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햇빛에 나가서 많이 놀리세요!”

우리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병원 신세를 진 날, 2시간의 상담(수다) 끝에 담당 의사가 내린 처방전이다. 아, 이 병원은 정확히 한의원이고, 곧 의사는 한의사다. 나는 병원보다는 자연치유력에 의지하는 편으로, 웬만해서는 병원 신세 안 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꼭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한의원에 먼저 간다. 다른 이유보다는 병원 냄새는 불안하고, 한약 냄새는 편안하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아이의 무릎 뒤 접히는 부위가 빨갛게 일어났고, 아이가 가려워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빨간 부위가 점점 넓어지고 아이가 밤에 긁기 시작하자 아토피가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친구에게 피부 전문 한의원을 소개 받았다.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멀쩡한(!) 젊은 한의사였는데, 상담과 처방이 참 엉뚱(!)했다. 아이를 어떻게 가지게 됐고, 어떤 환경에서 키우고, 부부관계는 어떻고, 주 양육자는 누구고, 아이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뭘 먹고, 주말은 어떻게 보내는지 등등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내놓게 했다. 내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애 키우는 이야기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첫날 상담시간만 장장 2시간에 가까웠다.

무슨 증상이 있으니 어떻게 치료하겠다는 대증치료가 아니라 삶 전체를 살피고, 그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아토피 보다는 건선이 의심된다고 했다. 염증을 가라앉힐 연고와 몸 속의 원인을 어루만질 한약도 처방 받았고, 조심해야 하는 음식 리스트도 받았지만, 최종 처방전은 다름 아닌 ‘햇빛’이었다. 가능한 아이를 햇빛에 많이 놀리는 게 '최고의 약'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햇빛만 보면 훌러덩 벗고 눕는 영국 사람들과 비슷한 신세가 되었다. 볕이 좋으면 밖으로 나가 벗을 생각만 한다. 다행히 우리집이 남향이라 겨울에 햇빛이 깊숙이 들어오긴 한다. 하지만, 햇빛과 바람을 세트로 온몸으로 받으면 더 좋을 거 같아, 날이 좋으면 산으로 들로 산책을 많이 다닌다. 햇빛을 많이 받으려고 옷을 가능한 가볍게 입히고, 한산한 곳에서는 아예 하의실종 패션, 그러니까 아이를 발가벗겨 놓기도 했다. 이렇게 하루종일 햇빛을 잘 받으면서 뛰어논 날은 말끔하게 괜찮아졌다. 반대로 일이 바빠서 집에서 있었던 날은 아무래도 다시 안 좋아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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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전되다가 다시 악화되고,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는 사이 봄이 지나갔고, 피부도 좋아졌다. 그렇게 끝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올 가을 환절기가 되자 다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밖에 많이 못 나갈 땐 확실히 더 심해졌다. 작정하고 다시 햇빛을 찾아갔다. 볕 좋은 날은 만사 제쳐두고 밖으로 뛰어나가 아픈 부위를 햇빛에 보이곤 했다. 주위에 지나는 사람들은 '애가 너무 춥지 않냐'고 걱정했지만, 우리 아이는 햇빛과 바람 속에 너무나 편안하고 건강하고, 무엇보다 행복해보인다.

아이를 햇빛과 바람 속에서 키우라는 말을 정말 실감한다. 햇빛과 바람 속에 자란 만큼 건강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시 아이들은 천상 '햇빛부족, 바람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햇빛과 바람 속에 커가기에는 세상엔 위험한 것이 너무 많아져버렸고, 할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살면 '햇빛부족(不足)'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햇빛과 바람 충만한 진짜 '햇빛부족(部族)'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뭘까? 그게 요즘 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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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이메일 : tomato_@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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