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규24.jpg

 

아들은 열세살, 한창 폭풍 성장중이다.

올 초만 해도 분명 내가 더 컸는데 어느새 눈높이가 똑같아졌고, 신발은 나보다 크게 신는다.

얼굴의 각이 선명해지고, 어깨도 훨씬 넓어지고 있고, 코밑 솜털도 거뭇해진것이 가끔은 내게도

딴 사람 같다.

 

사람들은 아들이 잘생겼다고, 키가 언제 이렇게 컸냐고, 참 멋지게 잘 큰다고 칭찬이지만

훈훈하게 변해가는 외모에 비해 널을 뛰듯 요동치는 감정과 고집은 또 얼마나 센지,

하고 싶은 일에만 관심이 있고, 해야할 일은 뒷전이어서 나와 수시로 부딛치곤 한다.

 

오늘 아침만해도 그렇다.

갯벌탐사를 가는 날이라 준비물이 많다고 알람을 7시에 맞추어 놓고 잔다는 것이다.

그때 일어나 짐을 챙길꺼니까 엄마도 도와달란다. 물론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열흘넘게 기침을 하고 있어서 몸도 힘들터이고 며칠 바짝 단도리를 해 준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밤 사이 기침없이 자 준 것이 고맙고 대견해서 알람소리를 듣고도 안 일어나는 것을

너그럽게 봐 준채 내가 필요한 것들을 다 챙겨놓고 여덟시쯤 깨웠다.

아홉시 마을버스를 타면 되니까 그 시간쯤 일어나 여유있게 준비하면 되는데

안 일어난다.

두 여동생들 먹이고 채비 차려서 여덟시 반쯤엔 나가야 해서 그 사이 아들도 준비를 해 주어야 하는

내 마음은 급한데 아들은 도무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종종거리며 집안을 오가며 두 딸들 머리 빗기고 아들방 한번 들여다보면 그제서야 이불에서 몸을

일으켜 또 책을 보고 있다.

"엄마는 금방 나가야 돼. 빨리 챙기고 나와서 짐 싸야지. 늦겠다"

두 딸들 이 닦으러 보내며 다시 들여다보니 겨우 윗옷 벗고 또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필규야, 마루에 갯벌탐사 준비물 다 내놓았으니까 가방에 넣고 확인해봐. 빨리 옷부터 입고 나와서

밥 먹고.."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참고 이렇게 단속하고 다시 딸들 챙겼다가 나와보니

옷 입고 소파에 앉아 또 책을 보고 있다.

 

아 그놈의 징글징글한 책, 정말이지 확 뺏어 집어던지고 싶다.

 

"짐, 가방에 넣고 확인해봐. 아침 차린것도 빨리 먹고... 엄마가 금방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책만 보고 있으면 어떻게 할거니"

소리쳤더니 대번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빨리 일어나서 짐 챙겨. 정말 그렇게 꼼짝않고 책만 보고 있을꺼니?"

"뭘 챙겨야하는데요" 소리를 지른다.

"니가 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 갯벌에 들어가서 입을 옷이랑, 도시락이랑, 목장갑이랑

양말이랑.. 도대체 스스로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준비는 어떻게 할꺼야. 니가 일찍 일어나서

챙긴다면서 알람 소리 울려도 일어나지도 않고.. 그래서 엄마가 다 챙겨 놨으니까 확인해서

가방에 넣으면 되잖아. 엄마는 곧 나가야하는데 언제 챙길꺼야. 아직 밥도 안 먹고.."

"아.. 또 잔소리..."

그말을 듣고 마침내 나도 폭발했다.

"뭐라고? 잔소리라고? "

"네!"

"엄마가 처음부터 잔소리했어? 시간에 맞추어 준비하라고 말해주고 또 말해주고 일러주고

알려줬잖아. 화 낸 것도 아니고, 다만 준비하고 챙기라고 서두르라고 몇 번이나 확인하며

말해줬는데 넌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으면서 엄마보고 잔소리한다고?"

"지금도 잔소리잖아요"

 

이럴땐 정말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렇게 말싸움을 하는 자체가 벌써 아들한테 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감정을 누르고

차분하게 풀어가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하다.

스스로 준비하지도 않으면서 도와주려는 것을 잔소리라니, 이건 너무 뻔뻔하고 건방진거아닌가.

"니가 스스로 약속한거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면서 엄마가 말해준 것 조차도 움직이지 않았으면서

너는 하나도 애쓰고 노력하지 않았으면서 엄마가 잔소리만 했다고 엄마를 비난해?"

"엄마도 저를 비난하셨잖아요"

아, 이건 정말..

이럴땐 어떻게 하는게 현명한건지 알수가없다.

비난해서 미안하구나, 시간에 맞추어 준비를 해 주겠니? 하고 정중하게 부탁을 해야 하나?

화가 머리끝까지 나고 약이 바짝 올랐는데 그런 세련된 엄마 코스프레는 가능하지도 않다.

나는 결국 제일 안좋은 시나리오대로 화가 나서 소리 소리 지르며 아들에 대한 분노를 쏟아 놓는다.

 

"갯벌은 누가 가는 거야, 엄마니? 니가 가는 거잖아. 왜 너는 준비를 안 하는거야. 왜 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챙기는거냐고.. 엄마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려고 할때 너도 움직여야지.

아무 노력도 안 하면서 엄마만 잔소리꾼에 화만 내는 사람이라고?"

이 나이 먹도록 철이 안 든 나는 아들한테 서운한 감정만 들면 눈물부터 솟구친다.

결국 눈물바람을 하면서 집을 나섰다.

 

아들하고 싸우는 불똥은 괜한 윤정, 이룸에게 튀어서 나는 두 딸들을 다그치듯 재촉해

차에 태웠다. 운전하고 나오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화나고 억울했다.

왜 맨날 애쓰는 엄마한테 저렇게 함부로 구는건지, 처음부터 내가 잘 못 키운건가..

제가  할 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알아서 챙기도록 놔둬야 했던건가? 스스로 챙기지

못하는거 뻔히 아는데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정답이었을까?

내가 너무 편하게 키운건가? 엄마가 해줄꺼라고 생각하니까 저렇게 꼼짝을 안  하는거겠지,

지각을 하든, 늦어서 갯벌에 못 가든, 그냥 놔둬야 하는 거였나.

제 책임을 내가 져주니까 아직도 저렇게 무책임한건가, 결국 다 내탓인건가..

그래도 딸들은 시간에 맞추어 움직여주고, 준비해주는데 왜 아들만 이모양인건지,

그냥 사춘기라는 이유로 봐줘야 하는건지, 뭐가 정답인지 알 수 가 없다.

 

씩씩거리며 두 딸들을 학교 근처에 내려주고 집에 돌아왔더니 아들은 그제서야 이를

닦고 있다.

아들을 불렀다.

"엄마 너 한테 서운해"

"저도 서운해요."

"그래? 그럼 엄마부터 먼저 얘기할께. 너도 얘기해.

어제 알람 맞추고 일찍 일어나 준비하겠다고 했지. 아침에 알람 울렸는데 안 일어났지.

기침 오래 하느라  몸이 힘들었을꺼라고, 그마나 기침 않고 자 준것이 고마워서 엄마가

일부러 안 깨웠어. 조금 더 재우려고... 준비물은 엄마가 챙겨주면 되니까..

이게 엄마 마음이었어.

버려도 되는 옷 찾고, 목장갑 찾느라 1층과 2층을 오가며 다 찾아서 챙겨 놓고 너를 깨운거야.

그런데 일어났니? 두 여동생들도 챙겨줘야 하고 아침에 제일 바쁜데, 너도 챙길게 많아서

엄마가 나가기 전에 준비시켜야 해서 서두르면서 계속 할 일을 말해주고, 시간 알려주고

도와준건데, 넌 움직였니? 책만 보고 있었잖아.

엄마가 처음부터 잔소리하고 화낸거 아니야. 알려주고 얘기해준거잖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시간 말해주고, 그 시간에 할 일을 말해준건데

몇 번을 알려주고 말해줘도 너는 니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말이 잔소리가 되고, 화가 되는 거지.

모든 일에는 과정이라는게 있는거야. 그 과정은 모두 무시하고 엄마가 잔소리하고

비난만 하는 사람처럼 말해버리면 엄마도 상처받아, 화나고 서운하다고..

 

너, 열흘넘게 기침하는 동안 기침한다고 걱정하면 아빠는 엄마가 병원에 안데려가서 그렇다고,

약도 안 먹이면서 그런다고 야단만 쳐. 아빠는 그렇게 쉽게 말해.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약 안 먹이면서 너희들 키우는 동안 그만큼 애쓰고 노력했어.

너 기침 오래 해서 밤 마다 겨자찜질 해주고, 밭에 가서 파 뽑아서 대파 흰뿌리에 기침에 좋다는거

이거 저거 섞어서 달여서 수시로 너 먹이고, 살피고.. 엄마가 요 며칠동안 정말 애썼어.

그래서 기침 좋아졌잖아. 밤 사이 기침 없이 자 준게 정말 정말 고마워서 스스로 정한 시간에

못 일어난거 이해했다고.. 이게 엄마 마음이야.

누구나 자기가 애 쓴 것을 이해받고 싶어. 엄마도 마찬가지야. 애쓰고 노력한게 있는데

그런거 다 무시하고 잔소리꾼에 짜증쟁이처럼 한마디로 엄마를 비난해 버리면 정말 속상해.

엄마도 너한테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다고.. 너만큼 엄마도 너한테 사랑 받고 싶으니까..

엄마도 너랑 똑같애. 너랑 원하는게 같다고..

니가 정말 엄마 도움이 필요 없는데 엄마가 일일이 챙기는 것이 불편한거면 엄마 잘못이 맞아.

정말 그런거니? 엄마가 도와줄 필요가 하나도 없는거니? 엄마 혼자 오버하고 난리치는거니?"

"... 아니요..."

"엄마 도움이 필요하긴 한거니?"

"네..."

"그런데 그렇게 안 움직이고 쉽게 비난해버리면 엄마도 상처받아, 속상하고 서운해. 화 난다고..

이게 엄마 마음이었어.

.... 할 얘기 있니?"

"..... 없어요."

나는 옆에 앉아 있던 아들을 와락 껴 안았다.

"할말이 없어야지. 할말이 있다고 하면 한 대 때려줄려고 그랬어"

아직 보송한 아들 얼굴을 쓰다듬었다.

"너도 엄마한테 사랑 받고 싶은 것 만큼, 엄마도 늘 너한테 사랑받고 싶은거야.

서로 원하는게 같은데 아무것도 아닌걸로 상처주고 상처받는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

갯벌에 가서 재미있게 놀다 와. "

"네... 엄마... 사랑해요."

"엄마도 사랑해.."

 

한바탕 난리를 친 엄마와 아들은 또 이렇게 유치하고 뻔한 결말을 맺고 새삼 애틋해져서

바이바이를 한다.

큰 베낭을 매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달려가는 다 큰 아들의 뒷 모습을 보자니 한숨이 나온다.

아이가 크면 엄마도 더 성숙해져야 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나는 점점 더 유치해져가고

작은 일로  발끈하는 철 없는 엄마가 되는 것 같다.

아이와 있었던 일들을 수없이 복기하며 어디서부터 내가 잘못한건지, 어떻게 했어야 하는건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또 마찬가지 반응일것을 잘 알기에

한숨만 나오는 것이다.

 

왜 딸한테 통하는 것이 아들한테는 안 되는 것일까.

완전히 다 챙겨주던지, 아니면 완전히 알아서 하게 손을 때던지 분명한 노선을 정해야 하는데

늘 이도저도 아니어서 아들이 이렇게 제멋대로인  걸까? 생각도 하다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한테는 어떤 식이든 비난하는 표현을 쓰면 안되는데 그게 정말 생각대로 안 된다는게

고민이기도 하고, 결국 내 미천한 인격탓인것 같아 다시 우울해진다.

 

부드러운 말로 아들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춘기 아들과 행복한 동거를 꿈 꾸지만 시작도 전에 요란하게 삐걱이기만 하는 내 모습이

더 못마땅해 속상하니... 도대체 엄마 노릇은 언제쯤 쉬워지는걸까..

그런 날이 오기나 하려나..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너그럽게 넘기며 인내를 가지면 되는 일인데

지나고 나면 쉬운것이, 닥치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지고 만다.

 

아... 문제는 아들이 아닌고, 나인가보다..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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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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