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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이룸이는 글씨 쓰기를 좋아한다.
세 살 위인 언니와 일곱 살 많은 오빠가 글씨 쓰는게 부러워서 세 살때부터 연필을 잡고
글씨 쓰는 연습을 해 왔던 막내였다. 덕분에 한글도 빨리 뗐다.
어린 시절을 친구보다 여동생과 훨씬 더 많이 보낸 언니와 틈만 나면 학교 놀이를 하면서
일찌감치 받아쓰기 훈련을 받아왔고 스스로도 욕심이 많아 언제나 어디에나 글씨를 쓰면서 놀았다.
글씨 쓰기를 좋아하는 막내는 저 혼자 소꼽놀이를 하면서도 식당 메뉴판이며, 음식 소개글이며
홍보문을 만들어 집안에 붙여놓고, 내게 초대장을 만들어 가져오면서 놀았다. 아무때나
사랑한다는 편지와 카드, 쪽지를 안겨주기도 한다. 연애 할때도 받아보지 못했던 달달한 편지들이
막내 덕분에 책상에 쌓여간다. 그 모두를 영원히 간직해달라고 해서 보관하다보니 파일철이
넘친다. 슬쩍 슬쩍 막내 몰래 처분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말 복에 겨운 소리다.

이룸이는 요즘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다. 아홉살이 되면서부터 일기도 한바닥씩 줄줄 써내려 가더니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는 것이다. 계기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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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나는 '김동식'작가의 '회색인간'을 읽었다. 한겨레에 실린 그이의 인터뷰 기사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저자는 중학교때 학교를 그만두고 노동 현장으로 뛰어든다. 이런 저런 일들을 전전하다가 10년 전부터 성수동의 공장에서
주물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공장과 집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 종일  뜨거운 액체를 구멍안에
붓는 단순 작업을 반복하며 무료한 시간을 상상력으로 버텨낸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인터넷에 들어가 '오늘의 유머'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읽는 것. 그러다가 자신도 글이 쓰고 싶어졌다. 네이버 지식에 물어가며 글쓰는 법을 익혀간다. 일 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소설 내용을 상상했다가 퇴근후 '오늘의 유머 - 공포물'사이트에 게시를 하면 하나 둘씩 달리는 댓글이 좋았단다. 평생 읽은 책이라곤 열 권도 안 되고, 정식으로 글 쓰기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고 다양한 경험과 여행이나 많은 친구를 사귀어 본 일도 없이 일찍부터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해 온 그는 노동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하루에 여섯 일곱 시간씩 소설을 썼다. 그렇게 300편이 넘는 소설이 완성 되었고 그의 소설을 알아본 독자들과 편집자들에 의해 소설집으로 발간되기에 이른다.

'회색인간'은 그중 가장 먼저 발매된 소설집이다. 단숨에 읽었고, 정말 감동했다. 짧은 이야기 한 편 마다 기발한 상상력, 재기넘치는 전개, 깜짝 놀랄만한 반전속에 머리를 탁 치는 깨달음을 주는데 한 번 잡으면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었다. 나는 열광해서 읽었고, 작가의 삶에 감동했고, 이 책을 아이들에게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해주었다. 필규는 하루만에 읽어버렸고 정말 재미있었다고 했다. 윤정이 이룸이는 그냥 넘겨보며 눈으로만 봤지만 내 얘기를 들으면서 글 쓴 사람이 정말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엄마, 나도 그 '회색인간' 쓴 사람처럼 글을 써 볼래요. 소설을 써야겠어요"
이룸이가 이렇게 말한 것은 어제 밤 이었다. 뉴스에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건성으로
"그래, 써봐. 상상력만 있으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어. 넌 상상력 좋잖아." 대꾸해주었다.
그러더니 이룸이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 30여분 만에 첫 소설을 썼다며 글씨로 가득한 종이 두장을 들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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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 1 호
                        〈 작가란 꿈도 좋은 걸? 〉                      
                                                                               글 : 최 이 룸

- 네덜란드에 한 사람이 살았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포러였다.
제임스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었고 집 형편이 안 좋아서 화가란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좀 더 작은 꿈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도 달래도 책도 읽고 싶어서 도서관을 갔다.
꿈에 관한 책을 많이 찾아봤지만 거의 다 화가
에 관한 꿈 책이었다. 그때 발견한 책 하나가
너무 괜찮은 꿈에 관한 책이었다. 무슨 꿈 책이었냐면
바로 "작가"라는 책 이었다. 그 책의 제목인 "작
가"라는 글씨에 바로 유명한 작가들이 떠올랐다.
조앤 롤링처럼 말이다. 화가를 포기하고 난 후 요리사, 피아니스트,
가수, 기타리스트 등등 많이 생각해봤지만 작가라
는 것은 눈꼽만큼도 생각을 못했다. 이미 컴퓨터
와 프린터, 종이, 펜 정도는 이미 다 있다. 전 재산이
200만원인 나는 작가라는 꿈을 꼭 해내고 싶었다.
- 1장 -

제임스는 지금부터 "절약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돈을 절약하며 세상을 뒤돌아보며 종이, 펜을
맨날 어딜갈때 마다 갔고 가서 생각나는 대로
소설을 만들고 있다. 제임스는 작가라는 꿈을 소중히
여기고 즐겁게 글을 쓰고 있다. 드디어 책 한 권을
냈는데 제목은 "북극곰의 빙산은 녹이지말고 엄마 아빠의 마음을
녹여요"라는 책이였는데 내용은 북극곰의 빙산
을 녹이지 않고 효도로 부모님의 마음을 사랑과 효도로
녹이자!라는 뜻을 가진 어린이 전용 책이었다.
그 책을 낸 후로 조금씩 유명해졌다. 제임스는
뿌듯했고 많이 지원을 받아 부모님께 책대로
효도를 드리고 돈도 드려서 가족은 "행복부자"가
되었다. 아직도 제임스 포러네 가족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 2장 -

"야아, 훌륭하다, 멋져. 완전 한 편의 소설이네. 기승전결도 있고 교훈도 있고.."
나는 막내를 안고 칭찬을 듬뿍 해 주었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북극곰의 빙산은 녹이지말고 엄마 아빠의 마음을 녹여요'라는 제목은 어떻게 생각해
낸거야? 너무 기발한데?"
"헤헤, 그건요. 엄마 녹색당에서 받아온 스티커에 '빙산은 녹이지말고 애인 마음을 녹여보세요'
라고 써 있는거 보고 힌트를 얻어 응용한거예요"
"아하하. 그렇구나. 그것도 대단해"
이룸이는 보이는 모든 것에서 저만의 아이디어를 얻어낸다. 그것도 참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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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기대하는 대로 커주지 않는 것에 숱하게 좌절하고 실망했었다.
다른건 몰라도 그래도 내가 글 쓰는 사람인데 설마 글짓기는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품었었지만 아들은 글짓기가 아니라 글씨 쓰는 자체를 질색했었다.
그렇게 숱한 책을 같이 읽었고,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나오는 것도 다양하려니..
기대를 했었지만 어쩌다 써내는 일기나, 감상문같은 것을 보면 정말이지 기가 막힐만큼 단순했다.
머리로 쓰고 싶은 내용을 상상하고 그것을 풀어내는데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저 레고조립이나
SF영화나, 책과 만화, 그리고 노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이었다.

윤정이는 오빠에 비하면 정말 훌륭했다. 이룸이 나이 무렵엔 작가 선언을 하고 글을 써대기도 했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든 큰 딸은 액체괴물 만들기와 일러스트, 아이돌과 멋내기에 관심을 둘 뿐
글 쓰는 일엔 시들해진지 오래다.

그런데 드디어 막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므로 물론 제 마음이 이끄는 만큼 가겠지만 제 상상력에 자부심을 느끼며 제가 쓰는 글을 좋아하고, 그 글을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것이 큰 기쁨인 막내를 보면 오래 체념해왔던 기대가 또 스멀스멀 생겨난다. 아니다, 다 욕심이다. 아무러면 어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그 결과물을 가족과 나누는 것이 행복한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나이 차가 많은 오빠 언니 밑에서 자라면서 늘 자기보다 뭐든 더 일찍 배우고 더 잘 하는 사람들만큼 해내고 싶은 마음,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늘 막내를 자극한다.
글 쓰는 엄마과 책벌레인 오빠, 말 잘하는 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다양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도 영향을 줄 것이다. 공예 교실과 우쿨렐레 배우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말고는 다니는
학원 같은 것도 없다. 남는 시간은 맘대로 놀며 지내는데 주로 나와 언니와 시간을 보낸다.


글 쓰기든 만들기든 재능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프로그램으로 수업으로 연결짓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제 마음이 가는대로 해보며 즐긴다. 억지로 하는 것은 없다.
이룸이 나이에는 이런 자유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룸이는 소설가가 되고 싶단다. 얼마전까지는 화가였다.
어린 화가가 그려서 선물해준 그림들을 듬뿍 가지고 있는데 이젠 어린 작가의 소설까지
소장하게 생겼다. 나는 책 한권 묶어내기가 이렇게나 더딘데 어린 작가는 매일 쑥쑥 크는
대나무처럼 생기 넘치는 작품들을 쏟아낼 모양이다. 아..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첫 아이, 둘째 아이와는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막내.
아이 셋을 낳아서 정말 다행이다.
아이 하나는 우주 하나.
나는 그런 우주를 셋이나 두고 있다.

감사합니다. 더 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창 밖을 보며 소리쳤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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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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