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은 아빠에 스며든 신생아 수면 주기를 극복하고 ‘쓰읍, 찹, 쓰읍, 찹’ 밤의 육아에 도전하다

“밤을 책임지겠다.”
장인·장모님이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돌봄의 왕들이 귀환할 때까지 야간 육아를 맡겠다고 선언했다(‘입’육아가 아니라는 건 두고 보면 알 일). 주어진 시간은 4주, 아내의 불안은 당연했다. 아내의 구원투수는 늘 장모님이었다. 기회를 달라는 육아빠 희망자를 향해 “아이를 키우는 것은 실전이다. 연습 삼는 것은 거부한다”는 아내의 원칙은 분명했다. 이제 이유식 실패를 딛고, 레알 육아빠의 대열로 도약할 절호의 찬스였다. 아드레날린이 솟아올랐다.

이날부터다. 아내는 늘 그렇듯 목욕 뒤, 기저귀를 갈고, 수면등을 켜면, “동구 밖 과수원길”을 무한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날은 나도 밀린 집안일을 일단 미루고, 아이 옆에 누웠다. 매일 그래왔다는 듯, 함께 토닥토닥, 무리한 화음을 넣었다. 고향의 과수원길이 어떻게 생겼더라….

그때, 저 멀리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왜 자?” 신생아 수면주기가 마흔 넘은 아빠의 몸 안에 스며든 것이다.

144557729257_20151024.JPG » 육아빠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아이를 재우는 것이다. 엄마는 이날을 기념해 사진을 남겼다. 하어영

시작이 부진하다고 주눅 들지 말자. 다행히 나는 잠귀가 밝았다. 아이가 보채는 소리에 엄마보다 먼저 일어났다. 아이에게 다가가니 ‘이 양반이 무섭게, 오늘따라 왜 이래’ 하는 표정이다. 더 크게 운다. 여느 때처럼 아내가 스윽 일어나 품에 안는다. 동시에 “혹시, ◯◯◯ ◯◯◯ 가능할까요”라며 빠르고 구체적으로 메뉴를 읊었다. 이가 시려 정신이 달아날 정도의 찬물 한 통, 적당히 따뜻한 물이 담긴 아이의 물병, 여름용 기저귀, 아이의 입을 닦을 물티슈. 달빛에 의지해 주섬주섬 챙겨 방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아이는 잠들었다. 4주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

기회는 남아 있다. 밤은 길다. 혹여 깨어날 여명이 찬스다. 매일은 아니니, 꼭 잡아야 한다.

“마, 마, 앙!”

벌떡 일어났다. 새벽빛이 뿌옇다. 아내는 일어나기 힘겨워 보였다. 아이를 안아올렸다.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어디서 들었는지(봤는지) 족보를 알 수 없는 비법, 스쿼트이다. 이래 봬도 퍼스널 트레이닝까지 받은 몸. 하지만 아이의 백일이 지나고 수면시간이 늘면서 잠시 접어둔 상태였다. 중단한 이유는, 간단하다. 40년산 무릎이 시려서다. 아이는 커갈수록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낮게, 더 오래라며 온몸으로 신호를 보냈고 나는 한계에 다다랐다. 이날도 칭얼거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쓰읍, 찹, 쓰읍, 찹…. “옷도 안 입고 뭐하느냐” “아이 정신없겠다” “꼭 티를 낸다”는 아내의 중얼거림에도 중단할 수 없다. 여기서 멈추면 아이는 아마 ‘처음부터 다시’를 외치듯 울기 시작할 것이다. 장담한다. 효과는 있다. 스쿼트는 달리 운동의 왕이 아니다. 아이와 긴 시간을 보내지 않는(못하는) 육아빠가 아이를 잠들게 하는 기능도 탑재한 게 스쿼트이다. 일단 아이의 울음은 잦아들었다.

“현관등 친구야/ 너는 정말 착하구나/ 내가 올 때마다/ 나를 비춰주니까.”

쓰읍, 찹, 쓰읍, 찹, 스쿼트 중간에 마법의 노래를 피처링했다. 작사·작곡 김혜영. 우리 장모님이시다. 1년 전, 새벽에 우는 아이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초보 엄마·아빠 앞에 홀연히 나타난 장모님. 아이를 안아올려, 현관 쪽으로 향했다. 약속한 듯 번쩍, 등이 들어왔고, 세상에 기적 같은 고요가 찾아왔다. 물러나면 꺼졌다, 다가가면 켜졌다, 그 리듬에, 아이는 잠이 들었다. 그때, 장모님의 입에서 주술처럼 구원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안의 전설요, ‘현관등 친구’는 이렇게 태어났다. 쓰읍, 찹, 쓰읍, 찹…. 현관등…, 친구야….

하어영 <한겨레> 기자

(*이 글은 한겨레21 제1083호(2015.10.2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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