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집에 기거해야하는 것이 젖먹이 엄마의 운명이다. 하지만 이 몸은 출산한 지 삼칠일이 지나자마자 좀이 쑤시고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다 워낙 TV를 좋아하는 남편이 주말만 되면 TV 껌딱지가 되어 있는 꼴이 정말 보기 싫어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됐다. 뭐가 좋을까? 주말을 효율적으로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래서 선택한 게 주말텃밭이다. 우연히 친구의 텃밭에 놀러갔다가 아주 재미가 들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텃밭을 분양받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e43ee5f1961eca8c8327b0818c44cbf8.처음엔 그냥 ‘한 번 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별 생각없이 콧구멍에 바람 좀 넣겠다고 시작했던 5평 텃밭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고작 5평에서 누렸던 혜택은 30평? 50평짜리 아파트와도 못 바꾸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것이다.



텃밭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일과 재미, 배움, 휴식, 자연 먹거리, 친구, 그리고 삶의 지혜와 치료(힐링)를 제공하고 있다. 1년 임대료 고작 7만원(우리 세 식구가 놀이공원을 가면 자유이용권 3장을 끊을 수 있는 가격, 외식 한번 하면 훅~ 허망하게 날라가는 돈, 파마 한번 참으면 되는 돈...)으로 말이다. 텃밭에서 얻는 친환경 종합선물셋트에 비하면 제 아무리 돈 안쓰는 나지만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날이 궂으면 궂은 대로 좋다. 맑은 날은 온몸으로 좋은 공기 마시며 손에 흙을 묻혀가면서 땅에 엎드려 일하고, 비 오면 빗소리와 더불어 흙냄새를 맡으며 땅을 일군다. 밭에서 수확한 푸성귀에 막걸리 한 잔 걸치면 그냥 죽여준다(너무 저속했나? 근데 정말이다. ㅋㅋ).  출산 후 잠시 고개를 들었던 우울증(갑갑증이라고 해야 더 맞을 듯^^)도 햇빛에 말리고, 바람에 훨훨~ 날려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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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농사의 핵심은 자기 손으로 뭔가 길러 먹는 것! 물론 완전한 자급자족은 어렵지만, 5평의 텃밭도 제대로 가꾸면 우리 세 식구 입에 풀칠을 하고도 남는다. 오히려 이웃들에게 선심을 써야할 때도 있다. 밭 주위에서 철따라 나는 냉이, 쑥, 부추, 미나리, 깻잎은 씨를 뿌리지 않아도 거둬들이는 그야말로 공짜!!!



이렇게 좋은 먹거리를 얻다보니 철에 맞게 바로 해먹는 방법, 또 남으면 말리거나 장아찌 담아서 해먹는 저장음식 만드는 비법도 어깨 너머로 배우게 된다.  계절따라 유기농 제철채소를 얻는 것은 기본이고, 먹거리에 대한 기본적인 무식함을 탈출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지난 한 해 정말 감개무량했다.



임신하고 출산하면 좋은 거 먹인다고 유기농 찾고, 생협 회원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그냥 좋은 먹거리를 먹는 것, 그러니까 소비자로 사는 것과 먹거리에 대해서 배우고 직접 농사를 지어 생산자가 된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왜 먹거리가 중요한지, 왜 친환경 농사를 지어야하는지, 왜 제철채소, 로컬푸드가 맛있을 수밖에 없고, 음식은 남기면 안 되는지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화학적, 인공적 개입 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를수록 생산과 소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먹거리 안전은 물론이고 맛도 더 좋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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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텃밭에서 자라는 꼬마 농부의 비약적인 발전이 관전 포인트다. 백일 지나고부터 밭에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때만 해도 엄마 품에 안겨 햇빛과 바람에 일광욕과 풍욕을 하는 게 다였다.(물론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그런데 어느 샌가 밭을 기어다니며 풀을 뜯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상추와 부추를 뜯어 먹는 게 아닌가? 특히 상추와 부추는 쌉쌀한 맛이라 아기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참 신기하게도 좋아하는 거다. 요즘 채소 안 먹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건 채소에 대해서 알고, 친하게 지낼 기회가 없어서가 아닐까?



더 가관인 건 벌써부터 막걸리 맛을 안다는 거다. (별 희한한 자랑거리다^^) 젖 먹이면서도 막걸리를 한 두잔 마셔서 그런가, 막걸리만 보면 헤벌레~ 한다. 옛날 술심부름 하던 아이들이 홀짝홀짝 훔쳐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겠다. 우리 딸도 어떻게 하면 막걸리 한방울 얻어 먹을까, 호시탐탐 빈 병과 막걸리 잔을 노린다. 이런 모습에 어른들이 얼마나 배꼽을 잡겠나? 큰 재미를 선사하고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특히 자녀들이 이미 훌쩍 커버린 주변 분들께 추억을 선사하고, 우리는 아이들 키우던 주변 분들의 옛 이야기 들으며 삶의 지혜를 배운다.



꼬마농부의 절정은 20개월 쯤 곡갱이로 밭을 일구면서부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타공인 99a5fcd383a3d218ebb2bb7f9cc1de6c.최연소 꼬마농부로 인정받고, 일약 텃밭 홍보대사로 맹활약 중이다(밭 가는 아기 사진이 텃밭 홍보용 사진으로 쓰이면서 이 업계에선 꽤 알려짐^^). 꼬마 농부의 활약이 대단한 만큼 떨어지는 콩고물도 많다. 돌쟁이 아기가 있다고 다들 뭐 하나라도 더 쥐어주신다. 우리가 농사 지은 게 아니라도 콩도 얻어먹고, 딸기도 얻어먹고, 호박도, 고구마도 얻어먹는다. 이렇게 햇빛과 바람, 채소와 이웃들 속에서 자라니 아기가 싱싱(^^)하다.



지난 주말에 시농식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꼬마농부의 포스 작렬~ 모종을 만드는데 어떤 분이 여기서 제일 진지한 건 꼬마농부라며 흙을 만지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셨다. 과연 꼬마농부구나~타이틀답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덩달아 옆에 있던 나도 괜히 뿌듯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는...ㅋㅋ (벌써... 자식 덕보려는 심사인 건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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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땅을 밟는다는 것, 온 몸을 써서 일한다는 것, 계절을 알고 계절에 맞게 먹는다는 것 얼마나 소중한가? 그게 일주일에 단 하루가 될 지언정 말이다. 그 하루의 광합성은 도시에서 일주일 살아갈 에너지가 되어준다. 다른 건 몰라도 텃밭 농사는 또다른 조기 교육이라는 생각에 더 욕심이 난다(참 유별나고 희한한 조기교육 종결자ㅋㅋㅋ)



자식농사라는 말도 있듯, 자식과 농사는 같이 해야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자식을 농사짓듯 키우고, 농사를 자식 키우듯 정성껏 애정을 쏟으며 잘 해보려고 한다.^^ 작물과 함께 자라는 꼬마농부의 폭풍 성장을 기대해주시길~~^^







꼬마농부의 텃밭일기 http://ecoblo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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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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