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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이었다.

담임은 자주 여학생들 중 한명을 방과후에 남게 해서 잔일을 시키곤 했다.

출석부를 정리하거나, 채점을 하게 하는 따위의 일 이었다.

방과후에 남아서 선생님 일을 돕는 것은 선생님에게 특별한 귀여움을 받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으므로  뽑히기를 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발육이 빨랐던 동기 00이를 담임은 자주 남게 했다.

방과후에 운동장에서 놀다가 교실 어귀를 지나치다가  00이가 담임 무릎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여학생들끼리 모여 툴툴거렸다. 선생님은 00이만 이뻐한다는 불평이었다.


그날 담임은 나를 남게 했다.

나는 우쭐한 기분으로 담임이 하고 있던 일을 도왔다.

해가 지면서 설핏한 어스름이 깔리던 늦은 오후의 교실엔 담임과 나 뿐 이었다.

복도도 고요했다.

시킨 일을 내가 마치자 담임이 나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자연스럽게 뒤에서 나를 감싸 안는 모양새가 되었다.

무슨 말인가를 건네며 담임은 자신의 손을 내 옷 속으로 밀어 넣었다.

차가운 손이 아랫배에 닿을때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선생님 손이 차가워요.. 라고 내가 말 한 것 같다.

손이 차면 마음은 따듯하대... 담임이 이런 말을 들려준 것도 같다.

담임 손이 팬티 속으로 들어왔을때 나는 벌떡 일어섰다.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부끄러운 마음이 강했다.

늦어서 집에 갈래요..

이런 말을 하고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왔다.


내가 자랄때 불쾌한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어른들에게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라는

교육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르라는

가르침만 있었을 뿐 이다. 성추행, 성폭행, 강간 같은 말 뜻도 몰랐다.

가르쳐 주는 어른들은 없었다.


그때 내가 당했던 일이 성추행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스무살 넘어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여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배우던 '청년 심리학'시간에 자신이 겪었던

불쾌한 성적 경험에 대해서 조별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 경험이

없는 동기가 거의 없었다. 어릴때 한 마을에 살던 아저씨한테, 사촌 오빠에게서,

심지어는 작은 아버지나  큰 아버지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동기들도

있었다. 전철안에서, 길거리에서, 가게에서, 버스안에서, 학원에서 무수히

당해온 수많은 상처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린 서로의 고백에 고무되어 더욱 솔직해졌고, 거침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수업시간이 끝나고 교수님이 나간 후에도 얘기는 이어졌다.

그때 타인의 경험속에서 내가 겪은 일을 보았다. 비로소 담임이 내게 한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기가 막혔고, 어이가 없었다.

그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해, 선생님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워온 담임에 대한 분노로 나는 오래 상처받았다.

대학때 초등 동창생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담임 욕을 하며 성토를 하기도

했지만 그 뿐 이었다.  슬그머니 담임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않는 것이

우리 끼리의 불문율이 되었다.


그 날의 일에 대해서 새로운 분노를 느끼게 된 것은 내가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아

그 딸들이 자라 학교에 가게 된 후 였다. 학교를 좋아하고, 담임 선생님을 좋아하는

딸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쓰려왔다.

내가 자랐던 때 보다 학교 시설은 더 좋아졌지만 학력 위주의 문화는 여전히 공고했고

교사에 의한 성범죄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요즘은 성의식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어 타인의 불쾌한 신체접촉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고, 성추행과 성폭행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하다못해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아이들 귀엽다고 쓰다듬고 엉덩이 두드려 주는 것 조차 어려워진 분위기가 되었다.

그래서 성범죄는 줄어들었나?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안전한가?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의 헐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열풍이 연일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연극계의 거물이 추악하게 몰락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제간에, 직장 상사에게,

모임의 선배나 어른에게 당해왔던 성범죄들이 하나 하나 드러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겪은 상처들도 새삼 욱신 거렸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여자들에게 성범죄는 몇몇 운 없는 여자들이 겪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어디나 널려있고, 어디서나 마주치는 일상이다.

직장 회식 자리에서, 전철이나 버스안에서, 사제간에, 모임의 선배와 어른들에게

상사들에게, 동네에서, 하다못해 대낮의 길거리에서도 성추행은 일어난다.

버젓하고 당당하게 일어난다.

이윤택들은 어디에나 있다. 있었다. 살아오면서 무수히 겪고, 듣고, 봤다.


어떤이들은 미투 따위, 이제 지겹다고 한다.

여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균실인가.. 라고 묻는 남자도 있었다.

성범죄가 마치 자연스럽게 함께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이익균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그 질문은 성범죄가 없는 곳이 없다는, 그런 곳을 찾기 위해서는 무균실을 소환해야

할 것이라는 뜻과 같다.


단언컨데 나는 미투 열풍이 지겹지 않다. 1년 내내 고백이 이어지고, 수사와 성토가

이어진다 한들 지겹지 않을 것이다. 오래 곪아왔던 것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오래 숨 죽여 왔던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겨울 수 있을까. 사방에서

비로소 숨 쉬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애틋하고 장하고 고마울 뿐 이다.

그 고백과 증언에 힘 입어 나 역시 35년간 마음속에 묻어왔던 이름을 소리내어

말 해 볼 용기를 얻었다.

그 많은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와서 새삼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해자를 명명하는 것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잊지 않는다. 그 일의 의미를 알고 난 후 느낀 분노와 슬픔도

고스란하다. 내가 겪은 일들을 내 딸들은 겪지 않기를 바라고, 나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이 용기를 내어 가해자를 명명하기를 바란다.

이름과 행위가 드러나는 것은 힘이 세다. 어두웠던 곳에 빛이 밝혀지는 순간

거기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35년이나 흐른 지금 인천 부평에 있는 부흥국민학교 6학년 14반 담임이었던

 '유민열'을 성범죄자로 고발한다. 나 뿐만 아니라 내 많은 동기 여학생들을 추악하게

성추행한 파렴치범으로 고발한다.

우리 외에 오랜기간 교단에 있으면서 얼마나 더 많은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 수 없다.

지금도 교직에 있는지, 혹은 퇴직해 자연인으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당신과 그날의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내 글이 당신 귀에 닿지 않을지라도 나는 당신의 범죄를 감추지 않고, 내가 겪은 안 좋은

경험 정도로 치부하지 않겠다.

모든 성범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교단에서 사제간에 일어나는 일은 더 없이

간악하다. 어린 제자들의 애정과 헌신을 욕망의 도구로 이용한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내 큰 딸이 그 시절 나 만큼 자랐다.

부끄러움 없이 이 글을 보여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당신을 고발한다.


더 많은 미투가 이어져야 한다.

마을에서, 소모임에서,  직장에서, 수많은 다양한 공동체에서 상처입은 마음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드러내서 말할 수 있을때 우리에게 힘이 생긴다.

우리 자신을 돌보고,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는 지혜들을 모을 수 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지금도 싸우고 있는 수많은 미투의 당사자들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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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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