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윤영희 님이 어느 글의 말미에서 언급하신 다큐멘터리 <엄마와 클라리넷>을 보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발달 장애 진단을 받은 청년들 여럿이 모여 클라리넷 연주단을 꾸려내고, 연주단 이름으로 사회적 협동조합 인가를 받아 직업 음악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청년들과 엄마들의 노고, 음악 연습과 사회적 협동조합 준비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갈등 국면을 보며 나는 감동을 압도하는 어떤 불편함을 느꼈다.

 

그 불편함의 요체는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왜 각종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장애 관련 이야기들은 늘 극복의 서사인가 하는 것. 그것도 지독한 훈련과 거듭되는 좌절 속에서 길어 올리는 극복기 혹은 성공기. 우리가 책,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에서 만나는 장애인들은 이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철인이 된,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장애를 일부 극복했다고 여겨지는 특별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 중 특별한 재능을 보이거나 지독한 훈련을 통해 기술을 연마한 아이들이 매체의 관심 대상이 되고, 그렇게 관심을 받는 아이들에겐 로봇 다리라든가 천재 자폐 소년같은 별칭이 붙기도 한다. 또 한편에서는 장애에도 불구하고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최선을 다해 살며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마치 장애가 있으면 결코 일하고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 수 없다는 듯이. 어떤 방식으로든 어느 정도로든 장애를 극복/해소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듯이.

 

물론 그게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현실장애인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은 비장애 인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을 들이대며 강요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지, 장애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비장애인 중심의 세계에서 장애인은 무언가 한 가지라도 월등히 뛰어나야만, 그래서 장애가 있는 부분이 어느 정도 가려질 수 있어야만 겨우 조금이나마 사람으로, 사람의 삶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장애 극복의 서사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도 그래서일 거다. 장애아를 둔 가정이라고 해서 반드시 언제나 불행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그런 가정의 부모라고 해서 언제나 아이 뒷바라지 하기가 힘겹기만 한 것도 아닌데, 흔한 장애 극복기 뒤에는 늘 눈물과 힘겨움에 지친 엄마들이 때로는 영광으로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비쳐진다.

 

장애 극복의 서사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항상 이런 식이다. “봐라, 이런 어려움도 극복해내며 살지 않냐,” “끝까지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는 장애/비장애 인구 모두에게 매우 폭력적이다. 비장애인 사회에서도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가는 추세이지만, 장애 인구 사이에서 이런 차별성은 개개인의 성향과 재능, 각자가 처한 사회경제적 층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체에 등장하는 특별한장애인들의 노력, 그에 대한 찬사와 대조적으로 현실의 평범한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하루하루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또 때로는 격렬한 일상적 투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상과 갈등은 우리 세계에서 철저히 감춰지고 무시된다. 왜 장애인의,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는 꼭 그렇게 눈물과 희생, 감동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포장되어야 하는 걸까. 장애를 벌충하기 위해 꼭 무언가 특별해야만 하는 걸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순 없는 걸까?


처음 우리 아이 이야기를 공개적인 공간에서 쓰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서 있는 케이티의 일상과 갈등을 공유함으로써 우리 아이 같은 아이들, 나 같은 엄마들도 여느 가정과 다름없는 고민과 갈등, 행복과 기쁨을 느끼며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 또 아니지만, 힘든 이야기는 힘든 이야기대로,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쓰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이야기를 통해, 질병이나 장애 없이 평범하게 태어난 아이들과 그 부모들 역시 아이들을 조금은 느슨하고 여유롭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랐다. 튀어야만, 무언가 월등히 뛰어나야만 인정을 받는 분위기, 남의 불행을 보며 위안을 얻거나 감동 받으며 나를 더 채찍질하는 분위기가 모두에게 건강할 리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일이. 그랬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꼭 무언가 아주 잘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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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와 점프샷. 점프 못할 줄 알았던 아이와 손잡고 뛰는 기분, 정말 좋다>

 

이번에 <엄마와 클라리넷> 다큐멘터리를 보고, 또 그 전후로 어느 장애 아동의 사망 사고, 서울시와 발달장애부모협회 사이의 갈등을 보면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리저리 검색을 하고 자료를 뒤지다 참으로 반가운 프로그램 하나를 만났다. 그래서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썼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두 엄마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에 시즌 1이 끝났다고 하는데, 1회 방송을 들어보니 정말 내 생각, 내 마음과 꼭 맞는 이야기가 많았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언제나 힘들 거라는 일반적인 생각에 반하는 이야기, 발달 장애 자녀가 가진 특별한 재능을 꼭 찾아주어야 하는 걸까, 하고 반문하는 마음, 그런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송이었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싶다.


베이비트리에 오시는 여러분, <우리가 궁금한 요맘조맘 이야기> 함께 들어요

 

관련 기사 링크: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9839&thread=04r05

팟캐스트 바로가기http://www.podbbang.com/ch/10253?e=2180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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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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