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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열두살 된 큰 아들은 세 아이 중에 가장 고집이 세다.

자기 주장도 강하고, 취향도 분명하고, 여러면에서  내겐 제일 까다롭다.

특히 먹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아주 예민하고 까다롭다.

예를 들어 내가 아침으로 토스트를 준비하면 두 딸은 어떤 토스트건

환영하며 맛있게 먹어주는데 아들은 그렇지 않다.

'우유 계란 토스트예요? 난 이거  싫은데... 그냥 계란 프라이 해서

만드는 그 토스트가 좋다구요' 한다.

'계란이 모자라서 그 토스트를 할 수 없었어. 오늘은 이걸 먹자' 해도

'난 이 토스트 먹기 싫어요. 안 먹을래요' 하며 기어이 접시를 밀어낸다.

'재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이 토스트밖에 할 수 없었어. 오늘만 그냥 먹자' 해도

'그러면 엄마가 계란이 별로 없어서 이런 토스트를 하겠다고 미리 말을 했어야지요'

하며 따진다.

이런 젠장... 말은... 맞는 말이다.

그래도 아침에 무슨 음식을 먹을 건지 살림하는 사람이 냉장고 재료 있는대로

준비해서 내 놓으면 되는거지, 그걸 다시 아이한테 자세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건가... 싶은 마음에 부아가 치민다.

다른집 아이들은 엄마가 어떤걸 만들어도 별로 불평 안 하고 설령 맘에 안 들어도

적당히 먹어준다는데 얘는 왜 이렇게 까다로운거야.. 화가 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아들 말이 맞는 것 같아 야단은 못 치게 된다.

'그래도 만든 사람이 정성을 들인 음식에 대해서 맘에 안 들어도 소중하게

여겨주는 그런 자세도 좀 생각해 줘'

옹색하게 타일러보지만 영 마음은 마뜩치 않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아들은 항상 먹고 싶은 음식이 너무 많다.

매 끼니때마다 '오늘 메뉴는 뭐예요?' 묻는것도 꼭 아들이다.

음식 종류 뿐만 아니라 조리법까지 상세하게 주문한다.

비빔밥을 한다고 하면 고기를 넣어 볶음 고추장을 만들어 달라던가 하는 식이다.

해 주는 대로 묵묵히 먹는 남편과 어떤 걸 해줘도 항상 잘 먹는 두 딸이 있다보니

아들의 구체적이고 까다로운 취향은 늘 '쟤는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해'라는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내가 '시끄러워. 해주는 대로 먹어!'하고 단호하게

자르는 엄마도 못 된다. 애들 앞에서는 나름 아이 의견을 존중해주는 엄마인 척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른이 하라면 해!'같은 말 따위는 절대 내 아이들에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아이를 키워왔던 나였다. 귀찮고 싫어도 조금 애써서 해줄 수 있는 거면

해주려고 노력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분명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키웠더니 울 아들은 제가 원하는 것에 대해 언제나 너무나 당당하다.

 

주말에 입이 심심할때 내가 자주 하는 간식이 우리밀 또띠아 피자다.

한살림에서 파는 우리밀 또띠아(일종의 넓적한 밀가루 전병이다) 위에 치즈 피자만

솔솔 뿌려 오븐에 살짝 구워 주는데 얇은 치즈 피자 맛이 나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그날도 치즈 피자 만들어 주겠다고 했더니 두 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필규는 시큰둥했다.

'치즈피자 말구요, 진짜 토마토 토핑 올려서 하는 그런 피자 만들어 주세요' 하는거다.

'뭐니뭐니해도 피자엔 파프리카나 피망이 있어야 하는데..' 한다.

'그런거 없는데... 토마토 토핑도 없고 냉장고엔 방울 토마토랑 양파 뿐이라고..'

'그럼 양파라도 올려 주세요. 토마토도 그냥 생으로 썰어서 올리면 되잖아요' 한다.

 

간단하게 간식을 만들려고 생각했는데 아들 때문에 또 복잡해졌다.

귀찮으니까 그냥 치즈만 올려서 먹자.. 고 하면 펄펄 뛸 것이다.

냉장고에 재료가 있는데도 안 만들어준다고, 엄청 난리칠 것이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니가 직접 만들어  했더니 재료 꺼내 달란다. 제가 썰겠단다.

아아... 결국 부엌은 난장판이 되었다. 아들은 더디게 토마토 몇 개 썰더니 '됬죠? '하며

의기양양하게 나간다.

 

우리밀 또띠아위에 얇게 썬 방울 토마토를 죽 돌려 얹고 양파를 얇게 썰어

가운데 올렸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아침에 해 먹은 다진 돼지고기 볶음도 조금

남아 있었다. 그것도 재료위에 올리고 치즈를 뿌린 후 오븐에 구웠더니

아주 근사한 냄새가 났다. 먹어보니 깜짝 놀랄만큼 맛있었다.

'그것보세요. 제 말대로 하니까 더 맛있지요?' 아들은 기세등등해서 피자를

입에 넣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여동생들도 맛있다며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필규 2.jpg

 

예상밖의 반응에 나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연달아 대 여섯장의 피자를 더 구워서 모두가 실컷 맛있게 먹었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아들의 까다로운 요구가 아니었다면 이런 맛있는 피자를 만들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그냥 늘 먹던대로 해 먹고 말았겠지.

 

생각해보니 아들이 요구하고, 부탁하고, 주문하는 음식들을 만드느라

툴툴거리며 애쓰는 동안 내가 만들어내는 음식들도 날로 늘어났다.

가족들 모두, 맛이 있던 없던 해 주는 대로 먹었다면 이렇게까지 여러가지를 궁리해가며

음식을 만들게 되었을까..

 

중국음식을 다룬 만화를 보고 나서 중화풍으로 야채를 볶아 달라고 부탁하는 아들 덕에

굴소스를 음식에 넣게 된 일이나,  어느날 갑자기 홍합탕을 꼭 먹어야 한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남편이 출장중에 수산시장까지 들러 사온 홍합 한 말을 며칠동안 실컷 먹었던 일들도 까다로운

아들 입맛  탓이었다.

순둥이 딸들만 키웠더라면 나도 지금껏 그저 늘 해 먹는 음식만 할 줄 아는 그런 주부로

남았을지 모른다.

 

흔히 제 주장이 강하고 고집에 세고 특정 분야에 까다로운 아이를 우린 힘든 아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아이야 말로 부모를 키우는 아이들이 아닐까.

그 당돌한 주장에 귀 기울이고, 타협하고 설명하고 이해시키느라 애쓰면서 부모는 아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 늘 해오던 방식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되고, 내게 익숙한

방식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아들은 늘 쉽게 가지 않는다. '왜요? 왜 그래야 하는대요? 저는 싫어요' 하며 날을 세운다.

이 정도는 그냥 어른이 하자는 대로 하면 좋겠는데 싶은 것도 아들은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래서 늘 큰소리가 나고, 따지고, 설명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지만

어른의 권위에 눌려 제 생각도 펴지 못하는 아이 보다는 차라리 대들고 날을 세워도

제 생각을 드러낼 줄 아는 것이 낫다.

다만 제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들은 아주 아주 많은 것들을 더 배워야 하겠지만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내가 아들을 까다롭게 키운 것인지, 까다로운 아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들은 여전히 목소리 크고, 제 주장 강하고, 내게 제일 많이 부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제일 밉기도 하고, 나를 제일 힘들게 할 때도 많지만 돌아서서 생각하면 끄덕 끄덕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내 글 소재도 제일 많이 제공하고, 내  생각의 범위도 제일 많이 늘려 놓는 것도 아들이니

어쩌면 아들에게 고마와 해야할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소심한 엄마는  이 글은 아들이 못 읽게 해야지... 중얼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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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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