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01b164f2af433d75fea3bfeadbb85e. » 지난해 가을, 성윤이와 외할머니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고 있는 모습.



   평일 저녁 일찍 귀가하면 녀석은 “아빠”를 연달아 부르며 무척 반갑게 손을 잡아끈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자신과 함께 있던 이모님에게는 신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끙끙 거린다. 아빠 왔으니 할머니 빨리 가시라는 얘기다. 요 녀석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저는 저한테 잘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돼요.”

 여러 가족이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장인·장모님이 올라와계신 주말이라면, 녀석은 아침에 잠이 깨면 엄마·아빠를 낮은 포복으로 타넘고 침대를 내려와 할머니·할아버지가 계시는 거실로 직행한다. 물론 녀석의 선호에서 밀렸다고 섭섭할 건 없다. 오랜만의 늦잠이 너무나 달콤하기가 때문에…. 어쨌든 그동안의 관찰 결과를 종합해, 녀석의 눈으로 어른들의 순위를 냉정하게 매겨보았다.

 

 

 1위. 외할머니

 외할머니는요, 제가 어떤 장난을 치더라도 다 받아주세요. 지난번엔 외할머니가 빨래를 너시는데 저는 그걸 다시 걷어서 세탁기에 집어넣는 장난을 했거든요. 그런 장난에도 외할머니는 제가 예쁘기만 하대요. 며칠 전에 아빠한테도 똑같은 장난을 쳤는데 아빠는 “그런 장난은 하면 안 돼”라고 하셔서 눈물이 났거든요. 그때 외할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났어요. 외할머니가 사주시는 예쁜 옷도 제맘에 쏙 들어요.

 

 2위. 엄마

 우리 엄마는 장난대장이에요. 엄마는 매일 새롭게 저랑 놀아주기 때문에 엄마랑 있으면 심심할 겨를이 없어요. 저를 볼 때마다 “예쁘다, 예쁘다” 해주시는 것도 듣기 좋아요. 그런데 엄마는 제가 계속 놀아달라고 하면 가끔씩 피곤하다며 짜증을 내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순위를 저 밑으로 밀어놓았었는데 요즘은 아빠 얼굴을 통 볼 수가 없어서, ‘비빌 언덕’은 엄마밖에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지네요. 아 참! 최근에 엄마는 <번뇌 리셋>이라는 책을 읽고 “이젠 짜증 내지 않겠다”고 아빠한테 말씀하셨어요. 기대가 커요, 엄마. 

 

 3위. 아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표방하는 우리 아빠는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저를 주인공으로 육아일기도 쓰고 있다고 그러죠 아마. 아빠도 저를 무척 예뻐하시는데 그러면서도 ‘원칙’은 지키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밤마다 더 놀고 싶은데 “시간이 늦었다”며 단호하게 불을 끄는 사람도 아빠죠. 그럴 때마다 저는 울면서 저항하는데 아빠한테는 잘 안 통해요. 그런데 아빠! 장난감 좀 더 사주시면 안돼요? 

 

 4위.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저의 장난감을 책임져주셨어요. 각종 자동차 모형, 지붕카, 러닝홈 등 저의 ‘완소아이템’ 대부분은 외할아버지가 사주신 거죠. 그리고 엄마처럼 즉흥놀이에도 강하시답니다. 엄마 말로는 외할아버지가 장난을 엄청 좋아하신대요. 벌써부터 “요 녀석, 조금만 더 크면 발 거는 건 기본, 각종 장난을 쳐줄 테다”하며 벼르고 계셔서 걱정이에요.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한테서 구름과자 냄새가 많이 나서 제가 싫어할 거라고 추측하시던데, 그 말을 듣고 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해요.

 

 5위. 친할아버지

 친할아버지는 저보다 70년을 더 사셨어요. 세대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데 그래도 저와 친해지시려 노력을 많이 하세요. 저희 집에 오실 때마다 저와 함께 가게에 가서 바나나우유를 사주세요.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꼭 만원을 주시죠. 저는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있으면 슈퍼에서 바나나우유나 ‘초코송이’ 과자를 사먹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덥석 받아놓아요. 친할아버지는 제가 “안 돼”라는 말을 싫어하시는 걸 아시게 된 뒤에는 “안 돼라고 하면 안 되지”라고 다짐하시면서도 제가 위험한 일을 할 때마다 “안 돼”라고 말씀하세요. 친할아버지가 그러실 때마다 속으로는 웃음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눈에는 눈물이 흐르네요.



 6위. 친할머니

 친할머니는 어른들 중에 키가 제일 작으신데요, 저를 업어주는 건 제일 잘하시는 것 같아요. 친할머니 등에 업혀있으면 짜증도 사라지고 잠이 절로 온답니다. 그런데 저와 사촌인 민지 누나를 더 좋아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신경이 좀 쓰여요. 그리고 저 어렸을 때 “애는 좀 울려야 목청이 트인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엄마가 실제로 그렇게 할까봐 긴장됐어요.

 

 7위. 외삼촌

 지난번 엄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과 울릉도 여행을 갔을 때 4시간 배를 타고 속이 울렁거렸는데 그때 외삼촌이 저를 꼭 안아줘서 감동 받았어요. 저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외삼촌인데 외삼촌도 하나밖에 없는 저를 좋아하긴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 총각이라 제 마음을 몰라줄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외국근무를 마치고 들어와 당분간 우리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유심히 관찰해볼 생각이에요.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태그
첨부
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2452/684/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수
16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장난감 열 개? 함께 놀아주세요 imagefile 신순화 2010-12-20 28679
164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산타할아버지 우리집에 일찍 오셨네 imagefile 김태규 2010-12-20 15610
163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있어도 없는 아빠, 없어도 있는 아빠 imagefile 양선아 2010-12-17 31173
162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파리 imagefile 윤아저씨 2010-12-16 29265
16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오빠는 하향, 동생은 상향 평준화 imagefile 신순화 2010-12-14 39331
160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아빠의 자격, 남자의 자격 imagefile 김태규 2010-12-13 17628
159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도 ‘날치기’ imagefile 김미영 2010-12-10 20899
158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남편 애정행각 눈앞에서 보는 느낌일까 imagefile 양선아 2010-12-10 32724
157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시샘하기 imagefile 윤아저씨 2010-12-08 28710
15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언덕 위 마당 넓은 집이 기적처럼 imagefile 신순화 2010-12-07 23483
155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3인 가족'의 마지막 가을 imagefile 김태규 2010-12-06 16471
154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만두달”이라는 딸이 준 선물, 동심 imagefile 양선아 2010-12-03 22439
153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부부싸움 관전평 imagefile 윤아저씨 2010-12-02 41864
152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나중에 자식에게 양육비 소송 안하려면 imagefile 김미영 2010-12-01 33460
15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이들끼리 전철에 모험 싣고 고고씽! imagefile 신순화 2010-11-30 37870
»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어른들은 몰라요, 내 맘대로 랭킹 imagefile 김태규 2010-11-29 13992
149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아이 떼고 첫 출근, 통곡은 없었다 imagefile 김은형 2010-11-25 24824
148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업앤드다운 imagefile 윤아저씨 2010-11-25 32907
14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담배 끊고 좀비 된 남편, 힘 내시라 imagefile 신순화 2010-11-23 19662
146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맞벌이, 아이와 함께 산다는 것 imagefile 김태규 2010-11-22 18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