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이.jpg

 

그 개는 더운 어느 여름날 갑자기 우리집에 나타났다.

담장이 없는 우리집엔 풀어 놓고 기르는 동네 개들이 수시로 오고 가는데

그 개도 그런 개 중의 하나인줄 알았다. 꼭 새끼양처럼 털이 꼬불거리는

작은 암캐였다.

 

그런데 그 개는 집에 가지 않았다. 우리집에서 밤을 보내더니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가지 않았다. 우리개들에게 주는 사료를 뺏어 먹고

폭우가 내린 날은 앙칼지게 으르렁거려 기어코 우리 개를 내쫒고 제가 개집에

들어가 앉아있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제 식구인것처럼 꼬리를 살랑거리며 따라 다녔지만

이뻐보일리 없었다. 어디서 온 개인지 알수도 없는 녀석이 제 집인양 행세하며 순진한

우리집 수캐들 몫까지 차지하려고 드는 것 같아 밉고 싫었다.

이미 대형 수캐 두 마리를 기르고 있고 열마리가 넘는 닭들까지 키우고 있는

우리로서는 개가 늘어나는 일을 원할리도 없거니와, 세 아이들 돌보는 일과

살림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운 나 역시 새로운 개의 존재를 환영할 수 없었다.

갑자기 나타났으니 또 어느날 갑자기 사라질 지 모르는 개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등에는 붉은 살이 다 보일만큼 흉하게 푹 패인 큰 상처가 나 있었다.

아마도 전 주인에게 학대를 받다가 탈출한 듯 했다. 가엾긴 했지만 그렇다고

덜컥 우리가 맡을 수 는 없었다. 어떻게 자란 개인지 모르는 것이 더 꺼림칙했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집에서 내쫒고 싶었다.

마당에만 나가면 고함을 지르며 엄포를 놓고 남편은 갈퀴나 막대기를 들고

따라가며 쫒기도 했다. 가끔은 겁 먹으라고 작은 돌맹이도 던졌다.

그 개는 우리가 쫒아내면 산으로 내뺏다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살금살금

산에서 내려와 전처럼 굴었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고 험하게 내쫒으려고

해도 나만 보면 꼬리를 내리고 살랑거리며 다가왔다. 그 뻔뻔함이, 그 비굴함이

더 미워서 무던히도 쫒아내려고 애를 썼다. 

 

사료를 주지 않으니 우리 개들의 사료를 노리거나 내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더미를 뒤졌다.

계속 떠나지 않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개를 굶길 수 는 없어 욕을 하면서도 사료를 조금씩

주곤 했다. 먹이를 주었더니 아예 우리를 주인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아이들은 이 개를 반겼다. 하긴 동물이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게다가

암캐라고 했더니 더 좋아했다. 복있는 강아지라며 이름도 '복실이'라고 지어주고

오갈때마다 불러서 쓰다듬어 주고 아껴 주었다. 개를 좋아하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들은

너무 커서 맘 놓고 쓰다듬어 주기도 어려운데 고분고분하고 순하게 제 몸을 맡기는

복실이가 아이들은 맘에 꼭 든 것이다.

 

우리집 근처에 낮선 사람이라도 보이면 우리개들보다 복실이가 먼저 짖었다.

식구들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제일먼저 달려와 꼬리를 흔들어 대는 것도 복실이였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던 것처럼 복실이는 자연스러웠고, 열렬하게 애정을

보냈다. 규칙적으로 사료를 먹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몸도 커지고 이뻐졌다.

아마도 다 자라지도 않은 개였던 모양이다.

 

암캐가 들어오니 동네의 숫캐들이 밤마다 모여들었다. 교미할 시기가 된 모양인지

밤마다 몰려오는 다른 개들과 우리 개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소리에 잠도

못 잘 지경이었다. 그러던 날이 지나더니 복실이의 배가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했다.

새끼를 가진 것이다.

새끼를 베고 산바라지를 하고 아쉬워하며 분양하고 하는 일이 싫어 애초부터

수캐만 두마리를 키운 나였다. 그런데 덜컥 들어온 낮선 개가 새끼를 가진 것이다.

심란해졌다. 이럴줄 알고 진즉에 내쫒으려고 한 것인데 이제 새끼까지 밴 녀석은

더더욱 우리에게 의지하는 눈치였다.

 

나날이 배가 불러올수록 복실이는 식탐이 늘었다. 사료가 더 많이 든다고 불평하며

눈을 흘기다가 복실이의 눈빛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의 간절함이 그 눈에 비치고 있었다. 나도 아이를 셋이나 낳은 어미였다.

아이를 가지면 배가 더 고픈 것이 당연한 것.. 짐승이라고 다를리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새끼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낳으려는 모든 노력을 복실이는 하고 있었다.

그게 생명을 가진 어미의 본능 아닌가.

그 대목에서 나는 복실이에게 마음이 열렸다. 복실이의 눈빛에서 내 모습을, 지난 시절의

내 심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로소 나는 복실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복실이는 그토록 저를 미워하던 내게 순하게

등을 내밀었다. 순하고 영리한 개였다. 말귀도 잘 알아듣고 사람을 좋아하는 개였다.

그때부터 복실이의 먹이를 따로 챙겼다. 사료도 듬뿍 주고 국을 끓이고 나면 남는

멸치를 꼬박꼬박 챙겨 주었다.

 

  복실이 2.jpg

 

남편도 나날이 불러가는 복실이 배를 보면서 마음이 풀린 듯 했다.

그 즈음 당한 어머님의 상으로 남편은 생명있는 것들을 귀하게 여겼던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복실이게게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어머님이 계셨다면 분명 잘

챙겨주라고 하셨을 것이다. 우리집에서 새끼를 낳은 것은 복있는 일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은 밤 늦도록 망치질을 하며 마당에 만들다 만 아이들 장난감 집

아래에 복실이 집을 만들어 주었다. 언제든 새끼를 낳을 수 있도록 두꺼운 스티로폼을

깔아주고 그 위에 아이들이 아기였을때 쓰던 작은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개목걸이를 사와 걸어주고 목줄을 채워놓았다.

이젠 산기가 있으면 바로 제 집에 들어가 새끼를 낳을 것이었다.

이제나저제나 고대하고 있었는데 추석을 이틀 앞두고 아이들과 놀이동산에 놀러갔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퇴근하고 보니 이미 복실이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더라는 것이다. 날아갈듯 달려가 복실이를 만나보았다.

푹 꺼진 배를 하고 복실이는 우리를 반겨주었다. 하얗고 조그마한 네 마리의 새끼들이

이불위에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아무도 곁을 지켜주지 못했는데 저 혼자 건강하게 잘 낳아준것이

대견하고 고마왔다.

 

아직 눈도 못 뜬 새끼들과 출산을 한 복실이를 두고 바로 추석을 지내러 강릉으로 가야했다.

이웃에게도 부탁하고 친정 부모님도 들여다보신다고 하셨지만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복실이는 아마도 먹이가 충분하지 않자 배가 고팠던 모양인지 두 번이나 줄을 빼서

마당을 돌아다니다 눈에 띄였다고 했다.

 

다행히 고마운 이웃이 제 생일에 끓인 미역국을 들고와 주기도 했고,

친정 부모님은추석 연휴동안 두번이나 들려 먹이를 챙겨주셨다.

닷새만에 돌아왔을때 복실이와 새끼들은 무사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늘에 감사했다.

 

복실이는 사랑이 많은 어미가 되었다.

아직 늦더위라 집안이 더울텐데도 꿈쩍않고 들어앉아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정성스레

핥아준다. 젖 물린체 누워있는 복실이를 오래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내 아이들에게

젖을 물리던 날들이 떠올랐다. 장하다, 이쁘다.. 우리 복실이..

 

생각하면 참 어떻게 우리집에 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쩌면 그토록 애를 썼는데도

떠나지 않고 남았을까.

복실이는 알고 있었을까. 우리가 저를 끝내 저버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모질게 내쫒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들도 우리도 사실은 정이 많고

따스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느끼고 끝끝내 머물렀던 것일까.

내쫒을 때 떠나지 않은 것이, 그래도 다시 다가와 마음을 열어준 것이

의젓하게 새끼를 낳고 잘 돌보는 것이, 여전히 우리를 따르고 의지하는 것이

가슴 뻐근하게 고마울 따름이다.

 

어머님이 떠나신 그 여름에 우리집에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더구나 놀라운 선물까지 가져다 주었다. 생각하면 놀랍고 감사한 인연이다.

매일 매일 새끼들을 들여다보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더 감사해진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돌봄속에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생명을 보살피는 법을 배우게 되었으니 우리 아이들에게도 큰 복이 틀림없다.

아이들 말대로 정말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 준 개가 되었다.

 

  복실이와 아이들.jpg

 

이제 복실이는 우리 집 식구다.

새끼들이 자라면 몇 마리는 이웃에게 분양을 해야 겠지만

복실이는 언제까지나 우리가 책임지고 돌볼 것이다.

여름날 갑자기 우리곁에 찾아온 복실이는 어쩌면 우리 가족을 제 새주인으로

선택한것이 아니었을까. 저를 아껴주고 따스하게 살펴줄 새 주인으로

복실이를 우리가 받아준것이 아니라, 우리가 복실이에게 선택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고 연결된

인연으로 우린 한 가족이 되었다. 

 

그토록 처참하던 등의 상처는 작은 흔적만 남기고 말끔히 아물었다.

그리고 복실이는 새끼를 낳은 어미가 되었다. 혹 힘들었을 마음의 상처도 그렇게

다 흉터없이 아물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복실아.. 고맙다.

장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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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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