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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에서 눈썰매를 타는 필규)



지난 1월 9일 일요일... 드디어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30년 만이고, 결혼하고 9년 만에 처음으로 살아보는 단독주택이다.

추운 것은 징그럽게 싫어하는 내가, 편안하고 따뜻한 아파트에서도 자주 씻는 것을 귀찮아했던

게으른 내가 아홉 살, 다섯 살, 그리고 곧 첫돌이 되는 어린 아이 셋을 데리고 그것도

한 겨울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날에 이사를 한 일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고, 2층이 있고, 마당을 뛰어 다니며 크는

예쁜 강아지들이 있고, 벽난로도 있는 꿈 같은 집을 구했다고 펄쩍 뛰며 좋아했었지만

그림 같은 그 집에 이사하고 보낸 첫 날은 악몽 그 자체였다.

8년 동안 비어 있던 집은 사방에서 찬 바람이 새어 들었고, 집주인이 따뜻하다고 큰 소리 치던

심야전력 보일러는 간신히 미지근한 온기만 제공했다. 따로 설치되어 있는 온수기는 어찌된 일인지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똥을 싼 이룸이의 엉덩이를 씻기느라 주전자로 물을 데우는 동안 어린 딸의 엉덩이는 새파랗게

얼 지경이었다. 목욕탕은 어찌나 추운지 치아만 간신히 닦고 빠져 나왔다.

온 가족이 한 방에서 모여 자던 첫 밤은 꼭 야외에서 자는 것 같았다. 가지고 있는 이불 중에서

제일 두꺼운 것을 덮었어도 따듯하지가 않았고 자다가 옆에 있는 이룸이 손을 만지면 얼음장 같이

차가워 깜짝 놀라곤 했다.

자고 일어나 보니 머리 맡의 온도계가 영상 1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실내 온도가 늘 23도 이상이었다. 22도로만 내려가도 춥다고 펄펄 뛰며

보일러 온도를 높이던 나였다. 바깥 날이 춥다고 하면 며칠이고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고 지내기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오르는 동안에도

아이에게 장갑을 끼우고, 모자를 씌우고 목도리를 둘러주던 나였다.

그런 내게 한 겨울에 실내온도 11도의 방에서 자는 일은 그야말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단독주택에서 살아가는 일은 무엇보다도 아파트보다 훨씬 훨씬 추운 실내 온도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집에서 목도리를 두르고, 내복 위에 두꺼운 스웨터를 걸치고 두툼한 양말에 아랫도리도 두개씩 껴입고

지냈다. 사시사철 이불을 덮는 일이 없이 이불을 다 차버리고 자던 필규와 윤정이는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려가며 자더니 며칠 지난 후부터는 양말까지 신고 잔다.

일주일 정도 지내고 나니 그럭저럭 실내 온도에 적응이 되었다.

이젠 낮에 15도만 올라가도 따스하다고 느끼고, 밤에 잘때 13도만 되도 ‘날이 풀렸나 보다’ 좋아하게

되었다. 이집에 이사와서 일주일만에 내 삶은 그야말로 180도 달라졌다.



아이가 방학하면 늦잠에서 일어나 신문을 뒤적이며 게으름을 부리곤 하던 나는

자고 일어나면 벽난로의 재부터 치우고 장작에 불을 붙이느라 애써야 한다.

새벽부터 현관문을 긁어대며 밥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두 마리 개 밥도 챙겨야 한다.

아이들은 넓어진 집안을 종일 뛰어다니며 어지르고 수시로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며칠 동안 한겨레신문도 제대로 넘겨보지 못했다.

저녁이면 난로에 불 때서 거실 공기를 데워 놓고 찬 목욕탕에서 아이들 달래가며 몸 씻기는 게

큰 일이다. 자는 동안에 젖을 찾는 이룸이에게 젖 물리기 위해 이불을 걷고 웃 옷을 들출 때가

제일 싫다. 이불 밖으로 나온 몸과 살이 너무 춥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것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물론 아니다.

수백 가지 불편함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 멋진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아이들이 매일 밖에 나가서 뛰어 논다.

전에는 조금만 추워도 종일 집을 나가지 않았었다. 나가도 놀 장소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마당과 이어진 산자락에 눈이 쌓여 아이들은 낡은 장판을 들고 쌩쌩~ 눈썰매를 탄다.

강아지랑 달리기도 한다. 집안을 ‘쿵쿵’ 뛰어다녀도 ‘다다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 내려도

야단 칠 일이 없다.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불러도 상관없다. 언덕에 홀로 앉아 있는 집이라

이웃에 피해 줄 일은 애시당초 없다.

밤에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이불에 누우면 거실의 넓은 통 유리창 너머로 반짝이는 별이 보인다.

은행나무와 감나무와 전나무의 가지들이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며 잠들 수 있는 집이다.

아침이면 직박구리가 날아와 시든 꽃사과 열매를 쪼아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밥을 먹는다.

산 꿩도 마당으로 놀러 오고 까치들이 모여드는 풍경도 매일 즐긴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개들이 먼저 알아보고 차로 달려 온다.

이곳은 TV 난시청 지역이라 다시 텔레비전 없는 집에서 살게 된 아이들은 책과 더 가까워졌다.

남편은 퇴근하고 나서도 장작을 썰기 위해 톱질을 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묻기 위해

얼어붙은 마당에 삽질도 한다. 쉼없이 할 일이 있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너무 좋다.

정말 제대로 사는 것 같다. 마음껏 뛰고 허기져서 밥상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은 밥도 전보다

많이 먹는다. 주말이 되면 남편이 해야 할 일은 더 늘어나서 전처럼 무기력하게 낮잠에

빠져들 새가 없다. 나도 종일 바쁘게 움직이며 집안을 살핀다.

그러다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들면 남편과 창가에 앉아 눈 쌓인 너른 마당 너머 마을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눈다. 춥고 힘들고 고단하지만 그래서 가족이 더 소중해지고

더운 물 한 바가지도 귀하게 느껴지는 생생한 삶이어서 좋다.



겨울이 힘들긴 하지만 봄이 되면 앵두나무, 꽃사과나무, 배나무, 모과나무 등 모든 나무에

새 잎이 돋고 꽃이 필테니 얼마나 이쁠까. 여름이면 짙은 녹음으로 둘러싸여 집이 곧 숲이 될 것이다.

가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리고 겨울이 오면 벽난로 앞에서 가족이 더 가깝게 다가앉으면 된다.



이 집에서 맞이할 모든 계절과 시간들이 기대된다.

이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 추운 겨울과 불편한 일상을 견디는 것쯤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드디어 시작된 ‘삼락재’의 나날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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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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