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CN2336.JPG
거실 한 켠에 아이 책상을 배치한 일본인 가정의 모습.
부모가 함께 머무는 거실에서 숙제나 공부를 하는 아이가 학습력이 더 높다는 이유로
거실에 아이의 학습공간을 두는 가정이 요즘은  많아졌다.




오랜 초등교사 생활로 수십년간 가정방문 경험을 쌓은 일본의 유명한 교육자,
'가게야마 히데오'는 <공부 잘하는 아이의 집>이라는 책에서
집이 아이들의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랜 가정방문을 통해 제가 깨달은 사실은
아이의 학력은 집의 호화로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집 구성원들의 '생활태도'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인생관이 없는 채로 집을 짓거나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가구를 들여놓은들
'팥없는 찐빵'에 다름없습니다. 그런데도 주택이나 가구를 구입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보면 집에 대한 의식이 희미한 게 아닐까 하고 의문을 갖게 됩니다.
'어떻게 지내고 싶은가'라는 자신의 생각은 모호한 채
기업이 광고나 전단지를 통해 호소하는 이미지에만 눈길을 빼앗겨
'여기에 살면 이렇게 멋진 삶을 누릴 수 있을거야!'
'이런 책상을 사주면 우리 아이도 성적이 좋아질 거야!'라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므로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모방할 게 아니라
자기집, 자기 가족의 생활을 돌아보기 위한 자극제의 하나로 삼기 바랍니다.
가족의 토대인 집을 만드는 과정은 가족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지를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한 가족을 위한 '기초 중의 기초'로 내딛는 첫걸음입니다.

아직 가정방문 문화가 남아있는 일본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집의 형식적인 면보다는 내용적인 면을 알차게 채우는 것,
그리고 집에 대한 부모의 확고한 철학이
행복한 가족을 위한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작가의 의견에 무척 공감이 간다.
매년 학기초마다 가정방문을 위해 수많은 집을 다니면서 교사의 시각으로 보다보니
아이의 성장과 집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았을까.


집이라는 개념은 공간적인 의미의 House

정서적인 의미의 Home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전자는 주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기능과 효율적인 면을 중요시하고,

후자는 휴식과 새로운 에너지를 통해 심리적인 안정과 충만감을 얻는

정서적인 면을 중요시한단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House에 가까울까, Home에 가까운 걸까.

이 두 가지 요소가 적절히 조화된 집이 가장 이상적인 집이겠지만,

가게야마 교사가 말하는 '아이에게 좋은 집'이란

우리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가에 대한 교육 철학을

부모가 확고하게 가지고, 기능과 정서적인 면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와 함께 살고 싶은 집에 대해 꿈을 꾸지만,

그 대부분은 참 막연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구체적인 생각은 부족한데

구체적이지 않은 생각은 너무 넘쳐서인 것처럼

집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도 너무 막연하거나 모호한 건 아닐까.


책을 다 읽은 아이는 돌멩이로 흙을 파고, 나는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한껏 멍한 시선을

초록빛 전경 아무 곳에나 방심하며 던져둔다.

아이가 무심결에 뒤집은 돌밑에서는 스무 마리의 쥐며느리가 달아난다. ...

지금 나는 오랜만에 '집'이라는 이름의 공간이 주는 황홀경에 취해 있다.

평소에 양말조차 빨래통에 제대로 넣을 줄 모르는 남편까지도 열심히

쓸고 닦으며 내게 행복한 얼굴로 자꾸 묻는다.


이 집. 너무 완벽하지 않니?


                                   -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 오소희   중에서 -


아이와 함께 사는 집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여러 작가의 책과 함께,

내가 꿈꾸는 집에 대한 영감을 심어준 말들은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 <빨간 머리 앤> 한국어 초판이 있는 집

- 뮤지컬보다 슈베르트 연가곡같은 집

- 도심 속의 비밀기지같은 집

- 밖에 나와 있으면 얼른 돌아가고 싶은 집

- 멀리서 지붕 모서리만 봐도 행복해지는 집

- 한 권의 그림책 같은 집

- 장난감 상자같은 집

- '시작'의 이미지를 가진 집   ... ...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내가 꿈꾸는 집은 House보다는 Home에 더 가까웠다.

정서적인 면에서 충만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집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기능적인 면을 덧붙이자면,


- 부엌과 욕실에 창이 나 있는 집(아파트에 살면서는 이게 가장 절실했다)

-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집

- 부엌은 작더라도 독립된 공간일 것

- 가족이 함께 공부가능한 큰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 거실

- 인테리어 메인컬러는 원목과 화이트.

- 손바닥만한 공간이라도 마당이 있는 주택이나 아파트 1층 ...


이렇게 집의 정서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이 구체적으로 정리되고 나니,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

한국과는 달리 주택 거주자가 전체의 60% 이상이며,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주택 문화가 있는 일본은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집을 짓거나 이미 완성된 주택을 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서양과 동양의 집이 가진 장점을 골고루 활용해 주택을 지어온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일본 스타일의 전형적인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집도 많지만

아파트는 아파트대로 주택은 주택대로, 개성있고 독특한 집들이 무척 다양한 편이다.


DSCN4741.JPG


사진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져 분양중인 주택의 모습이다.

단독주택의 장점과 아파트의 실용적인 면을 적절하게 반영해 지었는데,

1층 거실 쪽 창문은 방범을 위해 자동셔터가 달려있고, 지붕에는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 전기료는 거의 내지 않을 정도로 기능과 효율성을 높인 점이 장점이다.


도심 한복판에 지은 이런 주택이라면 가격이 어마어마하겠지만

베드타운이라 불리는 대도시 변두리로 나오면

도심의 작은 아파트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경우가 많다.

전세제도가 없어 무조건 비싼 월세를 내고 집을 구해야 하는 일본인들은

요즘은 아예 신혼 초부터 이런 주택을 구입하는 부부들이 흔한 편이다.

집값의 대부분을 은행융자로 메우는 가정이 대부분이지만

계속되는 낮은 은행금리와 30년 안팎의 장기대출이 가능해

적은 초기비용으로도 주택살이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한국에서 단독주택의 이미지는 아직, 넓은 마당과 큰 규모의 집이 연상되는데

일본의 주택은 30평이 될까말까한 작은 규모에 마당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두세평 남짓한 정도가 대부분이다.

직장까지 출퇴근이 1시간 이상은 기본적으로 걸리고, 그것도 모자라

역에 내려  자전거를 타고서야  집에 겨우 도착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주택을 선호한다.

기능과 효율도 중요하지만 다소 불편하더라도 조용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그들은 '집'이라 부르는 듯하다.


집을 둘러싼 수많은 생각과 고민과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온 지 이제 2년이 지났다.

지금 집에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살이 조금씩 방향이나 빛깔이 바뀌어 가는 걸

천천히 느끼는, 바로 그런 순간들이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살고 싶은 집,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삶은 바로 이런 것이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집.

밖에 나와 있으면 얼른 돌아가고 싶은 그런 집.

삶의 진리가 담긴 책의 초판본이 있는 그런 집.

집의 부족한 기능을 가족의 지혜로 채울 수 있는 그런 집..


두 아이의 일상의 무대가 되어주는 이 공간에

곧 아이들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신다.

선생님들은 우리집을 어떤 집으로 기억하게 될까.

두 아이의 삶의 역사가 날마다 한 페이지씩 쓰여지고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태어날 수 있는 집이 되도록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가꾸어 가고 싶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70463/f1a/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수
1365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7주 남편 없는 하늘 아래 imagefile [2] 케이티 2015-06-01 8339
1364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나를 위한 두 시간. 진작 이럴 걸! imagefile [2] 최형주 2015-05-31 7146
136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딸들 덕에 나는야 공주 엄마 imagefile [2] 신순화 2015-05-31 22853
1362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아이의 무서운 학습 능력 imagefile [2] 김태규 2015-05-31 6600
136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일본 가정식 imagefile [3] 윤영희 2015-05-29 9941
1360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관중도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 imagefile [6] 김태규 2015-05-29 14480
1359 [윤은숙의 산전수전 육아수련] 안심과 무심, 그 멀지않은 거리 imagefile [12] 윤은숙 2015-05-28 10901
1358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아들녀석과 야구 시리즈 1달, 안 봐줘도 졌다 imagefile [4] 김태규 2015-05-27 14798
1357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짬짬육아 시즌2를 시작하며 [3] 김태규 2015-05-26 9343
1356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현민'꽃 피어난지 100일 imagefile [6] 최형주 2015-05-26 6575
1355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두 엄마 이야기: 누가, 무엇이 아이의 행복을 결정하는가 image [6] 케이티 2015-05-26 8059
135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열세살 아들, 밉다 미워!! imagefile [2] 신순화 2015-05-22 8195
1353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딸아, 너의 가시가 되어줄게 imagefile [4] 양선아 2015-05-21 16236
1352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하늘이의 웃음을 기다려 imagefile [2] 최형주 2015-05-20 6169
135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1학년을 부탁해!! imagefile [6] 윤영희 2015-05-19 15124
1350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신발이 닳도록, 카르페 디엠 imagefile [12] 케이티 2015-05-18 9938
»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집이 아이를 키운다 imagefile [13] 윤영희 2015-05-16 13801
134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영어공부라니... imagefile [9] 신순화 2015-05-15 13152
134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퍼즐맞추기 잔혹사 imagefile [1] 홍창욱 2015-05-15 7318
1346 [김명주의 하마육아] 이 뜨거운 순간, 곰남편은... imagefile [5] 김명주 2015-05-14 14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