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f44c2e1fac02da419efc4a5dc2b62f. » 녀석은 이렇게 외할머니와 함께 잔다.



자기 전엔 같이 있었는데 눈 떠보면 없다. 오잉, 대체 녀석은 어디로 간 거지? 황급히 방 밖으로 나가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마루에서 외할머니와 곤히 잠들어있었다.


새봄, 아내의 직장 어린이집에 ‘입학’하기까지 녀석은 외할머니와 한겨울을 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외할머니와 꼭 붙어 지내는 행복한 나날이다. 마니(할머니), 하찌(할아버지), 칠.어(싫어)에 이어 야꾹~(약국), 무울.티.휴(물티슈), 부.끄.꽁(북극곰), 니~오(아니오) 등 구사할 수 있는 낱말도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엄마·아빠 얼굴을 보려고 밤늦게까지 눈을 말똥거리던 녀석은 요즘은 밤 10시면 외할머니와 함께 마루에서 잠이 든다. 난 그런 녀석을 안아 안방 바닥에 깔아놓은 제 잠자리로 살포시 옮겨놓는다. 하루종일 피곤하셨을 장모님께는 숙면을 보장해드리고, 이불을 차내 버리고 자는 녀석이 감기에 들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렇게 분명히 녀석을 안방으로 데려왔건만, 아침에 눈 떠보면 없다. 다만, 새벽녘에 녀석이 “쉬, 쉬” 하며 울음 섞인 짜증을 부렸던 기억만 아련하다.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녀석은 주섬주섬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 오줌을 누고서는 마루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마니’를 발견하고서는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 옆에 가서 다시 누웠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포기하고 녀석을 그냥 ‘마니’ 옆에서 재우기로 했다. 외할머니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다.



0846cb55f237ee85644a998cf3a972d7. » ‘외할머니와 춤을…’


“친손자보다 외손자가 더 예쁜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건…내 손자가 확실하기 때문이에요.”

이태 전, 저녁자리에서 어느 판사님의 농담에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과학적인’ 분석이 나올 정도로, 외가와 유아의 밀착은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 같다. 육아일기를 쓰는 아빠로서 양자간 애착관계의 이유를 어쭙잖게 경험적으로 분석해보았다.

먼저, 체력의 문제.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한 쉼 없이 잡아끄는 응석받이의 놀이욕구를 충족해주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젊은’ 외조부모는 적극적으로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의 요구에 그때그때 반응하며 리액션도 크다.

강한 체력은 돌봄으로 이어진다. 주변에는 손주들을 외할머니가 돌보는 경우가 많다. 주 양육자인 아이 엄마도 시부모보다 친정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게 훨씬 맘이 편하다고 한다. 잦은 스킨십은 사랑의 근원이다.  




성윤이의 경우도, 친할아버지·친할머니는 70대, 외할아버지·외할머니는 50대이시다. 이런저런 이유로 양육자의 손길이 더 필요할 때마다 외할머니가 구원투수처럼 경남 사천에서 달려오셨다. 또 녀석은 친가에서는 여섯 번째, 외가에서는 첫 번째 손주인 데다 친가는 “꼭 그런 걸 말로 해야 아나…”며 말끝을 흐리는 충청도 집안이고, 외가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감정표현이 확실한 경상도 집안이다. 여러모로 녀석은 외가에서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모처럼 양가 부모님이 함께하신 저녁 자리. 예상대로 녀석은 외할아버지·외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지금은 이래도 다 크면 친가 찾아갈 겁니다”라며 친할아버지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건넸다. 친할아버지가 헤어질 때 비장의 무기 ‘1만원’을 꺼내자 그제야 녀석은 친할아버지에게 뽀뽀를 해드렸다. 짜식, 비싸게 굴기는…그래도 크면 알 것이다. ‘내리사랑’에 친손·외손이 따로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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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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