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살리기 프로젝트.jpg

 

'돼지가 있는 교실'이라는 책이 있다.
오사카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쿠로다 후미'가 자기 반 아이들과 실제로 학교에서

돼지를 키우면서 겪게 된 일들을 적었다.
학생들에게 생명을 직접 키우면서 지켜보고 돌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생명을 먹어야 하는 일에 대해서, 한 생명을 보살피는 책임을 지는 것에 관하여,

그 생명과의 관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경험해보기를 바라며

시작했던 돼지키우기는 900일간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감당하는 일을, 아이들은 매번 치열하고 열띤

토론을 통해 결정해 간다.

폭우로 돼지 우리가 무너진 것을 힘을 합해 복구하기도 하고, 모두가 휴가를 떠나는

방학에도  당번을 정해 돼지들을 돌보는 책임을 맡는 것에 힘겨워 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P짱'이라고 이름붙인 돼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돼지가 점점 커지면서 큰 고민이 생긴다.


돼지는 자꾸 커지고 돌보는 일은 점점 힘이 들어가는데다 결정적으로 돼지를 처음부터

길렀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자 P짱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만 것이다.

후배들에게 P짱을 계속 돌보게 해야 한다는 의견, 우리가 키우기로 결정했으니 우리가

해결하고 졸업해야 한다는 의견, P짱은 고기가 아니라 친구라는 의견, 돼지는 결국

먹기 위해 기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 돼지를 키우는 일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후배들에게 P짱을 넘기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질문 등 한 생명을 놓고 그 생명에 대한

책임과 관계에 대해서 아이들이 벌이는 토론은 읽어가는 나도 가슴이 죄어올 정도로

치열하고 간절하고 힘겨운 과정 이었다.
결국 P짱은 식육센터에 보내진다. 아이들은 울면서 P짱이 실려가는 트럭을 배웅한다.
먹먹하게 묵직하게 읽어가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다.

마트에서 돼지고기 한 팩을 사면서 우리는 그 돼지를 생명으로 보지 않는다. 가공된 고기는 그저
식재료일 뿐 이다. 그러나 그 돼지가 직접 새끼때부터 길러온 돼지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떤 생명이든 관계가 생겨버리면 감정이 스며든다.

그리고나면 고기 하나 먹는 일도 단순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두 딸이 다니는 학교에는 닭들이 산다.
윤정이가 3학년일때 달걀을 부화해서 병아리를 길러보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생명에 대한 배움 중에 마련된 중요한 기획이었다.
생명을 직접 길러보고 보살피는 일을 통해서 아이들이 생명에 대한 소중함, 책임을 지는 것,

한 생명의 특성을 이해해 가는 일을 배우기 위해 교사와 함께 의논해서

병아리를 길러보자고 결정되고 시작된 일이었다.

부화기가 교실에 등장하고 유정란이 부화기 속에 들어간 후부터 아이들은 매일

학교에 가면 부화기를 살피는 일이 제일 큰 관심사가 되었다.
알에 금이 가고 병아리가 조금씩 부리로 알을 쪼아대는 것을 발견한 후부터 교실엔

엄청난 흥분이 감돌았고 아이들은 숨 죽이며 그 순간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3학년 세 반에서 여러 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났다.

끝내 부화되지 못한 알을 지켜보는 일은 슬프고 힘들었다고 했다.

그 알들은 아이들이 학교 뒷산에 잘 묻어 주었다.

마침내 병아리가 태어나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시작하자 이 병아리들을 돌 볼 공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닭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했고 아버지회 회원들이 힘을 모아 멋진 닭장을 지어주었다.
닭장은 병설유치원과 본관이 이어지는 곳에 자리잡았다.
삐약거리는 병아리들은 전교의 아이들에게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닭장을 들리는 것이 아이들의 일과였다. 그 닭장을 돌보고 사료를 주고 물을 챙겨주는 것에
3학년 아이들도 책임을 맡았다. 방학중에는 학교를 관리하는 아저씨가 주로 챙겼지만 아이들도
한 번씩 들러 닭들을 살피곤 했다.

윤정이도 우리 집에 있는 닭들보다 학교 닭들을 더 챙겼다.
부화기때부터 지켜본 닭들이라 애정이 남달랐던 것이다. 관상용 닭들이라 생김새도 근사했다.
닭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달걀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닭 우는 소리가 요란해서 시끄럽다는 의견들도 종종 나왔지만 닭 우는 소리 들리는 학교를 

윤정이는 사랑했다. 닭들도 학교 구성원의 일부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닭장 때문에 불편하다는 의견들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닭똥 냄새도 너무 많이 나고 닭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 수업에 방해된다는 의견들이 많아지면서
닭장을 없애달라는 요청까지 나온 모양이다.
반이 두개 뿐인데 5학년 2반에서도 닭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닭장을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윤정이네 반은 닭장을 없애면 안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아이들은 닭장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왜 닭들을 계속 살리는 것이 옳은지 다른 학년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는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반 아이들 모두가 닭들을 계속 살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글을 쓰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했다.
내용과 발표가 우수한 학생들 열 두명을 선발했고 그 아이들이 각자 쓴 글의 수준과

발표 능력에 따라 학년을 나누어 들어가 설득을 하기로 했단다.
윤정이도 선발이 되어서 3학년 교실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오늘 아침 두 딸들과 학교까지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8년 전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오면서 부터 닭을 길렀던 우리 가족은 닭들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닭 똥은 물에 닿으면 냄새가 지독해진다는 것을 몰랐던 때는 하루 종일 진동하는
닭똥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당장 닭장을 없애자고 남편을 들들 볶기도 했다.
알아보니 닭똥은 물에 닿지만 않으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남편은
 대대적으로 닭장을 보수해서 엉성하게 만들었던 지붕을 손보고 방수천까지 동원해서 비가 와도
닭장 안으로 들이치지 않게 했다. 장마철이나 태풍, 폭우가 오는 날엔 닭장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수고가 생겼지만 닭들과 계속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일 이었다.
그런 경험들을 윤정이는 잘 알고 있었다.
3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학교에도 닭장에 빗물이 들이치지 않도록
고쳐달라고 요청하겠다고 했다. 냄새가 나지 않도록 닭장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도 우리가 하겠다고 , 그런 얘기들을 들려주며 동생들을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교문 앞에서 딸들과 헤어져 혼자 돌아오는데 마음이 뿌듯했다.
아이들이 참 좋은 배움을 하고 있구나.. 고마운 마음이 차 올랐다.

초, 중, 고 시절 내내 나도 학교 간부를 맡았었고 학생회 활동을 했지만

실제로 우리들이 의견을 모아 학교에 요청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었다.

요청을 해도 그 뿐이고 받아들여지는 일은 드물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생회 회의에서는 기껏 청소를 더 잘 하자거나, 유리창이 지저분하니 더 열심히

닦을 필요가 있다거나 학력을 더 올려야 한다는 의미없는 이야기들만 오가곤 했다.
이번 일 처럼 닭장을 짓거나, 그 닭장이 어느날 없어지는 일 등에 학생들 의견이

개입되는 일 같은 것은 없었다. 학교에서 다 결정하고 진행했다. 우리는 늘 들러리였다.

윤정이가 다니는 학교는 다르다.
학생들은 여러가지 다양한 활동들을 직접 기획해서 진행한다.
학교 행사에 대해서 아이들은 직접 의견을 내고 그 의견들은 공개가 되어 모두가 볼 수 있고
그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대답도 다 공개 된다.
학교 운영에 대한 중요한 토론회에도 물론 학생 대표들이 참여해서 의견을 내 놓는다.
이번에 3학년에서는 학교 화장실 표시에서 남자화장실 파란색, 여자 화장실 빨간색을

바꿔 달라는 의견이 나왔단다. 남자를 파랑, 여자를 빨강으로 정해 놓은 것도

남녀 차별 아니냐는 것이다. 양한 색으로 표지판을 바꿔달라는 의견

학교에서는 좋은 의견이라고 받아주셨단다.

어떤 색으로 바뀔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하루에 학원을 대여섯개 다니며 성적을 올리는 일 보다 아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배움은 이런 것들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기들의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을 위해 애써보고 그 결과를 감당해 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참여하는 것 만큼 나를 둘러싼 공간과 조건들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해 가며 크는 아이들이라야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살아가는 내내 제 힘과 목소리를 보태는 건강한 시민이 될 수 있다.

윤정이네 학교 닭들은 어떻게 될까. 전교생 설득을 맡아 교실마다 들어가 설명을 하게 될 5학년 1반 열두 명의 학생들 활약이 몹시 기대된다. 3학년 동생들을 맡은 윤정이의 모습도 즐겁게 지켜보고 있다. 윤정이네 반의 닭 살리기 프로젝트...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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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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