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도 밥도 그냥 지 맘대로…씻기는 것도 웬만하면 그냥
때가 되면 하겄지, 지가 크는데 진로방해하고 싶지 않아
결혼은 안 했지만, 아기가 생겨 아기를 낳았고, 둘이 사고(!)를 쳤으니까, 둘이 같이 해결해야 될 것 같아서 육아 공동체를 꾸려서 살고 있다. 둘째라면 서러울 질풍노도의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에 아이를 낳았다. 여전히 철이 안 든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상당히 안정기에 접어든 때여서 그런가? 아니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뭘 몰라서 그런가? 남들은 우리를 보면 불안해하는데, 나는 오히려 천하태평이다.
남들은 내가 어떤 철학이나 신념이 강해서 그러는 줄 알지만, 사실은 별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거다. (그럴 듯 하게(?) 봐줘서 고맙기는 하다.^^) 정말 귀찮거나 나 편하자고 그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결혼식을 안 한 건 정말 귀찮은 건 딱 질색이어서 그런 거고, 임신 중에 병원에 거의 안 간 것도 그냥 무심한 성격 때문이다. 임신해서 병원에 딱 2번 갔는데, 한번은 임신 확인하러, 또 한번은 산전 검사하러. 그리고는 낳을 때까지 안 갔다. 노산이라며 초반에 병원에서 강권한 기형아 검사는 그 사실여부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서 안 했고, 후반부에는 나도 건강하고, 태동이 너무나 힘차서 아기가 건강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초음파 검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주위에서는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하지 않느냐,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느냐며 입체 초음파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정말 그게 궁금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 아는 건데...^^)
아기를 낳을 때도 병원에 안 가고 조산원에 간 이유는 순전히 촌스러운(?) 내 취향 때문이었다. 나는 병원도 싫고, 병원침대는 더 싫다. 나는 아프면 방바닥에 엎드려 몸을 웅크리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하늘이 노래진다는 출산의 고통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 하기 싫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나와 아기의 힘으로 해낼수 있다는 믿음, 우리는 그렇게 설계되었다는 것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있었다.
(베이비트리에서 여러 번 밝혔 듯이), 두 돌 넘어까지 젖을 물린 이유는 아이보다는 나 편하자고 한 일이다. 모든 문제가 생겼을 때 젖을 물리면 만사형통, 밖에 쏘다니기 좋아하는 나한테 편해서였다.(지금도 울고 떼 쓸때는 젖 먹일 때가 무척 그립다.) 젖을 끊으려고 애 쓰지 않은 이유는 때가 되면 끊어지겠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고, 일을 그만 둔 이유는 복귀시점에 아이가 아직 젖을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아직 아이를 떼어놓을 준비가 안 되어 있기도 했다. 아직 어린이집을 안 보내고 하루종일 끼고 있는 이유는 조금 있으면 알아서 내 품에서 나갈 것인데, 아직 말도 못하는 아이를 일부러 떼어내고 싶지 않은 마음과, 지금 한참 예쁠 때인데 그걸 좀더 즐겨보려는 계산이 있다. 그 시점은 둘 중에 하나가 원하지 않을 때가 될 것인데, 그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팔뚝이 시큰거릴 정도로 다지고 다진다는 이유식을 건너 뛴 이유는 6개월 무렵부터 우리 밥상을 넘보며 밥을 짚어먹기 시작했고, 어른 밥을 먹어도 똥을 잘 누고 잘 놀길래 괜찮다고 판단해서다.물론 아이와 겸상을 하면서부터는 아이에게 맞춰, 밥은 무르게, 간은 약하게 하고, 두 돌이 될 때까지는 고추가루를 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우리 어른들 입맛도 싱거워져서 손님이 우리집에 오면 다들 싱겁다고 한다. 다만, 잘 먹는다고 잡곡밥을 먹는 걸 놔두었더니, 아이가 변비의 고통을 겪기는 했다.
웬만한 일에 병원에 안 가는 이유는 콧물 흘리면서도 열이 나면서도 잘 먹고 잘 노니까 기다려주느라 그랬다. 아이를 잘 관찰하면, 병원을 가야되는 일인지, 자기 치유력이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좀 더러워도 놔두는 이유는 금방 또 더러워질텐데, 나중에 한번에 제대로 씻기자는 한방주의 때문이었고, 좀 더러운 게 건강에 도움이 되고 귀여워보인다는 내 허무맹랑한 생각 때문이다.(그런데 이게 허무맹랑한 이론이 아닌 게 어제 너무 깨끗한 게 면역력에 안 좋다는 뉴스에서 증명이 되었다!^^)

우리집에 이렇다 할 장난감이 없는 이유는 여기저기 얻은 것들도 있고, 아직까지는 장난감 없이도 잘 놀아서다. 이제 막 입문한 뽀로로 때문에 이제 곧 뽀로로 무엇을 요구하는 것 같기는 한데, 아직까지는 강력한 요구가 없는 관계로 그냥 개기고 있다. 조만간 나도 뽀로로 무엇을 사러 마트에 나갈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30개월 된 지금 핫이슈는 기저귀 떼기다. 여기저기서 ‘이제 기저귀 땔 때 되지 않았느냐?’, '벗겨놔도 되기 때문에 여름이 적기다'라는 말을 듣고 있다. 글쎄, 그 때가 어느 때일까? 보통 언제 기저귀를 떼는 건지 잘 모른다. 하지만 안다고 해도 지금 당장 배변훈련을 시킬 의지가 내게는 없다. ‘뗄 때 되면 뗀다’가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옛날엔 오줌, 똥을 눠도 한참을 뭉개고 있던 아이가 이제는 변을 보면 불편해서 다리를 벌리고 다닌다. 가끔 우리 아이와 생일이 같지만 두 돌이 지나자마자 보란 듯이 대소변을 가린 친구 딸 하윤이를 보면 신기하기는 하다. 그래서 하윤이를 만나고 오면 장난으로 한 두 번 ‘엄마 쉬~’라는 말도 가르치는 시늉을 해보지만, 역시 의지박약, 목적의식이 없는 탓에 그냥 한두 번으로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글쎄 모르겠다. 그냥 모든 건 ‘때가 있다’,’때가 되면 한다’는 게 내 유일한 신념이라면 신념이다. 저 나름의 속도와 흐름이 있을텐데, 가능한 진로방해는 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공부를 하지 않아서 기본 정보 자체가 빈약하고,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당위도 없고, 어떻게 키우고 싶다는 욕심과 기대 같은 게 없다(아, 하나 있다. 밥은 잘 먹었으면 좋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우리 육아공동체 구성원이 서로서로 편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싶다. 내가 지나치게 미래에 대비하지 않는다며 걱정하는 친구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떻게 돈을 벌고 저축해서 집을 넓혀가고, 교육은 어떻게 시키고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난 머리 아픈 걸 싫어하기 때문에 너무 장기적 전망 혹은 미래에 대한 고민 같은 걸 너무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지금 편하고 행복한 게 장땡이다. 지금 행복하면 나중에도 행복하다는 게 또 하나의 근거없는 낙관론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고민이나 절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요즘 잘 놀다가도 떼를 쓰는 이유를 모르겠어 답답하고, 다 나은 줄 알았던 건선이 다시 나타나자 잠시 절망도 했다. 하지만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할 뿐, 고민을 확대재생산하거나 미래의 걱정을 앞당겨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천상 태평하고 게으르고 지극히 이기적인 탓에 어쩌다보니 ‘태평육아’의 창시자로 살고 있다. 앞으로도 태평육아의 길이 순탄했으면 좋겠다. 순전히 내 편의를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