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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결혼 11년간 세 아이 낳아 키우는 동안

우린 큰 고비가 별로 없었다.

남편은 워낙 알뜰했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 엄한데 돈 쓰는 일이 없었고

나는 세 아이를 집에서 낳아 젖 먹이고 천 기저귀 쓰며 키우는 동안 애 키우는데

큰 돈 들인 일이 없었다. 장난감이며 책이며 옷이며 하다못해 신발과

속옷까지 죄다 물려입히거나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구해다 입혀가며 키웠고

세 아이 모두 입학 전 사교육은 커녕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보내지 않았더니

정말 남편 혼자 벌어도 아이 셋 키우고 저축까지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작은 집 한칸도 장만 했고, 아이들 이름으로 적금까지 알뜰하게 부어가며

언젠가는 아이들과 해외여행 한 번 다녀오리라는 꿈도 품기 시작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많이 어려워진 것이다.

남편은 개인사업을 하다가 직장에 들어가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다.

그래도 정년까진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이젠 정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났다.

막내 나이 이제 겨우 네살, 열한 살 첫째도, 일곱 살 둘째도 아직은 너무 어린데

남편은 쉰이 머지 않았으니 만약 갑자기 남편이 회사를 떠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걱정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남편은 그런 내색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고 남편이나 나나 어떤 일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긴 하지만 살림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하루 하루

돈 나가는 것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한가지 결심을 했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늘 카드빚으로 뭉텅 빠져나가는 남편의 급여를 보면 가슴을 치면서도 다시

카드를 꺼내드는 어리석은 일상을 살아온 내 지난날을 통렬하게 반성했다.

당장 눈 앞에서 돈이 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카드의 가장 큰 함정이다.

계획에 없다가도 카드만 있으면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는 일이 흔했다.

머지않아 필요한 물건이라거나, 지금 사는 것이 더 싸다거나 하는 이유는

늘 있었지만 결과적로는 그렇게 산 물건들을 모두 다 알뜰하게 쓰지는 못했다.

 

본래 신용카드도 딱 두장만 있었지만 과감하게 모두 지갑에서 없앴다.

그렇다고 꺽어버리지는 않았지만 집안 구석에 모셔 놓고

한달에 들어갈 실 생활비를 은행에서 찾아다 놓고 외출할때마다 필요에 따라

조금씩 헐어서 가지고 나갔다.

생활이 달라졌다.

언제나 지갑에 얼마가 있는지 신경쓰게 된 것이다.

여유가 없으면 살 수 가  없었다. 한번에 펑펑 쓰면 나중에 모자랄테니

한달 쓸 것을 가늠하며 하루 하루 지출을 조절하는 버릇이 생겼다.

카드를 가지고 다닐때는 시내에 볼일 보러 나가면 으례 점심은 밖에서

사 먹는 줄 알았는데 현금을 들고 다니니까 외식할때 돈 내는게 제일

아까왔다. 밥때를 맞추어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아이들이 갑자기 졸라대는 것도 지갑에 여유가 없으면 딱 잘랐다.

이제부터 엄마는 카드가 없고 지갑엔 딱 쓸 돈만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더니 처음엔 불평을 해도 지갑안의 잔액을 보여주면 쑥 들어갔다.

 

큰 아이 방한 부츠가 필요해서 며칠을 벼르다가 얼마전에 시내의 한

신발가게에서 저렴한 것을 구입했는데 큰 아이 보는 앞에서 2만원을 꺼내

부츠값을 치루었더니 아들이 부츠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카드로 살때는

5만원이 넘어도 비싼 줄 모르다가 만원짜리 두 장을 건네는 것을 보니

큰 돈을 써서 사준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었다.

 

카드가 없이 다니다보니 주유소에서 달랑 2만원어치 기름을 넣는 일도 생기고

한살림 매장에서 100원이 모자라 쩔쩔 매는 일도 생겼다. 가게에선

계산대 앞에 서서 동전까지 세어서 건네주는 일은 흔하다.

정말이지 요즘은 동전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단돈 100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절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비가 갑자기 큰 폭으로 줄어든건 아니다. 외식 안하고 옷 안 사입어도

다른 곳에 돈 들어갈 일은 꼭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눈에 띄는 변화는 있다.

아이들도 나도 돈이 나가는 일에 전보다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다섯 식구가 한 달을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이 얼마나 많은지, 그 돈을 버는 것에

비해 쓰는 것은 얼마나 쉬운지 절절하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는 야채들이 있는지 예민해지고 당장 안 사도 되는 것에

지갑을 닫고, 꼭 필요한 것도 돈을 덜 들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게 되었다.

새삼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소비에 길들여 있었는지 깨달으면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상태에서 깨어난 느낌이 다 든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여전히 카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기분 내키는 지출은 하지 않고

카드를 이용할때는 꼭 얘기해줘가며 소비를 조절하고 있다.

체크카드도 있는데 꼭 현금을 쓰는 것이 올바른가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체크 카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거래임엔 틀림없다. 불편하긴 하지만 카드와 현금은 피부에 느껴지는

것부터가 너무나 다르다. 돈 만원이 헐려져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붕어빵 사 먹는 몇 천원도 달리 보인다.

 

카드와 이별하고 나니 내가 지금 이미 가지고 있거나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다시 보이고

마냥 품던 욕심도 내려놓게 되고, 남편의 노동에 대한 고마움도 더 커진다.

진즉부터 이렇게 현명하게 살았다면 하는 후회도 들지만 언제나 지금부터가 가장

빠른 것이다.

 

연말이다.

한 해동안 결심했던 많은 것들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을 보며 가슴치기 전에

소비를 권하는 이 사회에 대해 정말 나를 위하는 건강한 결심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는 손은 아름답지만 오늘도 호기롭게 신용카드를 꺼내드는

당신의 가난한 지갑은 내년에 더 얇아질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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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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