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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싫어하는 아이들 본 적 없다.
도서관에도 저 혼자 온 아이들은 거의 만화만 보고 있더라.
그래서 부모들은 불평이 많다. 책은 안 읽으려고 하고 만화만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좋은 책들 구입해서 들려줘도 아이는 관심도 없고, 어쩌다 도서관에 보내면
아이 눈은 '수학 도둑'이니, '메이플 스토리'니, '00에서 살아남기 '같은 만화로만
관심이 간다고 푸념을 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못 읽게 하면 아예 책도 안 읽으려 한다 하고, 반발만 커진다 하니
어쩌면 좋겠냐고 걱정들을 한다.

 

열살 난 울 아들도 만화를 무지 무지 좋아한다.
그런데 나도 만화를 아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만화를 같이 본다.

다섯살 무렵에 한글을 뗀 아들은 프랑스의 국민 만화 '땡땡 시리즈'를 제일 먼저 읽었다.
사실 그 시리즈는 글씨도 작고, 글도 많고, 배경도 다양한데다 수준도 높아서 성인들도
읽을 수 있는 만화인데 아들은 땡땡의 열혈펜이었던 두 살, 네 살 위의 사촌 형아들의
영향으로 무엇보다 그 만화들을 원했다.
나는 고민없이 전집을 사 주고 같이 읽었다. 아들은 제 수준대로 나는 내 수준대로
읽어도 같이 웃고 얘기하는데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게 울 아들의 만화 인생의
출발이었다.
그리고는 역시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를 읽었다. 역시 재미있었다.
이 두 만화 시리즈의 특징은 글이 많고 시리즈 전편이 꽤 많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들은 만화라면 열 권이 넘는 장편들이라해도 별 거부감이 없게 되었다.
그 다음엔 전국의 아이들이 다 좋아하는 'WHY 시리즈'로 넘어갔다. 학습만화로서
대박을 치고 있는 만화들이다.

 

함께 도서관에 가면 제가 좋아하는 만화책들을 마음껏 읽게 했다. 책을 대출할땐
만화와 일반 도서를 섞어서 가져왔다. 처음엔 만화를 보지만 결국엔 빌려온 책들을
다 읽곤 했다. 물론 아들의 기호와 관심사를 잘 알았기에 아들이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들 위주로 빌리곤 했다.

 

만화는 사실 대단히 풍부하고 다양한 장르가 있다.
아이의 관심사와 특성을 잘 파악해서 부모가 함께 읽으면 왠만한 책을 같이 읽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 소통할 수 있다.
아이가 만화를 좋아한다면 우선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를 같이 읽으면서 슬쩍 슬쩍 내용도
좋고 재미난 만화를 찾아 건네주어 보자. 의외로 만화로 얻고 통할 수 있는 지식의 세계는
엄청나게 깊고 넓다. 단 부모가 먼저 만화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약간의 조사와
공부를 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도 만화만 보려고 한다면 만화로 모든 지식을 다
얻을 수 있도록 밀어주자. 역사와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문학등 만화로 구현된
어마어마한 지식의 세계가 있으니 말이다.

 

울 아들의 경우 만화를 좋아하다보니 만화로 표현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문에서도 만평과 카툰을 꼭 챙겨 보곤 한다. 그래서 나도 신문을 보면 그 두가지는
따로 챙겨서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홍승우의 '비빔툰'은 아들이
너무 좋아해서 지난 여름 방학엔 '비빔툰' 전권을 사서 내내 끼고 살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모았던 '다이어터'도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보고 또 보았던 만화다.
음식과 건강에 대해서 이 만화만큼 재미나고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만화도 없다.
아이가 비만이라면 군것질 줄이고 운동하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이 만화를 함께 읽어보자.
배꼽 잡고 데굴거리면서도 정신이 번쩍들게 될 것이다.

 

이런 만화 틈틈히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다룬 '팔레스타인'
, 2차대전때 수용소로 끌려간 유태인의 참상을 글보다 더 리얼하게 표현한 '쥐'
이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는 '페르세폴리스'같은 작품들도 함께 읽었다.

'쥐'를 읽은 후에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피아니스트의 실화를 다룬 영화

'피아니스트'를 함께 보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을 다루는 만화도 같이 읽기에 아주 좋다.
용산 참사를 다룬 '내가 살던 용산', 전태일의 일대기를 만화로 표현한 '태일이'시리즈도
아들과 같이 읽었다. 이런 만화들을 읽으면 같이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다룬 '반크 역사 바로찾기 '시리즈는 일본과 중국이 꾀하고 있는
역사왜곡의 실체를 생생하게 깨우치게 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에니메이션이나 영화도 만화로 표현된 것이 있으면 구해서 같이 읽었다.
열광했던 '토토로'도 영화장면 그대로 세 권의 만화책으로 나와있다. 베트멘이나
스파이더맨같은 영화는 '마블 코믹스'를 뒤져 시리즈를 구해 주었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들은 '캔디 캔디'나, '베르사이유의 장미', '아르미안의 네딸들'
같은 순정만화도 재미나게 읽고 자주 가는 식당에선 '유리가면'을 꼭 챙겨본다.
강풀의 펜이기도 해서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26년'도 같이 읽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시리즈는 글이 어찌나 많은지 실록을 그래도 옮긴 것 같은데도
수백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을 하나하나 개성있게 표현한 작가의 저력이
그 어려운 내용들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한다. 나는 도통 흥미를 못 느끼는데도
필규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도 아주 좋아한다. 역사도 만화를 통해 얼마든지
깊이있고 재미나게 즐길 수 있다.

 

날생선은 질색하던 아들은 '미스터 초밥왕'을 읽은 후부터는 '초밥'에 관심이 생기더니
이젠 초밥을 잘 먹는다. '식객'을 읽으면서는 한번도 입에 대보지 않았던 음식들도
먹어 보게 되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음식에 숨어있는 풍부한 사연들을 맛깔나게 표현한 '오무라이스 잼잼'
은 아들이 아주 좋아하는 만화중의 하나다. 최근엔 같은 작가의 중화요리 섭렵기인
'차이니즈 봉봉 클럽'에 빠져 있다. 그래서 우린 겨울 방학을 하면 이 만화책에 나온
명동의 유명한 중화요리 집 '개화'와 중국 월병을 파는 제과점 '도향촌'을 직접 가서
맛보기로 했다. 아들은 겨울 방학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얼마전부터는 주호민의 '신과 함께'시리즈를 읽고 있는데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가게 되면
거치는 일곱 관문을 통과하는 이야기다. 생전에 지은 죄로 재판을 받는 대목을 읽으며
아들과 나는 서로가 지은 '죄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저는 욕도 몇 번 썼고 엄마에게 대들기도 많이해서 입으로 지은 죄를 심판하는
'발설지옥' 하고, 부모에게 불효하면 가게 되는 '한빙지옥'이 걱정되요' 하며 반성하기도 한다.
저승에 대한 전통신화를 재미나게 이해하면서 지금 삶에서 더 조심하고 잘 챙겨야 하는
것들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만화기도 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도 만화로 읽은 후에 책으로 더 재미나게 읽었고, 종교는 없지만
풍부한 성경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만화 '액션 바이블'도 함께 읽었다.
이렇듯 만화의 세계는 정말 풍부하고 다양하다. 책에 따라서는 엄청난 지적 수준을
요하는 것들도 있다.

 

 만화 2.jpg

 

과학 만화도 같이 읽고 있는데 덕분에 나도 요즘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있다.
지난주 한겨레 서평란에 실렸던 과학만화들을 몽땅 다 구입해서 읽고 있다.

 

만화는 나쁘지 않다. 다만 얄팍하고 내용 없는 만화에만 빠져들게 하는 부모의
무관심이 문제다.
아이가 무얼 좋아하는지에 먼저 관심을 가지다보면 아이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세상이 펼쳐진다. 그 세상을 만화로 먼저 접한다고 해서 나쁠리 없다.
만화로 다시 영화로 책으로 이어지면 한 주제를 정말 깊고 풍부하게 느끼고
배울 수 있다. 만화로 접한 내용은 이다음에 책으로 얼마든지 쉽게 더 깊게
접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그렇게 연결이 되지 않는다하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는 부모에 대한 신뢰와 함께
그 세상을 거닐며 나누는 즐거운 시간에 대한 추억들이다.

 

'초밥왕' 함께 읽고 일식집에 가서 초밥도 맛보고, '태일이 '읽고 청계천의
'전태일 다리'에도 같이 가보자. 어떤 교과서보다 더 풍부하고 재미난
체험이 만화를 통해 가능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해주는 부모만큼
아이에게 든든한 자원은 없다. 우린 만화로 이 모든 소통을 함께 한다.

긴 겨울 방학이 온다. 어떤 엄마들에겐 비상근무의 시작이겠지만 날 춥고
할 일 없는 방학에는 만화책이 딱이다. 당장 아이들의 관심사를 살펴보고
함께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구해보자.

 

마흔이 넘어도 만화는 역시 재미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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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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