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규_1~1.JPG


12월 24일 방학을 하루 앞둔 날, 필규는 가방 가득 1년 동안 생활했던 짐들을 챙겨 집으로 왔다.

배웠던 책이며 만들었던 것들이 가방에 수북했다. 이것 저것 들여다보며 '1년동안 이런걸 했구나.' 끄덕이고 있는데 갑자기 반짇고리를 찾는다. 학교에서 만들다 완성하지 못한 마스크를 마저 하겠단다.


유기농 면을 오려서 양쪽에 고무밴드를 연결해서 꿰매서 완성하는 마스크였다. 바늘땀이 엉성하긴 했지만 필규는 아랑곳 않고 뚝딱 뚝딱 꿰매더니 금방 마무리를 지었다.


 

마스크~1.JPG 


한쪽 구석엔 제 이름도 새겨 넣었다. 입에 대고 해 보니 제법 제 얼굴 모양에 맞는 마스크가 되었다.오빠가 바느질 하는 모습을 보던 윤정이가 '이것도 좀 꿰매줄래?' 하더니 오래전에 샀다가 가운데가 찢어져 구석에 처 박아 두었던 목배게를 가지고 왔다. 필규는 다시 바늘에 두꺼운 실을 꿰어 바느질을 시작했다.



필규와~1.JPG 


얼기설기 감치는 것이었지만 튼튼하게 고쳐 놓는 모습을 보니 대견했다. 윤정이 것을 먼저 고쳐주고, 다음에 제 것도 찾아내어 단단하게 다시 꿰매 놓았다. 윤정이는 오빠가 바느질 잘 한다며 가까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필규가 다니는 대안학교에서는 1학년 때부터 바느질과 코바늘 뜨기, 대바늘 뜨기 같은 것을 모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학교에 가 보면 아이들이 둘 셋씩 모여 바느질을 하거나 뜨게질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여자아이들이 더 좋아할 거라고 여기지만 남자아이들도 이 수업을 아주 좋아하고 또 퍽 잘 해낸다. 고학년 남자 아이들은 머플러나 장갑, 컵 받침 같은 것들을 척척 떠 낸다. 수업에 쓰이는 자잘한 소품들도 직접 바느질 해서 만들어 낸다.


시험에 나오는 공식을 외우는 일 보다, 당장 내 일상에 쓰이는 생활 기술들을 가르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대안교육이다. 그래서 바느질과 뜨게질, 간단한 목공 같은 것들을 모든 아이들이 배우게 된다. 


필규도 3학년으로 편입하자마자 바느질을 배웠다. 처음엔 커다란 부직포로 실습을 하더니 금방 옷감으로 간단한 소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은 주머니나 손수건 같은 것들을 만들어 와서 내게

선물하기도 했다. 바느질이나 뜨게질은 여자들이나 하는 것 이란 편견이 교육과정 안에 없다보니 누구나 다 배우고 익히는 기술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여자아이들보다 더 좋아하고 솜씨도 좋은 남자 아이들도 많았다. 


일상속에서 이 일은 남자가 하는 것, 혹은 이건 여자가 하는 것이란 구분이 우리에겐 분명 있다. 요리하는 남자가 늘고 집안일에도 남녀 구분이 없어진다고 얘기하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칠때는 우리도 모르게 이런 구분들 안에서 아이들을 대하기 쉽다.


그러다보니 바느질을 좋아하고 뜨게질에 소질이 있는 아들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가 없다. 그런 일은 사소하게 여기고 시험을 잘 보고 성적을 더 잘 받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이렇게 큰 아들들은 좋은 기업에 취직해 원룸을 얻어 독립을 해도 외이셔츠 단추 하나 제 손으로 달 줄 몰라 세탁소에 맡기는 일이 일어난다. 엄마가 없으면 스스로 밥을 차려 먹을 줄 알고, 제가 먹은 그릇은 씻어 놓도록 가르치는 것, 떨어진 단추나 구멍난 양말 정도는 스스로 바느질해서 해결하는 능력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대안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필규는 바느질을 좋아하게 되었다. 천을 오려서 성탄절 장식품을 만드는 일도 돕고 간단하게 찢어지거나 구멍난 옷들은 저 혼자 고쳐서 입고 다닐 줄 알게 되었다. 요즘엔 뜨게질에 관심이 많아져서 이쁜 털실을 사 달라고 졸라댄다. 겨울 방학엔 뜨게질을 하면서 보내겠단다. 덕분에 오랜만에 어느 구석에 모셔 두었던 대바늘들을 찾아냈다.

'나도 한때 머플러를 뜨고 모자를 뜨던 젊은 날이 있었구나.'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그래... 겨울이면 내 엄마도 당신의 낡은 스웨터를 풀러 우리들 신을 덧신과 머플러를 떠 주셨지.' 


올 겨울 방학은 아들과 함께 뜨게질을 하며 보내기로 했다. 윤정이도 이룸이도 다 하고 싶다고 야단이니 세 아이들과 둘러앉아 서로 서로 일러주고 가르쳐주며 뜨게질 하는 풍경이 나올 듯 하다. 그러다 출출하면 아들보고 라면도 끓이라고 하고 계란 후라이도 해 달라고 해야지. 


이제 구구단을 완벽하게 외운것이 큰 자랑인 열한 살 아들이 부끄럽지 않다. 바느질 하고 뜨게질 하며 열 두살을 맞는 모습도 이쁘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제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들을 스스로 해 내는 것들을 배워가고 있으니 그보다 소중한 배움이 또 있을까.


 

목배게~1.JPG 

아들이 꿰매놓은 목배게를 오래 오래 바라보고 있는 겨울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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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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