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본래 내년 2월, 아이 돌 때까지 육아휴직을 하려고 했는데 회사 사정으로 좀 일찍 나가게 됐다. ‘엄마, 엄마’ 부르며 울고불고 하기 전에 떨어뜨려 놓는 게 낫다는 주변의 이야기에도 마음이 슬쩍 동했다. 매일 끌어안고도 신문이나 티브이를 보다가 애를 넘어지고 자빠지게 하는 나를 보면서 친정엄마가 “그렇게 대충 보느니 차라리 출근해서 돈이나 벌어라”는 친정엄마의 권유(?)도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
» 첫출근 뒤 벅찬 모자상봉을 기대했으나 쌩하니 엄마를 맞은 아이.
“육아휴직 끝나고 첫 출근해서 화장실 가서 엄청 울었어요.” 베이비트리에서 칼럼을 쓰는 후배 아무개는 육아휴직 뒤 첫 출근날을 이렇게 묘사했다. 10월 쯤 출근을 결정하고 출근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나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11월이 되면서 친정엄마와 함께 아이를 봐줄 도우미 아주머니가 출근하고 나니 좀 있으면 출근이 피부로 다가왔다. 게다가 이번에 출근할 부서는 경제부. 비교적 시간 운영이 자유로웠던 이전의 소속 부서에 비하면 출퇴근 시간도 타이트하고 바빠질 수밖에 없다.
괜히 나간다고 했나? 출근을 일주일 앞두고 머릿 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적응시키기 위해 혼자 방에 들어가 이런 저런 일을 하려고 했지만 귀는 온통 아이가 기어다니는 거실에만 집중됐다. 아휴 동화책 좀 읽어주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왜 안 읽어주지? 계속 저러시면 어떡하지? 애 바보 되는 거 아냐? 걱정으로 안달이 났다.
아직 끊지 못한 수유도 큰 문제였다. 백일 이후 모유수유만 했던 아이에게 11월부터 분유를 다시 먹여보고자 전에 먹였던 분유보다 좋다는 유기농 분유를 사다가 매일 타주고 있으나 ‘차라리 굶어 죽겠다’는 아이의 대쪽 같은 고집에 아까운 분유는 번번이 버려지고 있었다. 아직 돌도 안된 아이에게 젖(분유)를 완전히 끊을 수도 없고 해서 참다참다 오후가 되면 젖을 물리기를 반복했다. 출근하면서 유축을 해 계속 젖을 먹여 볼까 싶어서 한번 유축을 해보니 20분을 해도 100ml가 안되게 쫄쫄쫄,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에라 모르겠다, 넘어갔다.
하지만 가장 마음이 쓰이는 건 역시 아이의 반응. 요즘 들어 엄마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했는지 할머니와 이모가 아무리 잘 해줘도 엄마를 유난히 찾는 아이가 과연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걱정스러웠다. 게다가 이제 막 재롱을 시작해 ‘예쁜 짓 3종 세트’를 자랑하곤 하는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이제 하루의 절반 이상 볼 수 없다니, 회사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살다가 출퇴근에 한시간반씩 걸리는 먼 곳으로 이사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줄여버린 내 선택마저 불쑥불쑥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마침내 돌아온 출근날. 평소 새벽 6시 반이면 일어나는 아이가 7시가 되도 잠에 취해 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시면서 목욕 시간을 좀 땡겼더니 늦은 낮잠까지 자는 바람에 잠자리에 들어가는 시간이 10시 넘어로 늦어져서 그런가보다. 10개월만의 출근이라 나 역시 분주한 마음에 이런 저런 경황도 없이 후다닥 준비를 하고 7시 30분 쯤 집을 나왔다.
오랜만의 출근에다 일하는 부서도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신고 인사를 하다보니 긴장을 해서인지, 아니면 모성이 부족해서 인지(!) 아이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도우미 아주머니뿐 아니라 아이가 잘 따르는 친정엄마가 함께 있으니 ‘나보다 낫겠지’라는 안심이 되어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점심 시간이 되니 전화 한번 걸게 된다. “애기 잘 놀아요? 떼 안쓰고? 분유는 좀 먹어요? 이유식은?” 그냥 안부차 전화했는데 연평도 사태 브리핑에 달려간 기자만큼이나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낸다.
“응 떼는 안쓰는데 웃지도 않고 그냥 입 꼭 다물고 놀고 있어. 얘 분유는 입에도 안댄다. 언제 오니?” 잘 웃지 않는다는 말이 조금 신경 쓰이지만 뭐, 애라고 매일 싱글벙글 할 수 있겠나. 나는 ‘시크한 듯 무심한’(무심한 듯 시크한 아니죠~) 엄마인지라 곧바로 업무 적응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나 오후 4시 바쁜 마감 시간이 서서히 지나가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면서 마치 히치콕의 영화 속 시계가 돌아가듯 점점 초조함이 물밀 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초조함은 젖이 불어 가슴이 묵직해지는 정도와 비례해 또 다른 가슴(마음)을 점점 더 압박해왔다. 이제 아이가 지루해질 때가 됐는데 엄마를 찾지는 않을까? 젖도 못먹었는데 배고프면 어떡하지? 혹시 넘어져서 머리에 혹이라도 났으면 어떡하지?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뭔일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전화를 할까.
6시가 넘고 퇴근시간이 가까워오자 초조함과 그리움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누군가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육아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빼앗기는 것 같아서 뜻밖에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맹렬한 질투심이 생긴다고 하더니만 그 심정 이해가 갔다. 기운없이 축 늘어져 있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 오늘은 또 무슨 예쁜 짓을 했을까? 라는 궁금증까지 안달이 났다. 퇴근을 하고 총알같이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달리는 지하철에서도 뛰고 싶은 심정이 뭔지 알것같았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는 데 10분도 안돼 욕이 나왔다. 서울 경기 버스 운영 시스템에 마구마구 저주를 퍼부었다.
딩동, 딩동 ... “엄마 왔나 보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린다. 혹시 껴안고 통곡의 모자 상봉을 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기대는 ‘아 누구세요?’ 하는 아이의 표정으로 급 잦아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엄마 없이도 의연하게 하루를 보낸 아이가 자랑스러우면서 또 뭔가 극적 상봉에 대한 기대가 깨지니 조금은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이제 출근한지도 열흘이 넘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출근하는 새벽에 자기도 하고 깨기도 한다. 엄마 아빠 나간다고 대성통곡은 안하지만 바쁜 시간에 유난히 안아달라고 떼를 쓰는게 이제 조금씩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퇴근 후에도 때로는 반가워하고 때로는 징징대며 엄마 품을 찾는다. 이 모든 게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기나긴 여정 중의 한 과정이고 어떻게 보면 첫번째 좌절의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잘해내고 있는 우리 아가, 앞으로도 화이팅 하자꾸나~(잘하는 김에 분유도 좀 먹으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