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ㅁ마.”

 “그럼...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그 유치한 질문에 녀석은 한동안 이렇게 대응했다. 묻는 사람이 아빠든 엄마든, 누구를 앞에 놓느냐에 따라 녀석은 그 사람이 더 좋다고 답했다. “너도 옳고 그도 옳다”는 황희 정승식 대처에 나는 ‘애가 참 속이 깊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렇게 성윤이네 집은 권력 향배의 캐스팅보트를 쥔 녀석의 현명한 처신으로 3권 분립이 유지되고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세력 판도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5개월 동안 녀석을 돌봐주시던 장모님이 새로운 권력의 축으로 등장하셨고, 녀석은 할머니의 내리사랑에 금세 “성윤이는 할머니와 짝꿍”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장모님이 출국하신 직후부터 아내는 그 권력의 공백을 파고들었다. “성윤이의 짝꿍은 엄마”라는 집요한 설득에 녀석이 결국 넘어간 것이다.

 나는 논리적으로 법리적으로 그 명제를 깨뜨리려고 했다. 네 엄마와 나는 혼인신고를 한 법적인 부부라고!



 “성윤아! 엄마는 아빠랑 짝꿍이지. 안 그래?”

 “아니야~, 성윤이는 엄마랑 짝꿍이야.”

 “그럼 아빠는?”

 “아빠는 오류동 할머니(친할머니)랑 짝꿍이야.”

 허걱! 나는 엄마랑 짝꿍 할 테니, 아빠도 아빠 엄마랑 짝꿍 하라고? 녀석의 탁견(또는 궤변)에 난 말문이 막힐 뻔했지만 용기를 내어서 다시 반박해보았다.

 

 “아빠도 성윤이랑 짝꿍 할래.”

 “안돼~. 아빠는 맨날맨날 늦게 오잖아.”

 

 읔! 녀석에게 허를 찔린 나는 아내를 째려보았다.

 

 “당신이 애한테 이렇게 말했어?”

 “아니, 난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아내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쨌든 ‘짝꿍 논쟁’ 완패다. 그래, 너랑 엄마랑 짝꿍 많이 해라.

 

 





fad9b5269bbde5da607bc3a81efefb23. » 아빠의 접근을 극도로 경계하는 쩍벌 포즈



녀석과 아내의 연대로 한순간에 소수파로 전락한 나는 그날부터 거대여당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말문이 트여 수다스러워진 녀석은 요즘, 나를 향한 아내의 잔소리도 따라한다. 녀석이 먹던 물을 함께 마시려고 하면 아내는 “왜 애 컵에 입을 대냐”고 한마디 하고 녀석은 “아빠~ 성윤이 물 마시지 마세요”라고 거드는 식이다. 잔소리 2단 콤보 작렬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아내가 TV 시청용으로 구입했다는 쿠션형 의자에 앉아 뉴스 좀 보려고 했더니 녀석이 쫓아와 “아빠~ 이건 성윤이랑 엄마랑 앉는 거야. 아빠는 앉지 마”라며 쫓아냈다.

 물론 핍박만 있는 건 아니다. 장마철 토사가 무너지는 TV 뉴스를 보며 아내가 “아빠는 방송기자가 아니라서 저런 데는 안 가”라고 말하자 녀석은 “아빠, 저렇게 위험한 데는 가지 마”라고 덧붙인다. 타박 끝에 나온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고맙다, 아들...

 

 아빠보다 더 육아에 헌신하는 엄마는 요즘엔 복지포인트를 이용해 녀석에게 자동차 장난감을 지속적으로 사주고 있다. ‘물량공세’로 굳히기에 들어간 엄마를 ‘맨날맨날 늦게 들어오는’ 아빠가 따라잡기에는 이래저래 역부족인 것 같다. ‘2인자’가 된 현실을 그냥 받아들여야 하나보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태그
첨부
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2851/679/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216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다짜고짜 아슬아슬 성교육, 아들 답이 걸작 imagefile [29] 신순화 2012-03-04 233880
2163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남편이 본 아내의 임신 - (5)성(性)의 도구화 image [1] 김외현 2012-05-14 156142
216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40대 유부녀가 제대로 바람나면? imagefile [11] 신순화 2012-04-10 128518
216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도끼질 하는 남편 imagefile [12] 신순화 2011-10-21 126925
216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엄마,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요!' imagefile [11] 신순화 2012-04-03 94443
2159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4.19kg의 거대아(?) 출산후기 1 imagefile [7] 김미영 2012-03-27 94109
2158 [김연희의 태평육아] 노브라 외출, 사회도 나도 준비가 안됐다 imagefile 김연희 2011-08-19 93464
2157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미안하다 딸아, 겁부터 가르쳐야하는 엄마가 imagefile 양선아 2010-07-23 85298
215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엄마, 딸딸이가 뭐예요?" 엄마와 아들의 `성문답' imagefile [9] 신순화 2013-04-09 80521
215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둘째 만들기 작전, 밤이나 새벽이나 불만 꺼지면 imagefile [15] 홍창욱 2012-02-13 73799
2154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나는 멋진 아내다 imagefile [24] 양선아 2012-05-18 68511
2153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어느날 남편이 말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24] 빈진향 2013-11-25 66163
2152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캐리비안베이의 로망과 실망 imagefile 김미영 2010-08-31 62243
215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에서 며느리살이,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다 imagefile [7] 윤영희 2013-03-18 60031
215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여섯 살 둘째, 잠자리 독립하다!! imagefile [5] 신순화 2012-08-28 58694
2149 [김연희의 태평육아] 대충 키우는 ‘태평육아’, 대충 잘 큰다 imagefile [9] 김연희 2011-10-13 56952
2148 [김연희의 태평육아] 어머...나는 변태인가? imagefile [3] 김연희 2011-10-20 55875
214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10년만의 가족 여행, 여친때문에 안 간다고?? imagefile [11] 신순화 2012-06-11 55770
2146 [최형주의 젖 이야기] 지글지글 끓는 젖 imagefile [5] 최형주 2013-10-25 55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