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이룸 3.jpg

 

겨울이 왔다.

무지하게 추운 우리집에서는 단단히 각오할 일이 엄청 많아졌다는 뜻이다.

따듯한 아파트에서 살다가 올 1월에 마당 있는 새 집으로 이사온 후에

우리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정말 무지하게 혹독한 집안의 추위 였다.

아파트에서는 난방을 약하게 해도 늘 20도가 넘었는데, 새 집은 심야 전기를 하루 종일

틀어도 밤에는 13도를 넘지 않았고, 해 뜨기 전까지 집안은 찬 바람 휭휭 불어대는

시배리아 벌판 같았다.

갑자기 바뀐 집안에서 어린 세 아이들 씻기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목욕이야 대충 안 하고 살 수 있었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자르지 않은 둘째 아이의

머리를 감기는 일은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욕조가 있는 큰 목욕탕은 외벽에 붙어 있어서 한 겨울엔 이 닦는 일도 몸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이웃의 목욕탕을 빌려서 감기기도 하고, 몇 년만에 찜질방을 찾기도 하고,

온 가족이 순전히 목욕을 하기 위해 가족 온천장으로 뜨기도 하면서 겨울을 났다.

그리고 새 집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

이제 조금씩 요령이 생긴다.

 

우선 몸 씻고 머리 감는 것을 자기 전에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었다.

집안이 하루 중에 가장 따듯한 한 낮에 아이들을 씻기기 시작한 것이다.

욕조가 있는 큰 목욕탕은 포기하고 방과 방 사이에 있는 작은 목욕탕을 주로 이용한다.

좁고 옹색하긴 하지만 보일러실과 붙어 있어서 외벽과 닿아 있는 큰 목욕탕에 비해

훨씬 따듯하기 때문이다.

 

한 날, 한시에 머리를 같이 감는 세 여자의 특별한 작전이 있다.

거실과 목욕탕 사이에 있는 중간문을 닫으면 거실의 바람이 적게 들어 온다.

(우리집은 아주 특이한 구조라서 거실과 아이들 방이 붙어 있는 곳에 중간문이 있다.)

제일 먼저 작은 목욕탕의 세면대 가득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탕을 덥힌다.

그 다음에 아이들 옷을 벗기고 목욕탕에 들여 보내 따듯한 물로 몸을 충분히 데워 준다.

작은 아이 먼저 안아서 머리 감기고 더운 물 조금 받아준 대야 앞에 앉혀 놀게 한 다음

둘째 아이 머리를 감긴다.

아주 오랫동안 머리 감는 일을 너무 무서워 해서 애를 먹였던 둘째는 요즘 얼굴에 물을

안 닿게 하는 헤어캡을 뒤집어 쓰고 앉아서 머리를 뒤로 젖힌 자세로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풀고 앉으면 머리칼이 바닥에 깔릴 정도로 긴 둘째의 머리를 감기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샤워기로 충분히 적신다음 샴푸를 머리 꼭대기부터

묻히기 시작해서 머리 끝까지 골고루 칠 한 후 요령껏 비벼 주어야 한다.

헹구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동안 언니 머리를 감길 때면 수시로 목욕탕 문을 열고 들락거려 곤란하게 했던 막내도

아예 함께 들여 놓고 물장난을 하게 하니 큰 방해 안 하고 잘 놀아 정말 다행이다.

둘째까지 감기고 나면 나는 세면대에 서서 재빨리 머리를 감는다.

늘 짧은 컷트 머리인 나는 머리 감는데 5분도 안 걸린다.

 

내 머리는 수건으로 후다닥 털고 나서 큰 수건 두개를 이용해서 둘째의 젖은 머리를 닦아 준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드라이를 해준다. 전에는 목욕탕 밖으로 나와서 드라이를 했지만

겨울엔 아예 목욕탕 안에서 다 말리고 옷까지 입혀 나오는 편이 훨씬 나았다.

두 아이 머리 말려주고 몸에 보습 크림 발라주고 옷 까지 죄다 입혀 나온다.

이렇게 하면 따듯한 목욕탕에서 추운 밖으로 나와도 몸이 갑자기 외기를 쐬지 않아서 괜찮다.

 

밖으로 나오면 머리를 빗긴다.

이 일도 만만치 않다.

이때쯤이면 막내가 젖을 찾기 때문에 가슴에 젖 먹는 막내를 달고 둘째 머리를 빗기곤 한다.

바닥까지 쓸리는 긴 머리를 충분히 빗긴 후에 양 갈래로 땋아 손질을 끝내기 까지

막내는 내내 내 가슴에 매달려 젖을 빤다.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다.

그리햐야 마침내 매끄럽고 단정하게 정리된 두 딸아이의 머리를 보고 나면 큰 일 치룬 듯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둘째아이 머리를 언제까지 기를 거냐고 사람들은 늘 묻는다.

나도 궁굼하다.

원하지 않는데 내가 억지로 자를 수 없어 그냥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감기고 빗기는게 너무 힘들기도 하지만 어느새 윤정이의 긴 머리는 우리집의 가보가 되었다.

남편도 나도 딸 아이의 긴 머리를 너무나 아낀다.

언젠가는 내가 사정해도 제가 결정해서 싹둑 자르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는 이렇게 작전처럼 머리를 감기는 겨울이 지나갈 것이다.

 

추운 집에서 살게 되면서 깨닫는 것들이 있다.

자주 안 씻기고 자주 안 감겨도 아이들은 잘 큰다는 사실이다.

두꺼운 겨울 옷도 2-3일씩 입히고, 머리도 조금 뜸하게 감겨가며

조금은 게을러져야 덜 힘들게 겨울을 날 수 있다.

계절에 몸을 맞추어 살면 사람도 더 건강해 진다.

 

드디어 겨울이다.

세 여자의 머리 감기가 힘들어 지는 계절이지만 계절에 적응해 가면서 요령도 조금씩 늘터이니

새 집에 사는 일은 하루 하루가 늘 모험같다.

이만하면 신나는 일상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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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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