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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충격속에 빠뜨린 살충제 계란 사건이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터져나왔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달걀이 생산된 것으로 드러난 해외 국가에서 수입된

달걀 원료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농가에서도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것이다.

과연 그 농장만의 문제일까. 게다가 이 농장은 '친환경 인증 농가'였다니

소비자는 과연 무엇을 믿어야 할지 기가 막힐 뿐이다.

친환경 농가에서 생산하는 계란이 전체의 80-90%를 차지해 왔다는데 그런 농가에서

이렇게 독한 살충제를 사용해 왔다면 도대체 '친환경'의 인증 기준은 무엇인가.

생각할 수록 화가 나고 어이가 없다.

얼마나 많은 농장들이 문제가 된 살충제를 사용해 왔는지, 언제부터 얼마나

사용해온 것인지, 얼마나 광범위하게 유통된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이 문제가

제2의 옥시 사태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마저 밀려온다.


아이들 키우는 집 치고 계란 반찬에 의지하지 않는 집이 있을까.

나도 세 아이 키우는 동안, 그리고 지금도 역시 날마다 계란을 먹여왔다.

바쁜 아침 시간에 계란 후라이에 비벼 먹는 밥 한 공기, 볶은 김치와 김가루까지

넣어 비벼먹는 밥을 아이들은 매일 먹어도 좋아했다.

이번 사태가 심각한 것은 이처럼 매일 먹는 음식이 오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매일 먹는 음식마저 믿을 수 없다는 이 기막힌 현실 속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매 끼니를 챙겨 먹여야 한다. 망연자실하고 욕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으니 가습기를 안 쓰면 되고, 살충제가 나왔다니

당분간 달걀 반찬을 안 올리면 되는 것일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달걀 원료가 들어가는 가공식품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다. 아이들이 먹는

대부분의 과자, 빵, 밀가루 음식을 비롯 수많은 외식 메뉴에도 달걀이 들어간다.

달걀만 안 사먹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그 모든 음식들을 끊을 수 도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제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

험하고 모진 세월은  안이하고 생각없이 살아오던 일상의 관성을

깨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때야말로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해야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식탁까지 오는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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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 중 계란을 제일 좋아하는 여덟살 막내를 불렀다.

"이룸아, 살충제가 뭔지 알아?"

"벌레 죽이는 약이요. 나쁜 벌레들"

"그래, 맞아. 벌레들을 죽이려면 아주 센 약을 뿌려야 하는데 우리가 먹는 달걀 속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왔대. 닭들 몸에도 진드기나 이같은 해충들이 사나봐.

우리집 닭들은 닭장 안에서 맘대로 돌아다니면서 부리로 털 속에 들어있는

벌레들을 잡아 먹을 수 있고 흙 목욕도 할 수 있는데 좁은 닭장 안에서 살면서 평생

알을 낳아야 하는 닭들은 그럴 수가 없나봐. 그래서 살충제를 뿌리는데 그 살충제가 닭 몸에

묻기도 하고, 사료에 섞여서 닭이 먹기도 하면서 닭이 낳는 계란 속에서도 나온 거야.

그렇게 살충제가 들어있는 달걀을 사람이 먹게 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 건강이 안 좋아져요"

"맞아. 왜냐하면 달걀은 사람들이 아주 자주 먹는 음식이거든. 우리도 매일 먹잖아.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건지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닭들을 '밀집 사육'하기 때문이래. 밀집 사육이 무슨 말인지 아니?"

"음.. 막.. 좁은 데다가요, 닭들을 아주 많이 집어 넣어서 키우는 거요"

"그렇지. 우리가 자주 쓰는 요 A4지만한 틀 속에서 닭들이 사는데 몸을 움직일 수 도 없어.

얼마나 힘들겠어. 몸이 힘드니까 면역력도 약해지고 해충을 스스로 물리칠 힘도 없어지고..

이번에 문제가 된 성분이 '피프로닐'이란 건데 너무 독해서 원래 닭한테는 쓰면 안되는

거였대. 독성, 즉 나쁜 성분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냐면 '중간 독성' 정도로 분류된다는데

중간이라 안 나쁜 게 아니라 이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을 계속해서 먹게되면

자꾸 자꾸 몸에 쌓여서 건강이 아주 나빠질 수 도 있대"


이룸이는 닭들을 키우는 케이지의 넓이인 A4지 크기의 연습장을 들고 오더니

한숨을 쉬었다. 닭 한마리가 평생 살아가는 공간의 그 작음이 단번에 느껴진 것이다.

"엄마가 이룸이한테 젖을 먹일 때 엄마가 막 나쁜 음식을 먹게 되면 엄마가 먹는

음식으로 만들어지는 젖도 안 좋아지겠지. 그래서 젖 먹이는 동안에는 술도

안 먹고, 커피도 안 먹고, 인스턴트도 되도록 안 먹고 조심했어. 좋은 젖을

먹이고 싶어서... 그것처럼 알을 낳는 닭들도 좋은 사료를 먹고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야 건강한 알을 낳을 수 있는 거거든.

그런데 이렇게 좁은 곳에서 자라지, 해충은 자꾸 꼬이지, 얼마나 힘들겠어.

해충을 없애기 위해 독한 약까지 뿌려대니 건강한 알을 낳을 수 없는 거야.

또 한가지 문제는 '잔류허용 기준'이라는 건데, 말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잔류'는 남아있다는 뜻이고 '허용'은 그래도 된다는 뜻이고, '기준'은 얼만큼까지가

안전한 건지 정한다는 뜻인데 달걀 속에 나쁜 성분이 어느 정도 까지 들어가도

괜찮은 건지 정해져 있지가 않대. 기준이 있으면 달걀을 살펴서 그 기준을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 금방 알 수 있잖아. 그러면 안 좋은 달걀은 안 팔면 되는데

지금까지는 달걀에 어떤 성분이 얼만큼 남아 있는지도 알 수 가 없대.

그럼 위험한 달걀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뜻이지."

이룸이는 연습장에 열심히 이해한 내용들을 적어 넣었다.

"엄마, 우리는 닭을 키우고 있어서 안전한 달걀을 먹을 수 있으니까 정말

다행이지요."

"그래, 그래서 아빠가 애써가며 닭장을 관리하시는 거야.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닭을 키워서 알을 먹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마트에서 사 먹는 달걀들이 안전해야지.

더 건강한 달걀을 만들어 내도록 자꾸 요구해야 하고,  어렵게 정한 기준들이

잘 지켜지는지 열심히 살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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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달걀로 시작된 공부는 광복절의 의미와 일제 시대때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 버스에 설치되었다는 평화의 소녀상에까지 닿았다.

이룸이의 연습장에는 '피프로닐'이란 단어와 '잔류허용 기준'이란 어려운 단어들 옆에

의자에 앉아 있는 평화의 소녀상까지 예쁘게 그려졌다.


한반도에서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무시무시한 얘기들이 오가는 세상에

이제 매일 먹는 달걀까지 살충제로 오염되었을지 모른다는 기막힌 소식들까지

더해지는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하면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나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란다. 이런 세상이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지켜내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애써야 한다.

내 자리에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공부'가 아닐까.

나 하나가 애써도 세상의 모든 비극과 전쟁의 위협과 사회의 모든 악들을

없앨 수 는 없지만 내가 조금 현명한 소비자가 되고, 내 아이들이 올바른

식품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읽어내는 눈을 갖고 옳고 그름을 분별해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면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변화들을 이끌어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방학때 틈틈이 아이들과 신문을 읽었다.

중요한 사건들은 인터넷에 들어가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서로의 생각을 묻고, 저마다 제 나이만큼 이해하는 것들을 듣기도 하고

조금 더 아는 사람이 설명해 주기도 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함께

배워 나갔다.

학습지보다, 학원에 빠지지 않는 것 보다,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앞서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공부란 이런 것일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잘 알아가는 공부 말이다.


당분간 살충제 달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정확한 내용들이

어떻게 밝혀져서 개선될 것인지 아이들과 지켜보며 계속 공부해가기로 했다.

험한 세월을 살아가는 힘은 '공부'다.

노력해서 알아가는 만큼 우리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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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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