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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산다는 말을 요즘만큼 실감하는 적이 없다.
그야말로 매일이 역사다.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서로 손을 잡고, 비핵화와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선언을 하고
남북 갈등의 상징이었던 비무장지대 확성기가 철거가 되고, 북미 회담이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낱낱이 세계사를 바꿀 만한 엄청난 일들이 매일 벌어지는 날들이 되고 있다.

돌이이켜보면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촛불의 물결이나,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를
들었던 순간이나, 평창올림픽에서 남과 북이 공동입장하고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혼신의 투혼을
발휘하던 장면도 하나같이 눈물겹고 감동적이었지만  남 북 정상이 판문점 군사 경계선에서 두 손을
맞잡는 순간은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마주한 가장 놀랍고 벅찬 장면이었다.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다가 그 순간 울음이 터져나왔다.
눈물이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울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마치 오랜 세월 막아 놓았던 둑이 터져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 처럼 끅 끅 숨을 막으며
울음은 저 속에서부터 치솟아 올랐다.
다리가 푹 꺾여서 텔레비젼이 놓여 있는 탁자를 붙잡고 주저앉아 울었다.
벅차다.. 라던가, 감격스럽다.. 같은 정도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토록 강렬한 감정이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것에 스스로 놀라며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한걸음이면 건너갔다가, 금세 다시 건너올 수도 있는 그 보잘것없는 시멘트 블럭을 사이에 두고
그 긴세월 흘려온 눈물과 고통과 희생의 역사를 내가 감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조차 없으면서
뭐랄까.. 그냥 한순간에 넘나들 수 도 있는 경계선의 그 아무것도 아님이 너무나 기막혀서,
이런 날이 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는 것이 아프고 아파서 하염없이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남북 정상이 만나 늦은 밤 헤어지기 까지의 열두시간 동안 우리 모두를 비롯한 전세계가 함께
지켜보는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이 뿌리에서부터 변했다. 모두가 그것을 보았고 같이 느꼈다.
북한의 지도자가 베일에 가린 전쟁광이 아닌, 대화가 통하는 인간이라는 느낌,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두가 노력하면 한반도에 평화가 가능하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는 안다.
남과 북의 평화가 그렇게 쉽게 올 수 없다는 것을...
판문점 선언이 실현되기 까지 수많은 과정과 절차과 시간이 필요하며 그 시간 동안 매 순간
남북 서로에 대한 신뢰가 시험대에 오르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본다.
적어도 남과 북이 만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대화를 시작하고, 이산가족이 상봉이 결정되고, 닫혔던
개성공단에 연락사무소가 설치되리라는 것과, 남북의 철도를 연결하려는 계획이 차근차근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의심보다는 응원과, 비관보다는 낙관으로 불안과 공포를 밀어낸 자리에 희망을 열심히 들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2.jpg

 

남북 정상회담 다음날 나온 한겨레 토요판은 무려 신문의 첫장과 마지막장을 한장의 사진으로
연결한 놀랄만한 편집으로 이날의 감격과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촛불집회, 박근혜 파면, 평창 올림픽 남북 공동입장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신문들과 함께
이날의 신문도 잘 보관하기로 했다.

 

남북정상회담3.jpg

 

한 한달쯤은 거실벽에 붙여 놓았다가 말이다. ^^
 

남북정상회담4.jpg

1970년에 태어난 나는 '똘이장군'세대다.
북한의 김일성을 혹달린 돼지로 희화한 만화 영화를 단체로 관람하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간첩, 반공, 별공, 빨갱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커 가는 동안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키우도록 세뇌되었고 그런 교육속에서 북한은 늘 때려 부숴야 할 적 이었다.
그런 우리 세대와 지금 내 아이들의 세대는 너무나 다르다.

북한 지도자를 괴물이라고 배우며 커온 나와, 북한 지도자의 모습과 목소리를 직접 보고 들으며
북한의 지도가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고 우리의 대통령과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본 내 아이들은
분명 북한에 대한 다른 감수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북한이 더 이상 전쟁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발전과 평화를 위해 함께 가야할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을 보며 커가고 있는 세대들의 새로운 감수성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자국의 번영과 민족주의가 더욱 중요해지는 세계 정세속에서 통역이 필요없이 바로 통할 수 있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적대시하며 방어하고 공격하기 위한 무기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는 것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남한의 기술과 북한의 자원이 교류되고, 한반도 전체를 연결하는 철도가 건설되고, 그 철도를 따라
섬처럼 고립되었던 남한이 대륙의 일부가 되어 세계로 뻗어가게 된다면 내 아이들의 미래는 더 많은
기회와 모험이 생길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제 물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실처럼 가느다란 물길일지 몰라도, 한번 길을 잡은 물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실개천이 시내가 되고, ,개울이 되고, 강으로 바다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지켜보고'돕는 것은
이제 우리의 책임이 되었다. 내 아이들을 위해서, 전 세계를 위해서 우리는 평화로 가야한다.
이미 가고 있다.

우리에게 마침내 이런 날이 왔다.
그냥 온 것이 아니라 구비구비 우리가 만들어 온 길이다.
앞으로 더 많이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길이다.
잘 하고 싶고 잘 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평화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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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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