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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학교에서 2학년까지 다니고 대안학교로 옮겼던 아들이 드디어 첫 학기를 마쳤다.
그 5개월간 아들에겐 적지않은 변화가 있었다.
물론 일반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아이가 대안학교로 옮기자마자 스스로 척척 잘 알아서 하는
멋진 아이가 되었다는, 그런 드라마같은 이야기일리는 없다. 아들은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고, 깨우려면 머리 뚜껑이 서너번 열려야 한다.하지만 분명한 변화들은 있다.

 

우선 아침이 여유로와졌다.
우리집에서 산 언덕 하나를 넘어가야 있는 대안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한 시간에 한번씩 있는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집 아래 삼거리에 정류장이 있다. 일반학교 다닐때에는 아침마다
실어다 주거나, 이웃의 차를 얻어타야 했는데 새 학교로 옮기면서부터 아들의 등교독립이
이루어진 셈이다. 대야미역에서 아홉시 정각에 출발한 마을버스는 우리집 앞에 아홉시 오분쯤
서는데, 아들은 그 차를 타면 된다. 집에서 아홉시까지 뒹굴거리다가 후다닥 달려나가면
충분하니 여덟시만 되면 등 떠밀어 내보내야 했던 1,2학년때보다는 한결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아침잠도 늘었지만 아들도 나도 훨씬 편해졌다.

 

전교생은 서른명 남짓에 교사가 정규교사가 다섯명, 나머지 수업은 특강 교사들이 맡고 있는데
필규 학년은 일곱명이다. 필규는 운 좋게도 처음 들어오신 남자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는데
늘 여선생님만 만나던 필규는 담임선생님을 너무 너무 좋아했다. 학교에 가보면 담임 선생님
등에도 매달리고, 어깨에도 올라타는 녀석을 볼 수 있다.

일반학교에서 교사 한 명이 스물 여섯명의 아이들을 다룰때보다 적은 수의 아이들이 교사에게
충분한 보살핌과 돌봄을 받게 되니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에 대한 참여도도 높고 교사와
하는 약속이나 함께 정한 규칙을 여기는 마음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수업이 끝난 후부터 학교가 문을 닫는 오후 여섯시까지 학교 앞 개울이나 들판에서
충분히 놀 수 있는게 아들은 제일 신이 난다.

아들의 학교에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의 아이를 오후 여섯시까지 학교에서 보살피면서 간식을
제공하는 '산들맘'이라는 제도가 있다. 전업주부 엄마들이 한 달에 한번씩 돌아가며 오후 세시에서
여섯시까지 학교에 있으면서 간식을 만들어 주고 아이들을 챙겨주는 제도다.
나도 한 달에 한 번은 시간과 노력을 제공해야 하지만 내 아이가 매일 다른 엄마들이 만드는
정성스런 간식을 먹으며 알뜰한 돌봄속에서 여섯시까지 즐겁게 놀다 올 수 있으니 대환영이다.

 

얼마전엔 아침밥상에서 아들이 '아참, 수학 숙제 안 했다' 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부랴부랴 가방에서 수학 문제집을 꺼내어 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게 몇 번 물어보았지만
'모르는 것은 그냥가. 엄마가 가르쳐주면 네가 아는게 아니잖아. 모르는 건 선생님에게 물어보는게
맞지 않을까?' 했는데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려서 깜짝 놀랐다.
내내 지켜보았더니 손가락도 열심히 헤아려가며 아들은 끙끙대면서도 저 혼자 숙제를 하고
달려나갔다.
일반학교 다닐때 수학 숙제때문에 늘 사달이 났었던 걸 생각해보면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모습이었다.
그때는 전혀 숙제를 할 마음이 없었다. 그런 아이를 책상에 앉혀 놓고 가르치자니 아들은 짜증을
내며 '하기 싫다구요. 내가 왜 해야 하는데요.'하며 대들기 일쑤였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필규에게 물어 보았다.
'수학 숙제는 어떻게 되었어?'
'그냥 그럭저럭 해 갔어요.'
'엄마, 아침에 정말 놀랐어. 너, 일반 학교 다닐때 수학숙제 하던 일 기억나니?'
'네, 기억하죠. 안 하겠다고 울고 불고, 왜 해야 하냐고 소리 지르고...'
'어머, 다 기억하네? 근데 오늘 아침엔 엄마가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화도 안내고
너 혼자 하더라. 일반 학교에서 수학숙제 하던 때와 어떤 차이가 있어?'
'... 이 학교는... 스스로 하게 하거든요.'

 

아들의 입에서 나온 그 대답은 내가 대안학교를 보내면서 혹 고학년쯤에는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불과 학교를 바꾼지 서너달만에 아들은 그렇게도 싫어하던
일들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슬쩍 넘겨본 답들은 틀린 것도 많았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일을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렇게 설득하고 야단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중에 가정방문을 오신 선생님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학교에선 수학을 언제 가르친다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3학년 과정중에 수학이
속해 있지만 언제 가르칠지는 교사와 아이들이 정한다. 어느 부분을 얼마나 배울지도 우선
아이가 선택한다. 3학년이 일곱명이지만 아이들은 각자 제가 배울 수준을 스스로 정한다고 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더 고급 단계를 배우고, 천천히 가고 싶은 아이들은 한 단계 낮은 수준을 선택한다.
스스로 정한 배움을 하니까 거부감없이 잘 한단다. 또래끼리 경쟁도 자연스러워서 다른 친구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악착같이 더 어려운 것들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런것에서
자유로운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한 단계를 충분히 배워가며 천천히 나간다.
이것이 필규를 움직이게 했던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수준을 요구받는 일반학교에선 수학은 필규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대안학교니까 그런게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일반 학교에서 아이들마다 다른 수준
을 선택하면 교사 하나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감당하냐고, 그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이야기 일뿐이라고 할것이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이런 수업을 공교육에서 하고 있다. 아이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 경쟁할 뿐이다.
다른 친구들이 어떤 단계를 배우던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의 계획표대로 나간다. 교사는
아이들마다 다른 배움의 단계를 이해하고 그 아이에게 맞는 도움을 주는 존재다.

교사당 학생수를 줄이고 교사에게 오로지 교육만을 맡게 하면 우리도 가능하다.
핀란드 교육을 따라가야 한다고 사방에서 야단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어렵다. 대안교육은 부족하지만 그런 배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들은 1학기 동안 바느질을 배웠고 홈질로 필통을 만들기도 했다. 사물놀이 장단도 줄줄 외운다.
매일 아침 산책을 하며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텃밭일기와 생활 글쓰기도 곧잘 한다.
학교 다닐땐 선생님이 검사하는 일기 한 편 쓰는 것을 싫어했던 아들이었다.
야채와 김치 먹는 것을 여전히 싫어하지만 육류는 일주일에 딱 한번 나오는 채식 위주의 급식을
하면서 아주 조금씩 아들의 입맛도 변하고 있다. 이따금 학교에 가보면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교실 바닥을 걸레질하고 걸레를 빨고 있는 아들을 만나기도 한다.  집안 걸레질을 하라고 하면
질색이지만 제가 할 일을 정하고 그 일에 책임을 지는 법을 익혀가면서 얼마전부턴 매일 저녁
설걷이를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모두가 한 가지씩 집안일을 나누자고 했더니 필규는 설걷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용돈을 줘야만 하던 일을 아무런 댓가없이 매일 하고 있다.

 

동생하고 변함없이 투닥거리고, 가끔씩 거친 말도 하고, 컴퓨터 게임을 더 하게 해달라고 졸라대고
버릇없게 굴기도 하지만 아들은 분명 전과 달라졌다. 그리고 나날이 더 새로와질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아들이 보낸 첫 학기가 정말 고맙다.
방학동안엔 전교생이 함께 하는 3박 4일간의 캠프도 있고, 아빠랑 가는 1박 2일 캠프도 있다.
친구네 집은 커녕, 친척 집에서도 저 혼자는 놀러가지 않던 녀석이 이 캠프를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아들은 조금씩 내 품을 떠나고 있고, 조금씩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가고 있다.
그 모습이 보인다.

 

대안학교로 옮긴 모든 아이들이 성공적인 적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일반학교로 오는 아이들도
있다. 일반 학교에서도 행복한 배움을 하는 아이들도 물론 많다. 대안학교만이 정말 '대안'이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이 학교가 잘 맞는다. 그래서 다행이다.
앞으로 보낼 날들을 더 많이 기대하며 나도 매주 한번씩 엄마들과 공부모임을 하고, 한달에
두번씩 엄마 교육을 받고, 한달에 한번씩 전체 부모교육을 받는 강도높은 배움을 하고 있다.
아들덕에 마흔 넘어 열심히 책 읽고 공부하게 된 것도 대안학교 보내면서 우리에게 온 변화다.

 

자..이제 방학이다.

즐겁게 부대끼고 함께 성장하면서 방학도 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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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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