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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낡고 열악한 시설에 나이 많은 노인이 산파로 있는 그런 풍경을 상상한다. 나도 잘 알기 전 까지는 그랬다. 옛날에는 그런 조산원이 많았던 모양이지만 오늘날 조산원은 전혀 그렇지 않다.



‘조산원’은 조산사들이 출산을 담당하는 곳이다. 아이를 낳는 곳이지만 병원과는 아주 다르다. 조산사들은 간호사 자격증을 딴 후 다시 조산사 교육을 받아야 될 수 있는 분만 전문가들이며, 조산원은 산모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출산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조산원 출산을 결심한 후 남편과 조산원을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햇살이 환한 넓은 방에서 갓 아이를 낳은 산모들이 남편과 함께 자신들의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풍경이었다. 태어난 아기는 그 순간부터 엄마 아빠의 손길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산모들은 자유롭게 다니며 아기를 돌보았고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이런 곳에서 내 아이를 낳게 된다는 사실이 설렜다.



남편과 함께 조산원에서 주최하는 예비부모교실에도 참가해서 태어날 아기에게 편지도 써보고, 분만시 필요한 호흡도 같이 배우고, 신생아 크기의 인형을 안고 젖 물리는 연습도 해 보면서 출산을 준비했다. 첫 출산이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내가 어떤 공간에서 아이를 낳을지, 어떤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지 알고 있었고, 그들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사는 곳은 산본이었고, 남편의 직장은 잠실에 있는데 조산원은 부천이어서 남편이 집에 없을 때 아기가 나오면 곤란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임신 기간 내내 뱃속의 아기에게 설명하고 부탁했다. 너를 안전하게 낳으려면 꼭 아빠가 있을 때 나오겠다는 신호를 보내달라고. 그래야 너도 엄마도 모두 무사하고 건강하게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아기가 내 말을 듣고 있다고 믿었다. 내 부탁을 꼭 들어 줄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예정일은 2003년 6월 9일이었지만 아기는 소식이 없었다.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아기가 너무나 보고 싶었기에 조바심 나는 마음을 다스리며 출산을 촉진시키려고 매일 아파트 뒷산 약수터를 오르내렸다. 산길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만삭의 산모를 보고 길에서 애 낳겠다고 걱정들 하셨지만 아기는 좀처럼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를 9일째 했을 때 남편이 출근 준비를 막 끝낸 오전 일곱시 쯤, 양수가 터졌다. 그리고는 바로 극심한 진통이 찾아왔다. 출산 준비물을 챙겨서 부천의 조산원으로 달려가는 동안 양수는 계속 흘렀다. 40분 만에 조산원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자궁문이 절반이나 열려 있었다.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 진통을 위해 평소에 교육실로 사용되는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두 명의 조산사들이 내 곁을 지키며 허리, 팔, 다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격려해 주었다. 나는 커다란 짐볼을 안고 진통을 했다. 남편은 내 모습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며 손을 잡아 주었다.  진통은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산고의 고통이라고 했던가. 통증은 격렬하고 무서웠다. 순식간에 내 온 몸을 휘감아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자궁문이 완전히 열릴 때까지, 아기가 서서히 자신의 부드러운 두개골을 겹쳐가며 내 골반 크기에 맞추어 진입하는 동안 통증은 몸을 압도하고 의식마저 뒤흔들었다. 생으로 온 몸의 뼈를 늘리고 벌리는 고통을 느끼는 동안 나는 비로소 무서워졌다. 그동안 충분히 몸과 마음이 출산과 분만에 준비해 왔다고 자부해 왔지만, 진통은 순식간에 이런 생각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옆에 있는 남편은 붉어진 눈으로 나를 지켜보며 말없는 격려로 나를 붙들어 주었다. 그 눈빛에 의지해서 진통을 견디고 마침내 자궁문이 다 열리자 아이를 낳을 온돌방으로 옮겨졌다.



남편이 뒤에서 나를 안고, 나는 두 손으로 남편을 붙잡은 자세로 다리를 벌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아기를 밀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이 들렸다.  마침내 한순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찌할 수 없는 강력한 진통이 나를 압도하며 저절로 회음에 힘이 주어지더니 폭발하듯 한번에 아기가 빠져 나왔다. 회음부가 아기의 머리 크기까지 벌어지기 위해서 호흡을 조절할 사이도 없이 9일이나 기다린 아기는 마치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생살을 찢고 나와 버린 것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누군가 내 가슴 위로 아기를 올려놓았다. 머리는 산도의 압력으로 눌려져 있고, 두 눈은 부어 있었다. 태지와 양수로 범벅이 되어 마치 고단한 일을 막 끝낸 것 같은 표정으로 아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힘겹게 눈동자를 움직여가며 땀과 눈물로 얼룩진 내 눈을 바라보는 아기를 마주한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가... 너였구나’



2000년 겨울, 눈 내리던 속초의 낡은 방에 앉아 처음 불러보았던 내 아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있어 나를 살게 해 온 생명이 너였구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생명을 위해서라면 삶의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는 어미가 되었다는 것을...



 햇살이 환했던 6월의 아침, 나는 첫 아이와 그렇게 만났다. 남편이 탯줄을 잘랐고, 첫 목욕을 시켰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흘간 머물며 엄마로서 첫 나날들을 보냈다.  내가 아이를 낳았던 ‘열린 가족 조산원’은 천 기저귀 사용과 모유 수유, 남편의 육아 참여가 원칙이었다. 그래서 다른 식구들의 출입은 엄격하게 제한되었지만 남편만은 산모 곁에 24시간 머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아기를 낳은 아빠들은 열정적으로 육아를 돕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산을 같이 했고, 부모로서의 날들을 처음부터 같이 겪었기 때문이다. 남편도 출산 휴가 내내 내 곁에서 수유와 기저귀 가는 것을 도왔고, 휴가 후에는 산본 집으로 퇴근해서 와이셔츠 빨아 놓고, 다시 부천까지 와서 밤 새 아기를 돌보고 새벽같이 출근하는 일을 일주일 이상 했다. 서른 셋에 얻은 첫 아들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던 남편이 서툰 아빠 노릇을 하느라 그토록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진한 부부애와 동지애를 느꼈다. 아기를 같이 낳고, 그 힘든 첫날들을 같이 보내는 경험이 부모로서 우리 사이를 더 강하게 맺어 주었다.



복도에 앉아 기다리다가 아기를 다 낳은 후에야 들어와 아기 얼굴을 보고, 바로 신생아실로 데려가 버리는 병원에서는 남편이 아빠로서의 강한 애정이 만들어 질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으로, 친정으로 아내가 아이와 조리를 하는 동안 남편은 아내와 아기와 또 멀어진다. 이런 과정을 겪은 후에 가족이 다시 만나면 서로에게 적응하기가 정말 어렵다. 아기는 좋지만 육아는 낯설고, 두려운 날들이 이어지는 것이다.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은 사람들에겐 부모 노릇이란 단 한 시간도 유예되지 않는다. 낳은 그 순간부터 부모로서의 역할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식 간에 평생 이어지는 강한 유대와 애착이 생겨나는 것이다. 첫 날들은 힘들지만 이런 관계로 출발한 부모와 자식은 시간이 갈수록 육아가 수월해진다.



4.03킬로로 태어난 첫 아이는 ‘필규’라는 이름을 얻었다.  벌써 올 해 여덟살이다.



서른 셋 이라는 적지 않는 나이에 맞은 출산이었으나, 나는 훌륭한 조산원을 아는 행운을 누렸고, 그곳에서 최고의 조산사들을 만났다. 나와 필규가 받은 큰 복이다.



 그곳에서 필규를 낳고 열흘간 지내면서 다른 산모들과 그들의 남편, 그들의 아이들과 한 가족처럼 지냈다. 같은 선택을 하고, 같은 경험을 나누었다는 것으로 우린 가족처럼 끈끈하고 친밀하게 맺어질 수 있었다.  내가 젖이 돌지 않아 힘들 때에는 젖이 이미 돌아서 넘치게 나오는 산모가 필규에게 젖을 물려 주었다. 모든 산모들이 모든 아기들의 엄마였다. 그런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새로 아이를 낳으러 온 산모들은 이미 아이를 낳은 산모들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를 받았고, 서툰 초보 엄마들은 아이 돌보는 게 익숙해진 산모들에게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내 아이의 생애 첫 날들이 그토록 따스하고 부드러운 연대와 보살핌, 나눔 속에서 시작될 수 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병원에서 낳았더라면 결코 얻을 수 없었던 행복이었다.



 매일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칼릴지브란의 ‘아이들에 대하여’라는 시를 생각한다.



‘그대들은 활, 그대들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들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그리하여 사수이신 신은 무한한 길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분의 온 힘으로 그대들을 구부리는 것이다. 그분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들 사수이신 신의 손길로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 것 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시므로.’



 아이를 낳고 나는 활이 되었다. 삶은 나를 온 힘으로 구부려서 여기까지 데려왔다. 아이는 이 삶에 온 자신의 소명을 찾아 나로부터 스스로의 길을 향해 멀리 날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화살을 날아가게 하는 활이 된 내 날들은 귀하다. 소중하다. 어미의 길과, 부모의 길은 한없이 멀고 어렵지만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를 구부려 내가 낳은 생명들을 자신의 삶 속으로 날아가게 하고 싶다. 그 날들이 나 역시 내 삶의 정수 속으로 날아가게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이와 함께 하루를 산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아이가 나를 키운다.  사랑 속에서 생명을 받아 이 삶에 와서, 나도 생명을 내어 놓은 어미가 되었으니 사랑을 사랑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이어주는 생의 의미를 알겠다. 나를 엄마이게 해 준 내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며, 가장 따스하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아기를 나와 만나게 해 준 조산원과 조산사 분들게 마음으로 늘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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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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