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룸 16.jpg

                                                             (언니 흉내를 내는 이룸)

 

세살인 막내 이룸이는 여섯 살 언니가 최고의 라이벌이다.
이룸이가 원하는 것은 항상 '언니가 하는 것, 언니가 가진 것'이다.
가방을 매도 언니가 맨 것을 달라고 하고, 옷을 입어도 언니랑 똑같은 옷을 달라고 한다.

가끔 시내에 나가면 쌍동이도 아니면서 자매가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데
요즘 무지무지 공감하고 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물려 입혀도 될 옷을 한 개 더 사서
동생에게 입혔을까.

 

사정이 이렇다보니 하루 종일 수없는 싸움과 큰 소리와 울음이 터진다.
언니것 차지하지 못한 이룸이가 울고, 동생한테 뺏긴 윤정이가 울고, 그러다가 한 대 때리고
그러면 동생도 때리고, 보다못한 내가 꽥 소리 지르며 떼어 놓는 식이다.
아이 하나가 하루 종일 선택하는 일의 가짓수는 끝이 없다. 그 모든 것에서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고 한 아이를 설득하거나 타일러야 하고 달래야 하고 위로해야 하는 일은
큰 아이까지 방학을 한 삼복더위의 집안에서 나를 열반에 들게 할 지경이다.

 

네 살 터울로 오누이를 키울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윤정이는 오빠처럼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지 않았다. 나이 차도 확실했고 오빠가 남자였기 때문인지
오빠처럼 축구를 잘 하고 싶다거나 오빠처럼 빨리 달리고 싶다거나 하는 욕심은 없었다.
타고난 취향이 달라서 크게 부딛치는 일도 없었다. 그저 오빠가 일부러 방해하지만 않으면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했다. 그래서 두 아이 키우는 동안 종일 싸운다거나, 늘 한 아이가
울거나 짜증을 낸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셋째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막내는 세살 차이 나는 언니와 모든 일에서 경쟁하고 다툰다. 물론 서로 죽이 맞아
사이 좋게 놀때도 많고 비슷한 취향이 있어 함께 좋아하는 일도 많지만 욕심도 많고, 자기 주장도
유난히 강한 막내는 번번히 언니 것을 욕심내고 끝내 다투거나 울고 만다.
언니가 할 수 있는 일을 저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정말 강해서 언니가 하는 모든 일에 기를 쓰고
달려든다.

 

7월부터 윤정이는 네살때 했다가 1년 반을 쉬었던 발레를 다시 시작했는데, 이룸이는 저도 같이
발레를 하겠다며 내내 보채고 있다. 발레를 하러 가는 날만 되면 발레복 입고 준비하는 언니 옆에서
저도 언니의 작아진 발레복을 입고, 작아진 발레 슈즈를 신고 준비를 하느라 야단이다.
발레교실에 들어가면 저도 같이 들어갔다가 수업이 시작되면 나오는데 교실 문이 닫히는 그 순간
부터 수업이 끝나는 내내 '나도 반내(발레) 하꺼야. 언니랑 가치 하꺼야'하며 문 앞에서 실랑이를 한다.
문 저쪽에서 발레 음악이 들려오고 언니들이 뛰는 소리라도 들리면 더 난리다.
왜 자기는 하면 안되는지 억울하고 분한 모양이다.

 

언니처럼 발레를 멋지게 하고 싶다는 욕심은 이룸이로하여금 언니가 하는 동작을 쉼없이 따라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언니가 하는 동작을 비슷하게나마 흉내낼 경지에 이르렀다.
사진에 나오는 자세도 처음엔 두 발이 머리에 닿지도 않았는데 매일 연습하더니 끝내 제대로된
자세를 만들어 내어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윤정 7.jpg

                                                                   
물론 이룸이의 이 눈물겨운 노력은 이룸이보다 더 완벽한 자세를 보이는 윤정이앞에서 무너지고
말지만 저 정도만 해도 주변에서 놀라운 탄사가 쏟아지기때문에 이룸이는 퍽이나 만족해 한다.
동네 사람들은 나보고 발레 교습비를 두배는 내야 한다고 말한다. 윤정이가 배워오는대로
이룸이까지 따라하니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언니를 둔 여동생들 대부분이 언니와 똑같이 하려고 하고 언니가 하는 것을 욕심내긴 하지만
이룸이의 노력과 야망은 늘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집요하고 강하다.
겨우 30개월된 아이가 보여주는 이런 모습들은 자주 나를 지치게 하지만 덕분에 배움도 성취도
빠르니 내심 대견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3월생인 윤정이는 이해가 빠른 아이여서 네 살때 저보다 두 세살 위인 언니들만 있는 발레반에
들어가 훌륭하게 따라 배웠다. 1월생인 이룸이는 내 년에 언니와 같이 발레를 할 수 있을 듯 하다.
영리한 언니와 욕심많은 여동생이 이루어내는 경쟁과 성취가 은근히 기대된다.

덕분에 더운 여름이 더 더울것 같지만 아이들이 보여주는 이 눈부신 성장이 있어 한 여름 견딜
힘을 얻는다.

 

윤정이도, 이룸이도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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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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