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다시.JPG » 6살 때 봄이. 이때 봄이는 며칠 만에 태권도를 그만뒀다.

 

*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누군가 “좋은 부모가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기다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내 스스로도 부모로서 내게 가장 필요하고 더 강화돼야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빨리, 빨리”하려 하고 경쟁과 성취의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기다림이나 느림의 덕목은 별로 중시되지 않는다. 많은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학습이나 발달 측면에서 빨랐으면 하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걱정을 한다. 나 역시 그런 엄마가 아니라고 부인하기 힘들다. 
 
내가 조바심을 보였던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태권도다. 딸이 6살이었을 때 딸과 함께 놀던 남자 친구 두 명이 태권도를 시작했다. 평소 딸이 태권도를 꼭 하기를 바랐던 나는 아이의 의사는 묻지 않고 남자 친구 두 명과 함께 태권도 학원에 보냈다. 남자 아이들이야 태권도는 으레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다 친구와 함께 가니 금방 학원 생활에 적응했다. 그러나 딸은 남자 아이들 투성인 태권도 학원에서 모든 것이 공포스러웠는지 엉엉 울며 “태권도가 싫다”고 울부짖었다. 당시 나는 어떻게든 딸이 태권도를 배우기를 바랐으나, 딸은 강하게 거부하며 며칠 만에 태권도 학원을 그만뒀다.
 
나의 태권도에 대한 집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이 6살이 된 올 봄, 아들은 태권도 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마침 아들 친구 한 명도 태권도 학원에 가겠다고 해서 아들은 친구와 함께 태권도를 시작했다. 태권도 학원에서는 태권도만 가르치지 않고, 신나게 뛰며 게임을 하는 레크레이션 시간도 있었고, 간단한 스트레칭과 함께 줄넘기 하는 시간도 있었다. 친구랑 함께라면 무조건 신나는 아들은 태권도 학원에 금방 적응했다. 아들을 태권도 학원에 보내며, 나는 “기회는 이때다”싶어 딸을 꼬셨다. “봄아~ 여름이가 태권도 하는데 같이 가지 않으련? 거기는 태권도만 하는 것도 아니고, 줄넘기도 하고 노는 시간도 있대~”
 
태권도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은 봄이는 한사코 태권도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마침 내가 육아휴직을 한 터라 나는 봄이에게 ”엄마도 함께 따라가서 지켜보겠다”며 몇 번만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태권도 학원에 간 봄이는 몇 번 수업을 듣더니 또 엉엉 울기 시작했다.“엄마, 나는 태권도 싫어! 여름이만 하라고 해! 난 절대 태권도 안할거야!”
 
두번째 시도도 실패로 돌아가자 나는 아무래도 봄이는 태권도와 인연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아예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딸이 하고 싶어하는 방송 댄스와 인라인 스케이트 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딸은 초등학교에서 만난 단짝 친구와 주말마다 청소년수련관에서 방송댄스나 인라인 스케이트 수업을 들으며 즐겁게 몸을 움직이고 스포츠를 즐겼다.
 

태권도 (1).jpg » 태권도를 다시 시작한 딸. 수업 시작 전 자리에 앉아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게 아이가 원하는 활동들을 지원하겠다고 결심하던 차에, 난데없이 딸이 최근 태권도 학원에 가겠다고 나섰다. 허걱. 영영 태권도는 쳐다보지않을 것 같던 딸이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하다니! 딸의 그런 변화가 나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 역시 아이에게 무엇이든 억지로 시키려 해서는 안되는구나. 기다리면 다 때가 오는구나’라는 진리를 알려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딸이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한 이유는 태권도 학원에서 줄넘기도 가르쳐주기 때문이었다. 학교 체육 시간에 줄넘기를 하는데, 딸이 가장 하고싶어하는 것은 ‘쌩쌩이’(2단 뛰기)다. 처음에 줄넘기를 잘 하지 못해 속상해하다 지속적인 노력 끝에 앞으로 뛰기, 가위자 만들기, 뒤로 뛰기 등이 가능해진 딸에게 ‘쌩쌩이’는 자신을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줄 뭔가처럼 보였나보다. 특히 줄넘기를 전혀 하지 못하던 6살 동생이 태권도를 다닌 몇 개월 만에 앞으로 뛰기가 가능해진 것을 보며 딸은 놀라워했다. 딸은 이번 달부터 일주일에 두 번 동생과 함께 태권도에 다니기 시작했다. 딸은 스트레칭과 줄넘기, 레크레이션 시간을 좋아하지만 태권도 품세는 따라하기 힘들다며 속상해한다. 그래도 “태권도 배우기 싫다”며 엉엉 울던 아이가 이렇게 자신이 나서 다니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모른다. 자신이 원할 때는 아이가 이렇게 먼저 나서서 하겠다고 나서고 조금 힘들거나 어려워도 그만두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자발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태권도를 시작한 딸이 꾸준히 태권도를 배우고 더 씩씩해지고 더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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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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