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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일찍 퇴근한 지난 화요일. 현관에 들어서자 녀석이 공손히 배꼽인사를 했다. 깨어있는 녀석을 오랜만에 보게 되면 순간 반가우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함께 실컷 놀아보자는 일탈의 욕망과 그래도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잠을 자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 사이에서의 고민. 물론 아이를 일찍 재우고 싶은 건, 내 안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때론 나도 혼자서 쉬고 싶기에.



 

아무리 ‘짬짬육아’라지만, 그래서 녀석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고는 하지만, 이날도 나는 일탈보다 원칙을 택했다. 이틀 만에 아빠를 본 녀석의 장난은 계속 됐고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11시가 넘어가자, 난 녀석의 말똥말똥한 눈을 뒤로 하고 안방 불을 꺼버렸다. 그러자 녀석은 울음을 터뜨리며 강하게 저항했다. 그냥 그렇게 재우려했지만 옆에 있던 아내는 “애를 살살 유도를 해야지, 왜 강압적으로 그러느냐. 그러면 애 성격 나빠진다”며 일침을 가했다. 그렇다. 아이를 강압적으로 다루면 안 된다. 내가 이미 읽은 적지 않은 육아 책에서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그 이유야 굳이 적을 필요도 없겠다).

아, 그랬었지…. 나는 수능시험에서 아는 문제를 틀린 수험생처럼 머쓱해하며 다시 불을 켰다. 녀석은 침대를 내려와 건넌방으로 건너가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고 나는 녀석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엔 나긋나긋하게…. “성윤아, 우리 침대에 가서 놀까?” 녀석은 순순히 따라 나서더니 침대에 눕는다. “아빠 불 끌게~.” 녀석은 얼마 안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의 모든 과제가 모두 마무리 됐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녀석이 잠든 채 차고 있는 묵직한 기저귀를 벗겨냈다. 그러자 녀석이 자지러지면서 손으로 고추 주변을 심하게 긁기 시작했다. 아, 이건 또 뭔 일인가. 불을 켜고 고추 주위를 살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 ‘갑자기 기저귀가 갑갑한가 보다’ 하고 다시 불을 끄고 기저귀를 벗긴 채로 잠을 재우려 했다. 그런데도 녀석은 계속 손으로 고추 주위를 심하게 긁어댔고 울음은 이제 짜증으로 변해 있었다. 암만 해도 이상해서 다시 불을 켜고 녀석을 욕실로 데려갔다. 현미경을 들이대듯 녀석의 몸을 정밀하게 살펴보니, 고환 아래부터 시작해 항문 주변 부분까지 심하게 짓물러 있었다. 오랫동안 똥을 깔고 앉아있었던 모양이었다. 기저귀를 갈면서 살갗을 스치자 그제서야 심한 통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다. 아이에게 이유 없는 울음은 없다. 지난 번 새벽녘 느닷없던 녀석의 울음도 호흡곤란을 일으킨 왕건이 코딱지 때문 아니었던가. 



같은 날 밤에 일어난 두 번의 해프닝을 통해 다시금 ‘복습’의 중요성을 느낀다. 육아서적을 읽으며 아무리 고개를 끄덕이며 이론을 숙지해도 현장에서 느껴보지 못하면 그 지식은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한다. 또 한두 번의 실천만으로도 부족한 것 같다. 이미 충분히 학습하고 체험해본 경우에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잊어먹고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로 “육아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교과서 중심의 예습·복습, 그 중에서도 끊임없는 복습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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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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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수면 거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저희 아기는 만 7개월 된 아기인데요, 밤이고 낮이고 졸려서 눈을 비비고 머리를 박으면서도 자는 것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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