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jpg


기온이 뚝 떨어졌다.

따듯한 웃옷에 장갑까지 챙겨 아이들을 등교 시키고 오는 동안에도

찬 바람이 매서웠다.

잔뜩 움츠린채 현관문을 열었을때 훅 끼치는 따스한 온기..

아.. 역시 집이 좋구나... 생각하면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지진때문에 균열이 간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 시간에도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을 포항 시민들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어느날 느닷없이 아무런 준비도, 대비도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집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는 상황이란 얼마나 끔찍할까.  당장 입을 옷가지며 바로 써야 하는 물건

하나 챙길 틈도 없이 흔들리는 집에서 일단 빠져나오는 일에 급급했을 뿐인데

금이 가고, 무너지기 시작한 집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랫동안 지진은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지 우리의 일이 아니었다.

헐리우드 영화속의 단골 소재인 스펙타클한 재난 영화에서 지진은 고속도로를

휘어지게 하고, 빌딩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땅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그럴듯한 볼거리 이기도 했다.

스크린이나, 바다건너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지진은 그저 놀라거나, 동정하거나

구경만하면 되었다. 그 사람들은 안됐지만 내 일상은 어제와 같이 흘러갈테니

나야 내 삶을 그냥 변함없이 살아가면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흔들렸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벽이 떨어져 내리고, 집 앞에 세워둔 차가 떨어져 내린

벽돌에 찌그러지고, 집 벽에 금이가고, 휘어져 버렸다.

별안간 세상이 뒤집어졌다.

딛고 있는 바닥에 안심할 수 없는 삶이란 그 자체로 모든것이 다 흔들려버리는

끔찍한 공포다.

그 공포를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포항 사람들이다.

일년 전에 겪었던 악몽에 다시 빠져들고 있는 경주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아버린

우리 모두가 그런 심정이다.


내가 사는 곳은 포항이 아니니까, 원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국토의 절반이 분단된 좁은 땅덩어리에 4천만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어디도 재난에 안전한 곳은 없다.

규모 5.4가 넘는 지진으로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여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에도 한수원은 원전은 이상없이 모두 정상 가동되고 있음을 발표했다.

지금 정상가동 되고 있다는 것 보다,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얼마나 대비되어

있는가를 지진 영향 구역에 있는 원전부터 가동을 멈추고 정밀하게 살펴야

하지 않을까.

수도권까지 지진파가 느껴졌는데 겨우 수십킬로, 백여킬로 떨어져 있는

원전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자투리 땅마다 필로티로 빌라가 들어서고 있는 우리 동네를 보면서

필로티 건물이 지진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나버린 포항의 모습이

겹친다. 주차장으로 쓰기 위해 공간을 비우고 군데 군데 철골 기둥을 세워

그 위에 벽체를 올린 빌라들을 볼때마다 늘 불안했었다.

1층부터 벽체를 올린 건물들은 그나마 지진이 났을때 같이 흔들리다가

다시 자리를 잡는다고 하지만 필로티 건물은 철골이 휘어지기 쉽다고 한다.

이번 지진에도 많은 필로티 건물들이 벽채를 바치고 있는 기둥들이

휘어지거나 무너져서 결과적으로 건물 전체가 붕괴위험에 빠진 경우가

많았다.


당장의 편의를 위해 우리가 바꿔온 것들, 설마 건물이 흔들리는 지진까지

일어나겠어.. 하는 안이한 생각들, 안전을 고려한 설계와 꼼꼼하고 치밀한

건축보다 건설비를 아끼면서 외관을 화려하게 하고, 빠른 속도로 완공하는 것을

선호했던 우리의 모든 욕심들속에 숨겨져있던 위험들이 이번 지진으로 낱낱이

우리 눈앞에 드러났다.  더 이상 외면할 수도 빠져나갈 수 도 없다.


지진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기고, 대한민국 어디나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고 모든 판을 다시 짜야 한다.

화려하고 멋진 건물보다 내진 설계가 잘 되어있고, 비상시에 탈출이

용이한 건물을 지어야 한다. 낡고, 오래되고, 취약하게 세워져 있는

많은 건물들을 점검하고 대비책을 세워놔야 한다.


경주에 세워지고 있는 방폐장, 건설 재계가 결정된 신고리 원전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 충분히 충분히 안전한가, 만약 큰 지진이

발생해도 견딜 수 있는가,  단층이 계속 활성화되고 크고 작은

지진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면 그 곳에 계속 건설하는 것이

옳은가까지 면밀하게 살펴서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다.


몸이 흔들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동작을 멈추고 중심을 찾게 된다.

사회 전체가 흔들리는 이번 사태에 필요한게 바로 그 중심이다.

모든 것을 멈추고 내가 제대로 설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흔들릴때 그것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은 없다.

대한민국이 크게 흔들렸다. 충격과 공포와 고통도 크지만

그것에만 압도되지 말자.

정신을 차리고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을 해 나가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대피소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날로 추워지는 이 계절에 삶의 기반을 잃고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으로 돌보고, 보살펴서 다시 안전하게

일상을 이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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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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