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국인 가정과 교류를 하다 보면 굉장히 두드러지게 보이는 지점이 하나 있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시키는' 부모의 모습이 바로 그것. 우리가 아는 한 아이는 만 두 살도 되기 전에 나나 남편을 만나면 일명 '배꼽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이 귀엽고 기특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두 살도 안 된 아이가 그렇게까지 하자면 양육자로부터 '안녕하세요 해야지' 란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조부모나 다른 한국인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일수록 이 '인사 교육'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을 텐데, '자연스러운 환경'이 과연 얼마나 자연스럽다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현상이 한국인 가정에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다른 아시안 가정은 물론이고 미국인 가정에서도 “Can you say ‘Hi’?” 하고 인사를 시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한국인 가정의 경우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이 인사가 꼭 배꼽 인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세는 이러하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소수자인 나는 아이에게 인사를 그리 열심히 시키지 않는다. ‘어른으로서의 내가 아이들과 교류할 때 인사하는 행위 자체에 그리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내가 아이들에게 꼭 배꼽인사나 말로 정확히 하는 인사를 받을 필요는 없는데, 다른 한국인 가정에서 아이에게 나를 만나면 배꼽인사를 하라고 시키는 광경을 보는 게 나는 어쩐지 부담스럽다. 어른들의 세계에서야 누군가를 만났을 때 반가움을 표하고 안부를 묻기 위한 출발점으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인사이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아이들은 친구를 만날 때, 친구의 엄마 아빠를 마주쳤을 때, 몸짓과 표정으로 반가움을 표하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하교길에 아이와 함께 들른 어느 공원 놀이터에서 내 이런 생각을 직접 확인해볼 기회가 있었다. 이전 며칠간 같은 장소에서 우리를 본 적이 있는 몇몇 아이들이 다가와서 , 또 왔네?’ ‘, 저 사람 나 아는 사람이다!’ 하는 눈으로 우리에게 슬며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도, 케이티도, 굳이 서로 정식인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눈웃음 한번 주고 받으며 인사하고 곧장 끼야~~” 소리지르며 내달리면 그만이었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나와 굳이 정식 인사를 하지 않고도 그저 다가와서 눈짓으로, 표정으로 인사하고 이내 스스럼없이 자기 이야기를 꺼내거나 나에 대해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 내가 이름이 뭐야?” 라든가 몇 살이야?” “이 애는 네 동생이야?” 같은 질문을 던지면 깔깔 웃으며 답해주었다.

 

그런 상황을 몇 번 겪고 나자 어른들이 본인의 아이들에게 굳이 나나 케이티에게 인사를 하라고 요구하는 장면을 보는 게 더 부담스럽고 불편해졌다. 특히 그런 상황에서 내 아이를 자연스레 대하는 것에 제약이 가해진다는 점이 싫다본인의 아이를 그렇게 교육시키는 부모일수록 다른 아이들에게서 같은 정도의 '인사'를 기대할 것이란 생각 때문에 나도 평소와 달리 아이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부모들이 아이에게 인사교육을 열심히 하는 건 어쩌면 남들에게 내 아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더 신경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아이가 예의 바른 사람으로 크길 바라는 마음이야 문제 될 게 전혀 없지만, 그렇다면 아이에게 '인사해야지'라는 말로 인사를 시키기보단 그냥 부모가 인사를 잘 하는 사람, 예의 바른 사람이 되면 되는 것 아닐까. 아이는 결국 양육자의 언행을 보고 따라 하게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안녕하세요 해야지' '고맙습니다 해야지' 하고 시켜서 나오는 인사는 그 인사를 하는 아이에게도, 그걸 보는 나 같은 어른에게도 불편하고 어색하다. 차라리 어른들끼리 서로의 아이들에게 "안녕," “잘 있었어?” "고마워," "00가 고맙대," "00이가 고맙게 맛있는 것도 나눠주네?"같은 인사들을 서로 나누는 게 좋은 본보기로 기능하지 않을까?

 

이런 나의 생각을, 최근 읽은 책에서도 꼭 내 마음처럼 짚어주었다.

 

"아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되, 실제로 그 행동양식을 적용하는 것은 아이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 . . (조용히 하는 것, 인사를 하는 것 등과 관련해 배운 내용이 언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아이의 몫이다.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아이 스스로의 의식에 따라 아이 스스로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마리아 몬테소리, <아동의 발견>(The Discovery of the Child)에서 발췌)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도 '안녕하세요' 'Hi' 보다는 그냥 웃음으로, 손짓으로 인사를 때우던 케이티가 최근 들어 인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 산책을 하거나 놀 때 누군가를 만나면 "엄마, 나 저 사람한테 굿 모닝할래" 하고 말하고 실제로 누가 지나쳐가면 스스로 인사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그 상대방이 인사를 잘 받아주면 좋아하고, 타이밍을 놓쳐 인사를 못 건네고 지나치게 되면 "에이굿모닝 안 []했어" 라면서 실망하는 빛을 보인다.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매번 그러지는 않지만, 어떤 경우엔 공공장소에 가면 스스로 목소리를 낮추면서 "여기는 이렇게 작은 소리로 말하는 거야" 하고 말한다. 아마 이런 변화 역시 그간 아이가 조금씩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을 자율적으로 적용하게 되면서 나타난 것이리라. 인사하는 즐거움, 타인과 인사로 소통하는 즐거움, 그리고 시간과 장소에 따른 행동양식을 스스로 깨달아 가는 걸 보는 일은 엄마로서는 뿌듯하고, 어른으로서는 참 신기한 일이다. 아이의 변화를 보며 나도 좀 더 인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 말고, 아이들에게 말이다. 배꼽 인사만 인사인 것은 아니고, 꼭 아이가 어른에게 먼저 인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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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놀이터에서 함께 논 친구와. 둘이 무얼 하는데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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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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