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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전초등학교 1학년 박채연 어린이가 쓴 글이다.

 

제목은 '여덟살의 꿈'

 

- 나는 부전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

 

읽다가 마지막 구절에서 빵 터졌다. 정말 유쾌했다.

채연이는 이 글을 자기방 문에다 써 놓았다고 했다. 이 시는 '이오덕 동요제'에

응모 되었고 뽑혀서 재미난 노래로 만들어졌다.

 

지난 10월 28일 일요일 오후 5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야외무대에서

'이오덕 동요제'가 열렸다. 서울 동요잔치 행사 이틀째 프로그램이었다.

이오덕 선생은 평생을 아이들 생각을 아이들의 말과 글로 쓰는 운동을

펼치신 분이다.어린이 문화운동의 등대가 되어주신 이오덕 선생님 뜻을 기리는

'이오덕 동요제'는 작곡가들이 어린이들이 쓴 글에 곡을 만들어 주고 같이 부르는

의미있는 행사다.

전국에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글을 행사에 보내왔고 뽑힌 글은

재미나고 즐거운 노래가 되어 아이들의 입을 통해 불려졌다.

 

일요일 오후 세 아이와 함께 광화문까지 나가 이오덕 동요제를 구경했는데

나도 아이들도 즐겁고 신나는 자리였다. 아이들이 보낸 글 들에 놀라고 감동하고

그 글로 지어진 노래에 또 놀라고 감동한 시간이었다.

 

채연 어린이의 '여덟살의 꿈'을 들으면서 국제중, 민사고, 유명대학을 요구하는

어른들의 자화상이 서글프기도 했고, 그런 어른들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미용사가 될거라고 당차게 다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나

대견하고 이쁘기도 했다.

 

남서울 은혜교회 유치부 7세 정아인 어린이가 쓴 '엄마는 잔소리가 너무 심해'는 또 어떤가.

 

'엄마는 잔소리가 너무 심해

쉬 하라 그러고

손 닦으라 하고 세수하라 하고

두 개를 세 개를 하라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

쉬 하면서 손 닦아 손 닦으며 세수해

내가 어떻게 해-

 

듣는 내내 ' 딱 엄마 얘기네요. '하며 나를 바라보는 큰 애 눈빛에 찔렸다.

그러고보니 나도 한 번에 두 세개, 아니 그 이상을 요구하는 폭풍 잔소리를 달고 살았다.

아이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은 부끄럽기도 했고,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는 시간이었다.

이 행사에는 자신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교가를 아이들 스스로 지은 세명초등학교 아이들이 나와서

 교가인 '내 길을 갈거야'를 부르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니 초, 중, 고,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한번도 학생들 스스로 자기 학교 교가를 지어 부른다는 생각조차 못 해봤다는 것을 깨알았다.

교가란 어른들이 지어주고 우린 그저 따라 부르는 걸로 알고 있었다.

- 내가 꿈 꾸는 대로 살 수 있어

 나는 내 삶의 주인공 내 길을 갈꺼야. 말리지마 밀어 줘 내가 가는 길을 -

세명초등학교 아이들은 이렇게 멋진 교가를 신나게 불렀다. 정말 감동스러웠다.

꼭 무슨 무슨 산의 정기가 들어가는 판에 박힌 교가들을 부르며 자란 우리 세대보다

얼마나 멋진 교가인가. 왜 우린 이런 생각도 못하고 살았을까.

학교 행사 때 마다 모든 아이들이 이런 교가를 신나게 부르고 나면 얼마나 힘 나고

즐거울까. 진정한 애교심은 이렇게 제가 학교에 기여하고 참여해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일텐데 말이다.

 

아이들은 모두 타고난 시인이자 예술가라는 것을 부모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예술성에 반하고 감동하며 가슴 뿌듯한 부모 시절을 보낸다. 그렇지만

학교에 들어감과 동시에 타고난 예술가들을 모두 공부잘하는 기계로 못 만들어 안달을 한다.

입에서 줄줄 나오던 이쁜 말들이 다 철없어 보이고 공식을 외고 영단어를 외우는 것만

못해 보여서 속 터져 한다. 그렇게 수많은 어린 예술가들이 자신의 말과 시를 잃고

어른들의 인형이 되어 공부 기계가 되어간다.

 

그렇지만 아이들 마음을 들여다보면, 마음껏 표현하고 그 말에 귀 기울여주면

아이들 맘 속엔 너무나 이쁘고 순수하고 그러면서 어른들의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맑고 정확한 세상이 들어있다. 너무 빨리 어른들의 상업적인 문화에 물들어 버리고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대중문화에 오염되버리면 서너 살 아이들도 뜻도 모르는

아이돌 가수 노래를 흉내내는 세상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지은 아이들 노래를

즐겁게 신나게 부르는 아이들 세상은 여전히 우리곁에 있다.

이오덕 동요제는 늘 '너희들 말로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고 가르치신 이오덕 선생의 뜻처럼

제 마음을 표현한 아이들 노래를 짓고 부르고 알리는 소중한 행사다.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한 순간중의 하나는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다.

세 아이 키우는 내내 '굴렁쇠 아이들'노래를 끼고 살았다. 굴렁쇠 아이들 노래는

무엇보다 전래 동요 리듬이 익숙하고 친근한데다 가사가 모두 아이들 입에서 나온

말들과 생각으로 되어 있어서 좋다.

아이들은 많이 듣는 것을 제 입으로 부를 줄 안다. 가요를 많이 들으면 가요 박사가 되고

텔레비젼을 많이 보면 씨엠쏭 박사가 되지만 굴렁쇠 노래를 제일 많이 들은 아이들은

어딜 가나 굴렁쇠 노래들을 부르며 산다.

길에서 개똥을 보면 '강아지똥'이란 노래를 부르고, 딱지를 칠 때엔

딱지 치기'라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딱지가 홀딱 넘어갈 땐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라는

가사에 공감한다.

 

내 어린시절엔 늘 노래가 있었다. 아빠는 일요일 아침만 되면 어린이 합창단이 녹음한

동요 엘피판을 크게 틀어 놓고우리를 깨우시곤 하셨다.

'반달' '가을밤' '따오기' 오빠 생각' '과꽃' '과수원 길'같은 노래들을 그 시절에 다 외웠다.

어린시절 듣고 부르며 자란 노래들은 그대로 내 아이들 머리맡에서 자장가가 되었고

지금도 즐겨 부르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아이들과 즐겨 부르는 어린이 노래들 역시 오래 오래 내 아이들에게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 말과 이야기와 우리 일상이 담긴 진짜 아이들 노래가 그 주인공인 아이들에게 오래 오래

사랑받고 널리 불려지면 정말 좋겠다. 내년 이오덕 동요제엔 나도 내 아이들 입에서 나온

이쁜 말과 글들을 응모해 볼 생각이다. 이런 의미있는 행사가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속에서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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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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