡고 종종거리며 걸어야 하니 굽이 조금이라도 높은 신발은 진작에 처분해 버렸고
 언제든 아이에게 젖 물리고 업을 수 있게 편한 옷만 입고 산다.
 '나가수'도 보고 싶고, 미니 시리즈도 본방 사수하고 싶고, 임재범이니 김범수니 콘서트에도 가보고 싶고
 희망버스, 희망비행기에도 오르고 싶은데 늘 발목잡는 세 아이 때문에
 맘 먹은 일 하나도 못 하면서 산다.


 이렇게 포기하고 단념하고 미루고 접어야 하는 것들이 넘쳐나는데도, 그런데도
 셋째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마음이 환해진다.
 막내를 웃게 하고 싶어서 막내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토토로와 뽀로로 흉내를 내느라 펄쩍 펄쩍 뛰고
 기저귀 가는 사이 엉덩이를 흔들며 쌩하니 도망가는 막내를 잡느라고 같이 마루를 기어 다니면서도 웃는다.
 낮잠에서 깨어난 막내가 '어-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는 일이,
 언니가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 안 준다고 속상해서 '엄마, 언냐가- '하며 우는 시늉하고 내게 오는
 막내를 달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다.
 퇴근한 남편에게 세 아이들이 하루동안 벌인 사건 사고를 신나서 읊어주고,
 속상하고 화나는 일을 털어놓고 징징거리면
 '고생했네' 위로해 주는 그 말에 또 풀어지는 날들이 고맙다.


 막내가 있어서 결코 젊지 않은 내 젖가슴에선 아직도 달콤한 젖이 흐르고, 세상에서 무엇보다
 나를 원하고 내가 있어야 채워지는 이쁜 아기를 품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근사한 일이 있을까.
 늦게 낳은 아이를 키우는 탓에 포기해야 하는 일이 수백가지라도
 절대 바꾸고 싶지 않은 행복이다.


 막내가 너무 좋아해서 일부러 토토로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입고, 괴물 흉내를 내며 이불 위를 뛰어 다니고,
 함께 껴 안고 뒹굴수 있는 내 40대는 확실히 갱년기가 끼어들 사이가 없다.
 일찍 아이를 낳아 일찍 키운 친구들은 벌써 지나간 그 땀나고 달콤하고 찐한 시간들을
 9년째 누리는 것도 복이라고 여긴다.
 체력도 부치고, 슬슬 오래 미루어 둔 일들이 그립기도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세 아이를 선택하리란 건 분명하다.


 아이들 덕에 나이 들어도 어리게 살 수 있어서,
 거침없이 토토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소리내어 그림책을 읽고, 숨바꼭질을 하고,
 업고 안고 뛰며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가 내게 한 말썽을 남편에게 이르고, 아이가 보여준 이쁜 짓을 실감나게 얘기해 주고 싶어서
 남편 퇴근을 기다리는 마흔의 날들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엄마가 늙어서 이빨이 하나밖에 안 남아도 맛있는 거 많이 사드리고 업고 다닐꺼라고 손가락을 거는
 큰 아이와 둘째 아이에게 감동을 받고, 잠결에도 '엄마'를 부르는 막내에게 다시 젖을 물리며
 안아보는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너무 그리울 것 같아서 지금 지금 충분히 이 시절의 맛들을
 음미하려 애쓴다.


 다행이다.
 고맙다.
 아이들 때문에,
 늦게 얻은 셋째 때문에,
 여전히 어리고 여전히 철 없게 지낼 수 있어서
 맘 놓고 늙고 풀어지고 기운 빠질 틈이 없어서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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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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