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룸이랑.jpg

 

꿀같이 달콤한 막내 이룸이의 키스는 확실이 생활의 큰 활력소이자 육아로 지친 내 마음을 달래주는 명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꿀같은 시간은 기나긴 육아의 시간 중 그야말로 꿈처럼 잠깐씩 뿐이고, 주로는 쉼없이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요구에 몸과 마음이 지치기 일쑤다.

여름도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계절이 오기도 했지만 마음이 조금씩 울적해지곤 했다.
몸도 여기 저기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오는 것을 느끼며 여름 나기가 많이 힘들었었나...

생각하곤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애 셋 키우는 동안 부부만의 시간을 온전히 보내본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애들이 어리고 부모 역할도 서툴러서 그저 잘 해내려고 애쓰며 지낼때는 그런줄 몰랐는데 세 아이 키우는 동안 1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보니 문득 짧은 연애끝에 결혼해서 바로 부모가 된 남편과 나는 단둘이 지냈던 알콩달콩한 기억들이 너무나도 적었다.
첫 애를 낳았을땐 처음 해보는 부모 노릇이 벅차서 허덕이며 보냈고, 둘째가 태어났을때는 또 처음 길러보는 딸이라서 이리저리 허둥거리며 보냈다. 셋째를 낳고서는 애 기르는 요령은 늘었지만 이젠 현격하게 떨어진 체력때문에 늘 힘들어서 쩔쩔맸다. 그러다보니 10년이 훌쩍 지나있었다.


열 살, 여섯 살, 세 살 아이는 아직도 끝없이 부모의 새로운 관심과 노력을 요구하는데 어느덧 40대 중반으로 들어선 우리 부부는 아이들때문에 기쁘다가도 문득 문득 허전하고 지치는 무기력증에 빠지곤 했다.
갱년기인가... 아니면 체력이 떨어지는 중년이라서일까...

한동안 고민도 했었는데 우리를 잘 아는 지인들은 한결같이 애들을 위하는 것도 좋지만 부부끼리 지내는 시간을 어떻게 해서라도 가지려는 노력을 해보라고 조언하며 안타까와 하곤 했었다.


하긴 매일 늦게 퇴근하는 남편은 간신히 아이들 씻기는 것을 도와주고 나면 바로 잘 시간이 되곤 했다.
애들 재우고 뒷정리 하고 나면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고 남편과 애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주말이면 밀린 농사며 집안일이 있어 더 바쁘고 고단했다.
대화다운 대화를 할 시간도, 서로에게 충분히 기대고 의지하고 위로받고 위로 해 줄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살았다.

 

그래... 애들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부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은 그렇게 했는데 실제 내 삶은 늘 애들 중심에 애들 위주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부부사이를 함께 키우지 못하는 삶은 한 바퀴로 달리는 자동차처럼 늘 위태위태하지 않았던가... 지금부터라도 남편과 둘만 보내는 시간을 만들어야지... 노력해야지...
애들 다 크고 나면 우리만 남을텐데...

남편과 내가 모처럼 이런 의견을 모았던 밤, 우린 몇가지 결정을 내렸다.


우선 애들은 늦어도 열시 전에 모두 재우기로 했다.
남편이 늦게 오다보니 아빠가 퇴근 한후 애들이랑 시간을 보내다보면 11시나 되야 잠자리에 들곤 했는데, 그렇게 하면 정말 남편과 얘기 한 마디 나눌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아홉시 반에서 열시 사이에 재우기로 했다.

늘 밤에 할 일이 많은 큰 아이가 걸리적 거리긴 했지만 아홉시부터 이불펴놓고 반 윽박지르다시피 분위기를 잡았더니 그럭저럭 열시전에 애들이 잠들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그렇게 해서 얻은 금쪽같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 소파를 끌어다 놓고 앉아 내가 미리 다운받아 놓은 영화를 함께 보았다.


애들은 안방에서 잠들어 있고 부부만 어두운 거실소파에 몸을 꼭 붙이고 앉아 영화를 보는 것이 정말 얼마만인지 모른다.
하필 이렇게 본 첫 영화가 '쌍화점'이었다는 것이 두고 두고 우리를 웃게 했지만 다 지난 영화라고 해도 한때 내가 퍽 아꼈던 '조인성'이 일종의 성인식을 치루는 것처럼 화끈한 베드신을 보여주는 것을 남편과 함께 감상하며 킥킥거리는 시간은 재미나고 행복했다.
나는 소파에 누워 남편의 넉넉한 배에 내 다리를 올려 놓고, 남편은 내 다리를 쓰다듬으며 소근거리기도 하고 거리기도 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접촉과 쓰다듬음이 얼마나 내 마음을 푸근하게 채워주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있을때 남편과 함께 소파에라도 앉으면 잽싸게 우리 사이를 파고드는 막내 때문에 서로 은근한 손길 한번 제대로 주고 받기 어려웠다. 모처럼 하고 싶은 애기가 있어 꺼내도 제 얘기를 들어달라고 매달리며 끼어드는 아이들 봐주다보면 애기고 뭐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단 둘이 서로 안아주고 만져주며 영화 한편 느긋하게 볼 여유고 없이 살았구나..
힘들긴 하지만 진즉에 노력했다면 가능했을 일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평소보다 더 늣게 잠들어야 했지만 잠을 조금 덜 잔 것보다 더 큰 만족과 뿌듯함이 나를 한층 힘나게 했다.

 

그래서 나는 그 후로 틈틈이 인터넷에서 남편과 함께 재미나게 볼 영화를 검색하곤 한다.
볼 만한 영화를 찾으면 다운받아 놓고 애들을 일찍 재울 궁리에 몰입한다.
매일 늦게 잘 수 는 없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이렇게 작정하고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 사이를 훨씬 더 가깝게 하고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데 좋다는 것을 둘 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젠 '내 아내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를 그야말로 킬킬거리며 재미있게 봤다.
남편의 고향이 강릉이라서 영화속의 여러장면들이 더 재미나게 다가왔다.

영화 한 편 함께 보고 부부끼리 더 화끈한 시간까지 보낸다면 좋겠지만 이미 확 떨어진 내 저질 체력은 영화를 끝까지  보고 이불위로 바로 쓰러지는 것도 벅차다보니 계획때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둘 만 통하는 얘기들이 늘어나는 것이 좋다.
애들이랑 함께 보는 '해리포터'나, '스타워즈'도 좋지만 어른들끼리 이해하는 유머와 행동을 보면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즐거움은 정말 컸다. 애들은 모르는 남편과 나만 아는 얘기들이 쌓여가는 기분이랄까.

 

덕분에 나는 요즘 남편과 함께 볼 찐하고 재미난 영화를 찾는 즐거움이 생겼다.
그런 영화를 찾으면 컴 속에 모셔놓고 남편과 내 일정을 맞추어 D데이를 정하는 것이다.
서둘러 애들을 재우고 나면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어둔 밤하늘을 배경삼아 서 있는 소나무와 매실나무와 감나무의 실루엣을 뒤로 하고 그 앞에 서 있는 컴퓨터 화면을 여는 것이다.
어두운 세상에 꿈처럼 펼쳐지는 영상속에 함께 빠져들며 웃고, 끄덕이고, 심각하게 몰입하는 동안 남편과 나는 둘 만의 세상에 오롯이 깃들어 있게 된다.

아직 둘만 여행하는 것도 어렵고, 시내에 있는 대형 영화관에 가는 일도 불가능하지만 그런 날들이 오기 전까지 애들이 잠든 깊은 밤에 남편과 나만 누리는 이 은밀하고 즐거운 시간을 열심히 만들어 볼 생각이다.

 

남편과 함께 볼 좋은 영화 있으면 추천해 주시라.

19금도 물론 대 환영이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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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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