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jpg

 

아들이 학교에서 2박 3일간 안동 하회마을로 먼나들이를 떠났다.
나룻배도 타고, 하회탈도 만들고, 한 끼는 자기들끼리 직접 밥도 해 먹는단다.
하필 떠나는 날이 기온이 뚝 떨어지긴 했지만 두꺼운 겨울옷입고 아이들은 어디서나 잘 놀것이다.

아들을 대야미역에 오전 8시 50분까지 데려다 주고 버스에 태운 후에 나는 애써 즐거운 표정을 숨겨가며
기운차게 바이바이를 했다. 첫아들이자 외아들을 보내는 1,2학년 엄마 몇은 버스가 떠나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 심정 충분히 안다. 나도 필규 혼자 있을 때는 그랬다.

 

유치원도 안 다니고 나와 24시간을 붙어 지내던 필규는 엄마옆이 아니면 잠 들지 않았다.
친지집에서 자고 오는 일도 아주 싫어했다. 어떤 아이들은 어려도 아빠따라 할머니 집에 다녀오거나
아빠랑 단둘이 여행도 다녀오던데 필규는 그런 일을 아주 아주 싫어했다.
두 살, 네 살 터울인 사촌형들을 아주 좋아해서 집에 놀러오면 신나게 함께 놀았지만 이모네 집에서
자고 올래 물어보면 고개를 젓곤 했다.


그러다가 네 살 무렵에 왠일인지 놀러온 사촌형아들을 따라 가겠다고 나선 날이 있었다.
아마 그날 셋이서 너무 재미나게 놀았던 까닭인지 형아들이 용인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일어서니
저도 함께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냥 한 번 해 본 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정말 형아들과 이모의 차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저러다가 엄마를 부르며 내리겠지, 설마 그대로 따라 갈 리가..
하고 있는데 차는 출발을 했고, 아들은 조카들과 차 창에 매달려 웃으며 손을 흔들면서
가 버렸다.
어머, 정말 갔네.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 믿을 수 가 없었다. 아들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어느새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펑펑 울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와 떨어진 것이다. 늘 너무 붙어 있어서 언제쯤 엄마와 떨어질 수 있을까
한숨을 쉬곤 했었는데 마음의 준비없이 덜컥 아이와 헤어지고 보니 정작 내가 견딜수 없었다.
집안은 텅 비어 보이고, 무엇을 해도 마음이 허공에 떠 있는 것 만 같고, 온 사방에 아이 얼굴이
어른거려서 혼자 많이 울었다.


신나게 따라나섰던 아이는 잠잘 무렵에 걸려온 이모의 전화기 속에서 '어엄마아. 보고 시퍼요'
하며 숨도 못 쉴만큼 격하게 울고 있었다. 그 전화를 받고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너도 나만큼 내가 보고 싶구나 확인하니 마음이 놓인 것이다.

 

그날 이후 아들은 다시 예전처럼 내 곁에만 붙어서 지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는 일은 상상 할 수 없었다.
일반 초등학교 다닐때에는 1박 이상 하는 여행이 없어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대안학교로 옮기고 나서 2,3일씩 다녀야 하는 나들이가 생겼다.
첫 나들이때는 떠나기 전날밤 '가서 엄마 보고 싶으면 어떻해요' 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지만
달라진 환경과 무엇보다 새 학교와 삼촌처럼 잘 해주시는 새 남자 담임과 친구들을 좋아했으므로
별로 힘들지 않게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1학기와 여름방학때 아들은 며칠씩 먼나들이를 잘 다녀왔다.

이번이 세번째이니 이젠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제가 속한 모둠에서 햄김치치즈 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고 좋아하면서 아들은 떠났다.

 

아이들이 먼나들이를 떠나면 엄마들은 휴가를 맞은것처럼 기뻐했다. 곁에서 챙겨야 하는 일이 없으니
홀가분하게 모여서 수다도 떨고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학교를 옮긴 봄에 처음으로 1박 2일 먼나들이를 떠난 날은 엄마들끼리 우리집에 모여 파티를 했다.
직업이 요리사인 엄마를 주축으로 함께 맛난 음식을 준비해서 맛있게 먹고 저녁엔
우리집 마당에 커다란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아 밤이 깊도록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더랬다.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낸 이유, 그동안 힘들고 또 고마왔던 일들, 서로에게 하고 싶고 묻고 싶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고민하고 품고 있는 생각들이 진솔하게 펼쳐졌다. 그날 따스한 불빛 앞에서
우린 오래 오래 함께 웃고 울었다.
결혼해서 10년 동안 세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처음으로 누려 보았던 훈훈한 순간이었다.

 

이번 2박3일의 먼나들이를 놓고도 엄마들은 정작 아이들 챙겨보낼 걱정보다는 이번엔 엄마들끼리
무얼하며 재미있게 놀까를 고민하느라 바빴다. 아이들 때문에 떠나보지 못했던 여행을 훌쩍
다녀오자는 얘기도 있었으나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엄마들이 많아서 성사되지 못했고
대신 이번에는 동네 참숫가마에 아침부터 모여 몸도 지지고 수다도 떨다가 저녁엔 근처 맛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최근에 우리집 근처의 아담한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집에 모여
모닥불에 고구마랑 옥수수를 구워 먹으며 밤늦도록 놀아보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아이와 마누라에게서 자유로와진 아빠들도 끼리끼리모여 동네 치킨집이나 호프집에서 느긋하게
술 한잔 기울일 것이다.

 

아이들의 먼나들이가 학교와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하며 선생님, 친구들과
더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는 것 처럼 부모들에게도 일상에서 서로를 더 깊게 나눌 수 있는
귀한 쉼표가 된고 있다.

윤정이도 좋아한다.
매일 투닥거리고 툭하면 제게 심부름을 시키고 화나면 버럭버럭 소리도 지르는 오빠가 없으면
윤정이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나 tv프로그램도 볼 수 있고, 엄마 관심도 평소보다 더 받을 수 있으니
안 반길 수 가 없다.

 

아들이 떠난 오늘은 친정엄마를 모시고 여자넷이서 근처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이 나들이를 떠나는 아이들과 선생님에게는 힘든 일이 되었지만 뜨끈한 온천에 가기엔
더없이 좋았다. 서둘러 몸씻고 돌아와 아들 데리러 갈 일이 없으니 오래 오래 놀다 와야지..
생각만 해도 신난다.
내일은 엄마들끼리 모여 밤 늣게 놀 것이고, 아들은 그 다음날 저녁 무렵에야 올 터이니 맛난 음식이나
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구나.

 

힘들고 고단한 육아에는 반드시 이런 특별한 쉼표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도 돌보고 서로를 돌아볼 수 있다. 아이들을 같은 학교에 보내고 수시로 만나 이야기를 한다해도
몇시간이고 느긋하게 회포를 풀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이렇게 먼나들이를 떠날때
뿐 이다. 너무 가까운 사이도 가끔은 거리를 두어봐야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는 법이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떨어져 있는 시간에 서로를 더 알뜰하게 생각하며 충만한 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만나면 얼마나 좋은가.

 

아들은 안동으로 떠났다. 새로운 장소와 경험이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밤엔 모처럼 남편과 영화 한 편 느긋하게 보고, 손 한 번 잡아볼까.
흐흐흐..
이 다음에 세 아이가 모두 집을 떠나게 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제 막내가 세살인데 그런 날은
먼 훗날에 생각하기로 하고 모처럼 생긴 이 귀한 휴가를 알뜰 살뜰하게 보내야지..

 

그러니까 여봉.. 오늘 일찍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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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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