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시간, 이 시간이 말도 못하게 쓸쓸하다. 당최 그 이유가 무언가 줄곧 생각을 해 보았으나 여태 알아내지를 못하였다. 아무래도 앞으로도 그럴 게 틀림없다. 이런 마음의 쓸쓸함을 남편이란 자에게 전하였다가 '거 참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구료.'란 면박을 받고 말았으니. 곰을 인간으로 형상화하면 저리 생겼으랴 싶게 생긴 그는 안팎이 참으로도 조화로와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조차 한 마리 곰이었으니. 감정의 둔하기가 어디 비할 데가 없다. 하루의 작업이 무사히 끝났음에, 해가 떨어질 무렵에야 비로소 긴장을 풀고 여유를 찾는다며 일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그에게 해질 무렵 고독 운운은 돼지 목에 진주스러운 사치에 다름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 반듯한 가정을 이루면 이 지긋지긋한 해질 무렵 우울도 사라지겠거니 하였더니, 아아,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사라지기는 커녕,  객관적 설득력도 없이 불쑥불쑥 나를 덮치던 우울이 타당한 사유까지 얻어 해질녘 우울함은 가열차게 페달을 밟고 말았으니.

 금요일, 아들이 잠든 늦은 밤 집을 찾는 남편은 일요일 대여섯 시경 다시 일터로 떠난단 말이다. 그러니 이제 해질녘 내 우울은 얼씨구나, 그럴싸한 명분까지 얻고 등짝에 착 달라붙어 떠날 생각을 않는다.

 

 5월이다, 5. 이게 또 가정의 달이란다. 쓸데없이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을 한데 몰아 넣은 걸로도 부족해 스승의 날이며 석가탄신일 아무튼 죄 모아뒀다. 간헐적으로 혹은 적재적소에 출현하는 빨간 숫자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으니, 곰남편께서는 빨간 날과 하등 관계없는 참으로 지난한 일을 하시는 통에 휴일이라고 함께할 수 있을 리가 만무.

 그리하여 올해의 어린이날도 어김없이 아들과 나는 둘이서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고 뭐 재미난 게 있으랴 궁리를 하였다. 엄마가 되고 보니 외롭다는 둥, 우울하다는 둥 감정의 사치를 있는대로 부리며 나 좋자고 늘어져 있을 수가 없었던 게다. 가까운 월드컵 경기장이라도 갈까, 어린이 회관이라도 갈까, 여기저기 검색을 했다만 죄 시시해 보인다,는 거짓말이고 애랑 둘이서 왁자한 가족들 틈에 끼자니 지레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그렇다고 온종일 집에 머무는 것도 어린이를 둔 어미의 자세가 아닌 듯 하여 일단 외출복 차려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문을 나서기는 하였다.

 

 헌데 아들이 아무데도 가지 않겠단다. ? 아니, ?

 자긴 계단이 무지하게 좋단다! 계단이 최고최고최고 엄청엄청엄청 재미가 나다네?

그리하여 아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시원한 복도 계단을 무한 반복 오르내리기를 하는데. 거 참, 어디 가기도 귀찮은데 잘 되었다 싶기도 하고 아직 어린이날조차 제대로 알 리 없는 저 녀석이 섣불리 철이 들어 엄마 마음을 눈치챘나 안쓰럽기도 하여 처음 몇 번은 엄마도 동행을 하였다. 그래, 네 녀석 덕에 이 엄마 다이어트까지 해보자꾸나.

 허나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자 귀엽고 안쓰럽던 마음은 간 데가 없고 아니, 왜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냐, 역정이 시작되었으니.

아들은 한사코 계단을 떠나지 않겠단다. 녀석은 엄마와 둘만 나서는 나들이 따위 즐겁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저 전심전력으로 계단이 좋았던 것이다. 평소에도 계단이 좋았다만 어린이날 특집으로 오늘따라 더욱 격렬하게 좋은 것이더냐!

결국 엄만 들어가겠소, 너는 있으려면 있으시게-라는 마음으로 등을 보이고 돌아섰으나 아들은 개의치를 않고.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는 삼십 분을 훌쩍 넘겨 두어 시간 너끈히 보냈다.

 

MyPhoto_1115058101_0332.jpg 

 

 그렇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오후 나절을 다 보내고 해가 넘어갈 무렵, 내 이 날만은 적적함에 빠지지 않겠다며 사운드북에 한껏 꽂힌 아들과 원숭이 박사 노래를 무한재생, 평소보다 과장되게 더 흥을 돋우어 신나게 소리를 질러댔다. 아들 재밌으라고 손바닥에 그림도 좀 그려 보았다.

 

 이 세상에 오직 나만 바라보는 한 사람. 세상에 이토록 절박하게,  감정적 사랑을 너머 생존을 위해 절절하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없었고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대책 없이 가라앉기만 하던 마음을 조금씩 건져 올린다.  아들이 이 쓸쓸함을 닮지 않도록 많이 웃어야 하고 곰남편이 마눌과 아들 걱정에 염려치 않도록 조금 더 강해져야 하고.     

 

 해 넘어가는 시각에 대해 나와 완벽한 대척점에 선 곰돌이 남편은 보시게, 엄마가 웃으면 웃음이 나고 엄마가 울면 울고 싶어지는 아들이 내 곁에 있으니 아마 나의 일몰도 조금씩 다른 풍경을 맞게 될 것이오. 그리하여 어느 날,  나에게 해 떨어지는 시각은 하루의 가장 뜨거운 순간이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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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나이 마흔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들 한 마디 할 동안 열 마디 한다며 타박 받을만큼 급하고 남 이야기 들을 줄 모르는 성격이었거늘, 걷고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늦된 아이를 만나고 변해갑니다. 이제야 겨우 기다리고,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람에게 처음 다가온 특별함,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의 이야기가 따뜻함으로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이메일 : toyoh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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