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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이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외치고 있어?"

아이들에게 물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요. 하야하라고도 하구요"


지난 5일 토요일 오후, 우리 다섯 식구는 경기도 군포의 집에서 한 시간 반을 걸려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우리 부부와 기침이 심한 14살 중학생 큰 아이도, 아직 어린 10살 둘째, 7살 셋째까지 모두. 


"왜 그렇게 외치는 걸까?"

"대통령이 엄청 엄청 잘못을 했으니까요"

"무슨 잘못을 했는데?"

"대통령은 국민들의 뜻을 따라서 정치를 해야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가 친한 사람한테 엄청난 권력을 주고, 그 사람들하고만 의논하고 중요한 일도 다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잘못을 했는데도 제대로 사과도 하지않고 책임도 안 지고요. 국민들 완전 무시하고요"

"그래. 그것 말고도 잘못한게 너무 많더라. 그런데도 그걸 잘못이라고 인정안하지..그래서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온거야. 대통령의 잘못에 얼마나 분노하는지, 얼마나 실망했는지, 얼마나 속상하고 힘든지, 알려주는거야. 보여주는거야.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외치면서 들려주는 거야."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광장을 걸었다.


이날 집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없이 다양한 풍경들을 보았다.유모차를 밀고 가면서 구호를 외치는 젊은 부부들, 아이를 무등태우고 행진하는 아빠들,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장성한 자녀들, 친구끼리 같이 참석하진 어르신들,수녀님들, 그리고 청소년과 아이들...

12일 있을 제3차 촛불집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지방거주 학생들을 위한 모금함을 들고 다니며 호소하는 청소년들도 보았고, 대통령 비방 글을 올렸다가 벌금을 선고받은 대학생들을 위한 모금함에 돈을 넣기도 했다.이번 사건을 가장 정직하게, 가장 날카롭게 보도해온 한 방송사의 중계차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았다.

 

거대하고 단호한 물결이었으나 그들은 지나치게 비장하지 않았다는게 좋았다.

우리 시절의 광장이란 결전의 장이고 투쟁과 탄압의 장이었지만 지금의 광장은 정치가 일상이 되어버린 시민들의 연대와 공감, 위로와 격려의 장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를 통해 힘을 받았다.광장에 함께 서는 것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수많은 마음들이 하나가 되고

이 광경을 지켜보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보편적이 되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그 관심을 광장으로 집결하여 표출하게 한 일등 공신이라 하겠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정치참여에 소극적인 사람들까지 한마음이 되어 달려나오게했으니 참담한 지경에도 위로가 된달까.

 

부끄럽고, 어처구니 없는 시절이지만 나는 부모로서,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이 시절을 설명해 줄 책임이 있다. 제대로 안내해 줄 의무가 있음을 매 순간 실감한다. 정치는 어른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치야 말로 우리가 숨쉬는 모든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제일 중요한 영역이 아닌가.


어렸을때부터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우리의 생활과, 우리 자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아이들과 나눠야 한다고 믿는다. "너희들은 공부만 해!" 이런 말들로 오로지 입시만을 위해 눈 가리고 매달리게 하면서 투표권을 얻게 된 후에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다. 선진국일수록 어린 아이들에게도 정치교육을 시킨다. 올바른 유권자가 될 수 있도록 노동자로서의 자기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의 잘못을 감시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에 열심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정치교육에 소홀했다. 마치 아이들은 정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들인것처럼 취급하며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을 두는 학생들을 의혹에 찬 눈으로 보곤 했다. 그러나 박근혜 게이트 덕분에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이제 국민 누구나 그 추악한 부정과 잘못을 지켜보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아이들과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계기다. 아이들과 신문을 같이 읽고, 뉴스를 보고, 더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들을 찾아보며 아이들의 생각을 물어보자. 어린것 같지만 나름대로의 판단과 생각으로 아이들은 지금의 이 상황들을

보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가장 감동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중, 고등학생들의 현실 인식과 자기 표현의 의젓함이다.자유발언대에 거침없이 올라가서 어른들보다 더 날카롭게 현실을 꼬집고 자기들의 생각을 말하는 그 당당하고 힘 있는 모습들은 정말 큰 위로였다.

 

"정부가 잘못할때면 이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광장으로 나설수 있어야해. 연대하고, 참여하고,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을 귀찮아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아.같이 모인 사람들의 하나된 목소리야말로 우리들이 가진 가장 큰 힘이거든..항상 그걸 잊으면 안돼."

 

우린 이런 이야기도 나누며 광장을 걸었다.

오랜 시간 서고, 걷는 것이 힘들법도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집회가 정리될 때엔 같이 쓰레기도 줍고, 타다 남은 촛불들도 모았다.

 

"집회가 끝난 자리는 깨끗하게 정리해야지. 광장에 나온 이유가 이 광장을 더럽히는게 아니니까.. 당당하게 요구하고,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시민들의 자존심이야. 청소하는 사람들한테 폐가 되지 않게 뒷정리를 잘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거든"

 

광장은 살아있는 배움터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당당하게 비판하고 요구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집회가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 되는지도 본다.

험난한 시절에도 아이들은 자란다.

험난한 시절에도 부모는 아이들에게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은 광장이 가장 좋은 배움터다.

국가가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그로인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어쩌면 다시 없는

기회이기도 한 시절이다.

 

아이들과 광장으로 가자.

연대가 무엇인지, 직접 체험하게 하자.

광장을 자신들의 삶 속으로 들여놓으며 살 수 있도록 가르쳐주자.

옳지 않은 일엔 틀렸다고 말하는 법을 보여주자.

 

12일 집회엔 좀 더 일찍 참여하기로 했다.

지금은 광장으로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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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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