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렌지.jpg

 

긴 연휴를 이용해서 강릉 시댁에 며칠 다니러 가게 되었을때

닭과 개들을 보살펴주러 친정엄마가 우리집에서 한 이틀 주무시게 되었다.

음식 해 드실 경우를 대비해서 새로 바꾼 주방의 전기렌지 사용법을 설명해드렸다.

 

"끝쪽에 있는 것이 온, 오프 버튼이예요. 손가락 한번 살짝 대면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전원이 들어와요. 그 다음에 어느쪽 불을 쓸건지 결정해서 냄비 올리고

아래쪽에 있는 그림대로 내가 쓰는 쪽 불을 켜면 되는데, 우선은 버튼에

손 대서 켜시고, 그 다음에 또 한번 살짝 손가락을 대면 버튼 옆으로 빨간 점이

생기는데 그때 이 플러스랑 마이너스 표시를 손끝으로 두드리면 불을 세게도,

약하게도 조절할 수 있어요"

 

".........알았다. 종이에 하나 적어놓고 가"

 

그래서 나는 내가 말씀드린대로 한번 더 종이에 적고 그림까지 그려놓고

강릉에 다녀왔다.

그런데 다녀와서 보니 식탁 테이블 위에 부탄까스를 넣고 쓰는 휴대용 가스렌지

가 올려져 있는 것이었다. 현관 밖 선반에 놓여져 있던 것이다.

혼자 지내시는 동안 엄마는 이 가스렌지를 이용해서 라면도 끓여 드시고

밥도 데워 드신 모양이었다.

주방 전기렌지 옆에는 내가 적어 두고 간 종이 쪽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비로서 나는 엄마 입장이 되어 그 종이에 적힌 글을 읽어가며 전기렌지를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나는 충분이 상세하게 써 놓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겐 그렇지

않았나보다. 설명대로 따라 하다가 어디선가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고

전화로 물어보자니 시댁에 간 딸은 바쁠것이고 잘 몰라서 전화까지

한다는 것이 아마도 부끄러웠을 것이었다.

엄마는 휴대용 가르렌지를 떠올리시곤 여기 저기 찾을셨을 것이다.

다행이 현관에서 금방 찾을 수 있어서 거기에다 음식을 끓여 먹다가

그대로 가신 모양이었다.

도무지 튀어나와있는 버튼 하나 없는 매끈한 새 기계 앞에서

엄마가 느꼈을 당혹감을 떠올려보자니 마음이 조금 젖어들었다.

 

나이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일상속에서 낮선 물건들이 늘어나는 것..

내가 편하게 다룰 수 있는 세상이 자꾸 좁아지는 것 말이다.

우리는 점점 편리해진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르신들에게는

불편하고, 번거롭고, 주눅들고, 복잡해지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날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젊은 날, 싱가폴에 들렀다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빠른 에스컬레이터 속도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때 난 에스컬레이터를 무서워 하시던 외할머니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싱가폴 여행은 못 하시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만 보이면 멀리서부터 계단을 찾으시던 할머니였다.

관절이 아파서 계단이 힘들면서도 괜찮다며 괜찮다며 계단만 고집하시는 할머니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하려고 애만 썼을 뿐이다.

발을 내 딛으려고 하면 움직이는 계단 앞에서 할머니는 오래 쩔쩔매시고 두려워하셨다.

나는 왜 그게 안될까 그냥 답답하기만 했다.

할머니를 이해하게된 것은 그후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이었다.

왜 좀 더 일찍 할머니 입장에서 세상을 보지 못했을까, 왜 늘 내 세상으로만

할머니를 끌어 당기려고 했었을까.

내겐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할머니한텐 얼마나 불편하고 무섭고 어려웠을까..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잊을 수 없는 대목은

죽음을 앞둔 아들이 홀로 남겨 두고 가야 하는 늙은 아버지에게 비디오 테잎을

플레이어에 넣어 영화를 트는 방법을 설명하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 앞에서 벌컥 역정을 내는 장면이었다.

간단한 기계 하나 스스로 다루지 못하는 아버지를 두고 가야 하는 아들의 기막힌

심정만큼이나 늙은 아버지가 홀로 헤쳐가야 할 일상의 어려움이 숱하게 많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40대 후반이 되고 보니 세상의 속도에 나도 조금씩 멀미가 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주위에서 사소한 것들에 불편을 느끼고 막막해 하는 어르신들의 입장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쓸 줄 몰라 돈은 꼭 은행 창구에서 찾는 어르신들이나, 폴더폰에 쌓인

스펨 메시지들을 딸들에게 한번씩 지워달라고 맡기는 친정 엄마나

내가 쓰는 스마트폰도 자주 낮설어 아들에게 물어보게 되는 나나 모두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집중되는 기능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게

되면 어떻게 하나... 근심도 같이 커진다.

작은 기계가 이렇게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는 감탄보다, 작은 기계에

이렇게 많은 것을 의지해야 하는 현대의 생활이 나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이다.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낮선 곳은 찾아가지도 못하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가까운 친구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다.

돌아가실때까지 일가친지 가족들 생일을 모두 기억하셨던 외할머니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사신게 아닌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다녀가신 집은 유난히 반짝거린다.

딸이 쓰는 진공청소기 대신 물걸레로 집안 구석 구석 닦으신 탓이다.

먼지가 쌓이면 걸레질을 하고 물걸레를 말끔하게 빨아서 널어 놓는

엄마의 세상..

카톡도 없고, 화상통화도 모르고, 문자를 보낼 줄도 몰라서 늘 음성 전화만

걸고 받는 엄마의 그 세상에 이젠 내가 좀 더 다가가야겠다.. 생각하게 된다.

 

자동주행 차량이 시험 운행중이란다.

머지않아 사람이 차를 운전할 일도 없어지게 될 거라고들 한다.

은행에선 종이로 된 통장도  없어지고 모든 은행업무는 온라인으로만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나는 그런 세상이 무섭다.

손에 잡히지 않는 모니터속의 숫자들로 움직이는 세상 말이다.

영화에서처럼 핵심 시스템이 해킹되서 모든 자료가 삭제되고

온통 혼란에 빠져드는 미래가 어쩌면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도 하게 된다.

싫다.

 

내가 사용하는 도구의 원리가 내게 이해가 되고, 눈으로도 보이고

만져지는 세상.. 나 역시 그런 세상에서 더 오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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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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