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05583_P_0.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송채경화 기자의 글을 읽고, 묵혀두었던 주제를 들춰보게 됐다. 임신 중에 같은 주제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출산 후에 다시 써보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찾아오는 육아 파도에 떠밀려 자꾸 뒤로 밀리던 참이었다. 지겹기만 하던 임신 기간도, 아찔했던 출산 당시도 점차 희미해지는 지금, 육아의 첫 고비(!)라 할 만한 3년 고개를 거의 다 넘은 지금, 더 늦기 전에 이 이야기를 다시 해보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큰일났다…!’

생리 예정일을 한참 넘기고 뒤늦게 부랴부랴 찾은 병원에서 임신 6주 진단을 받았을 때, 나 역시 저 한 마디 말을 외쳐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다 결혼 전의 가족 관계에서 다 풀어내지 못한 갈등과 상처가 많았던지라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하게 된 것이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3년이 넘는 연애기간 동안 꼬박꼬박 피임을 했고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어째서 결혼을 하고 미국에 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곧 마음을 추슬렀다. 언제 해도 완전히 준비가 된 상태에서 아이를 갖긴 어려울거란 생각이 문득 스쳤고, 지금부터라도 준비하면 된다는 자신감마저 생겼다.

 

그 과정에서 읽은 책 한 권은 특히 내게 모성애라는 것을 새로이 발견하게 해 주었다. 인간을 생리학적 관점, 즉 호르몬의 작용에 영향을 받는 한 '동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봤을 때, 모성애는 어느 정도 동물적인 작용의 결과다. 출산 직전인간 여성은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어둡고 좁은 곳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욕구를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포유류 어미들과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렇게 외부의 개입 없이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출산하는 순간 모체에서는 옥시토신이 다량 분비되는데, 이 옥시토신은 새끼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하고 출산 직후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은 외부로부터 새끼와 모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경계심을 갖게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모성애라고 부르는 것의 요체는 많은 부분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모성애를 감정적인 것으로만 간주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성애는 특정 호르몬 분비의 결과이므로 임신을 한다고 해서 모성애가 갑자기 생겨날 수는 없다.

 

물론 인간의 모든 부분이 동물적 특성이나 습성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임신을 기다려온 사람이라면,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임신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아이에 대해 특별하고도 강렬한 감정이 생겨날 수 있고, 그것을 모성애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르몬 분비 작용으로 일어나는 결과를 간과하고 모성애를 모든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 가져야만 하는 감정으로만 간주하면 문제가 생긴다. 나를 낳고 저게 정말 내 아인가하고 의아해했다던 우리 엄마나 임신 후반 내 뱃가죽 위에 물결을 그리며 발길질을 해대는 아이를 보고 징그럽다며, 외계인이 된 것 같다며 엉엉 울었던 나 같은 사람도 있다. 게다가 나는 케이티를 낳고서도 별 감정 없이 멍하니 아이를 신생아치료실로 보내고 잠을 잤고 뉴스를 보고 미역국을 먹었다. 이런 사람들도 있는데 모성애를 감정으로 간주하고 당연한 듯 여기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굉장한 부담, 심지어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출산 후에도 이렇다 할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겠다, 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는 호르몬의 자극에 대한 개개인의 반응 정도나 분만 환경, 제왕절개와 그에 따른 약물조치로 인한 편차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나 우리 엄마처럼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경우, 진통과 출산 과정에서 취해지는 여러 조치와 약물 처치로 인해 자연스러운 호르몬 분비가 방해를 받게 마련이다. 나는 과도한 의료적 개입을 원치 않아 의사 대신 조산사와 분만을 진행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병원이라는 장소에서 전 과정이 이뤄졌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하고 낯설었던 느낌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아이 다리에 정말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조금씩 번져가던 무렵 아이가 역아가 되었다는 진단이 나왔고, 통증을 줄여보고자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기력이 이미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제왕절개가 결정되었다. 피로, 스트레스, 불안감, 거기다 옥시토신 분비를 차단한다는, ‘무통주사로 알려진 에피듀럴 투입까지. 그 모든 것을 겪은 후에도 아이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 불쑥 올라오기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내가 케이티를 보며 처음 어떤 감정을 느낀 것은 출산 사흘 째 되는 날이었는데, 그것도 무슨 샘솟는 듯한 애정,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이렇게 모성애다운 모성애(?!) 한번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임신/출산을 겪은 나이지만, 나는 내 모성애 결핍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결핍이란 말은 애초에 어떤 비교대상이 있거나 목표치가 있는데 거기에 못 미칠 때, 모자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모성애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둔 상태에서 출산을 하고 육아를 시작했기 때문인지, 나는 굳이 내게 모성애가 있냐 없냐, 많으냐 적으냐를 따져보려 하지 않았다. 다만 케이티가 일년 365일 예뻐보이진 않는다는 것, ‘내 새끼 먹는 것만 봐도 배 부르다는 말에 절대 동감할 수 없는 것 등등을 보면 내가 그리 모성애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구나, 할 뿐이다. 나는 차라리 내가 모성애가 철철 넘치는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어찌보면 모성애는 편협한 감정일수도 있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애정은 때로 너무 과도하고 일방적이기 쉽다. 내 아이에게만 유독 크게 작용하는 그런 감정은 때때로 아이가 커 나가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고, 엄마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내기도 한다. 나는 분명 케이티를 사랑하지만, 이 감정을 굳이 모성애라고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아이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내 아이만이 아닌, 남의 아이도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 대한 나의 감정에 대해 모성애가 아닌 인간애혹은 생명애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사랑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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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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