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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기숙사로 들어간 이후, 매주 토요일은 아들이 오는 날이 되었다.

아들은 토요일 1시쯤 여행가방 가득 일주일치 빨래를 채워서 집으로 들어선다.

남편은 덤덤한 척 하지만 나는 현관까지 나가서 아들을 오래 오래 안아보고서야

놓아준다. 매일 보고싶고, 매일 생각하는 아들이다.


아들이 오면 제일먼저 라면을 끓인다.

기숙사에서 라면 먹을 일이 없는 아들은 집에 오면 라면부터 찾기 때문이다.

제일 좋아하는 '자연드림'의 비빔면을 세개나 한꺼번에 삶아달라고 야단이다.

집에서 지낼때는 일주일에 서너번도 먹어대던 라면이니 얼마나 먹고 싶었을지

알기에 군말없이 세개 삶아낸다.

면을 삶고 사과를 넉넉하게 채 썰어 내어주면 새콤달콤 비빔면이 된다.

여기에 구운 김을 빠뜨리면 안된다. 비빔면을 구운 김에 싸 먹는 것을 아들이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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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푼 가득한 비빔면을 김에 싸서 먹으면서 토요일자 신문을 읽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여느날의 평범한 주말 아침 같다.

아들이 라면을 먹는 사이 부지런히 세탁기를 돌린다. 가까스로 하루 말려서

일요일 저녁에는 다시 가방을 챙겨야 하니 시간이 없다.


아들의 귀환3.jpg


라면을 그득히 먹고 나면 컴퓨터 앞에 앉는다.  5일동안 하지 못했던 게임을 즐기는

행복한 시간이다.  5일간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을 핸드폰도 동시 출격한다.

한 번 컴퓨터 앞에 앉으면 두 세시간이 훌쩍 지나지만 모른척 해준다.

그 나이의 청소년에 비해서 게임 시간이 현저하게 적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피시방을 가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있는 집에서 두세시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것이

뭐가 나쁜가. 

게임이 끝나면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 삼매경에 빠진다.

그것도 모른척 해준다. 보통의 청소년들이라면 제 2의 피부처럼 손에서 놓지않는 핸드폰을

5일만에 만지는데 그정도는 봐 줘야지.

그래도 밤 12시에는 핸드폰을 부모에게 맡겨야 한다는 규칙을 군말없이 지키고 있는 녀석이다.

대견하지 않은가.


때는 바야흐로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라 남편과 나는 주말 내내 밭에 나가 일 했다.

마른 풀을 걷고, 집 안팎의 웃자란 나뭇가지들을 잘라내고, 밭을 갈고, 퇴비를 뿌리고,

돼지감자를 캐고,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느라 고단했다.

장성한 아들이 함께 도와준다면 훨씬 수월하겠지만 엿새만에 집에 들어온 아들에게

농삿일까지 돕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아들은 학교에서 자기 몫의 밭을 관리하고 있다. 집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쉬게 하고 싶다.


일요일엔 아들이 맘 놓고 늦잠을 자는 날이다.

기숙사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가 집에 오면 하루는 마음껏 풀어져서 지내게 한다.

일 하느라 바빠서 깨우지 않았더니 녀석은 정말이지 오후 4시까지 자고 일어났다.

주전부리 조금 하다가 저녁 한끼 제대로 먹었다. 그래도 좋단다.


아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후로 일요일 저녁 메뉴는 삼겹살로 결정되었다.

고기 반찬이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녀석이라 집에 올때는

무척이나 고기에 굶주려 있다. 한 두끼만이라도 배 부르게 좋아하는 고기를

먹게 해 주고 싶어 주말마다 고기를 굽는다. 덕분에 딸들이 아주 신나 한다.


남편은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와서 게임이 끝나면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게

속상한 모양이다. 밖에 나와 부모 일도 돕고, 거실에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남편의 말을 일축했다.

아들은 학교에서 많은 일들을 해 낸다. 여러사람과 공동생활하며 제가 맡은 역할을

해 내야 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과제도 만만치 않다는데 그 모든걸 부모의 확인이나 관리없이 알아서 하고 있다.

필요한 학용품이 있으면 모아 놓은 용돈으로 안양 시내에 나가서 사 오기도 하고

아들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상설 아나바다 매장에서 2천원짜리 티셔츠를 사 입고

오기도 했다. 일상에서 제게 필요한 많은 일들을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있다.

그것만해도 그 나이의 청소년에 비추어 대견하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의 역할은 그저 아들이 집에 왔을때 맛있는 음식 해주고 충분히 쉬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들이 가족들에게 무심한 것도 아니고 단지 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집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런 시간 보내는 거 나쁘지 않다.

그보다 더 바라는 건 욕심이다.


나는 그저 대견하고 기특하다.

그랗게 엄마 떨어지기 싫어하던 어린 아이가, 심지어는 막내 낳고 아빠랑 단 둘이 간

설날 시댁에서도 하룻밤도 자지 못하고 그 밤에 기어코 돌아올 정도로 엄마를 찾던

녀석이 어느새 이렇게 커서 집을 떠나 생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요일 저녁이면 마른 빨래를 챙겨 저 혼자 가방을 챙기는것도 대견하고, 여전히 자기 전에는

엄마 아빠에게 뽀뽀를 해 주는 것도 고맙다. 나랑 그렇게 싸우며 지냈는데

일주일에 이틀을 함께 지내게 된 후 부터는 싸울일이 없다. 싸울 시간도 아깝다.

그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에도 빠듯하다.

아마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우린 변함없이 사소한 것들로 쉼 없이 부딪혔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이에는 서로가 궁금할 거리와 공간, 시간이 있다.

어쩌면 사춘기 자녀와 부모사이에 이런 것들이 필요한게 아닐까.

너무 간섭하지 않고, 너무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들 동안 아들은 오히려 제 몫을 더

잘 하고 있다. 나 역시 그 시간동안 걱정이나 원망을 품을 새도 없이 오로지

그리움만 잔뜩 키워가며 아들을 기다렸다 만난다.


아들과 나는 만 15년 동안 지겨보도록 끈끈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충분히 사랑했고 사랑을 나눴다.
아들도, 나도 안다.
이젠 이 정도의 거리가 좋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워졌을 가족의 사랑, 부모의 사랑을
품고 아들은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서 제 삶을 살고 있다.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다.
더붙어 지냈다면 어쩌면 저 혼자 자라는 시간이 더뎠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때 우리 사이엔 소중한 거리가 생겼고, 이 거리가 서로를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하고
있으니 다 고마울 뿐이다.


아들이 돌아오는 토요일 밤마다 오래 잊고 있던 가족 모임을 다시 열기로 했다.

서로의 일주일을 이야기하고, 듣는 시간이다. 떨어져 지내도 우린 여전히 한 가족이고

늘 서로가 궁금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끈끈하게 맺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아들은 다시 묵직한 여행가방을 끌고 전철역에서 나와 헤어졌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공부하고, 일하고, 놀면서 매일 매 순간

쑥쑥 크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아들을 그리워하며 일주일을 씩씩하게 살아간다.


사춘기 아들을 만날 수 있는 주말..

곧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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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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