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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부터 우리 가족은 매년 마지막 날 서로에게 상장을 수여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자신을 뺀 네 명의 가족에게 각각 자신이 생각해서 만든 상을 주는 것이다.

상장이래야 색지에 크레파스나 싸인펜으로 글씨를 쓰고 더러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고작이지만 상장 이름이 은근 기대도 되고 궁금하기도 한게 기다렸다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2016년이 마지막 날은 하루 종일 집안이 시끄러웠다.

전날 송년회로 남편도 나도 고단했고, 1월 1일 신정 친정모임이 우리집에서

있어 22명이 모이는 큰 행사를 위해 청소며 정리며 내가 맡은 요리준비까지

마음과 몸이 고달픈 나는 아이들에게 폭풍 잔소리를 퍼부어 댔으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마누라가 못마땅한 남편은 화를 꾹 참고 있고

그 와중에 아들과 한바탕 싸움까지 하게 되어 분위기가 아주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가족상장수여식은 중요한 행사라 부랴부랴 상장을 만들고

딸들은 아기자기한 물건들과 간식들을 늘어 놓고 식탁을 차렸다.

모처럼 벽난로도 지피고 다들 둘러 앉았다.

한 사람씩 가족들에게 상장을 수여하는데 아들의 순서가 되었을때

사실 그 전에 싸운게 있어 마음이 조금 조마조마했다.

역시나 아들은 내게 '잔소리의 제왕상'을 주었다.

 

2016 가족상장수여식 5.jpg

 

'잔소리의 제왕상'

 

- 위 사람은 평소 아이들에게 사랑과 애증이 담긴 잔소리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상을 드립니다. -

 

예상은 했지만 '잔소리의 제왕상'이라니....

이 상장을 준 아들은 무려 1년전 이날엔 나에게 '현모양처 상'을 주어 나를 감격시킨 장본인이었다.

열네살이 되더니 부쩍 까칠해지고, 대들고, 예민해진 녀석과 무던히도 많이 부딪치며 지냈다.

아이카 클 수록 잔소리를 줄여야 하는데 노파심도 같이 커지다보니 결국 잔소리의 제왕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녀석에게 '으뜸 성장상'을 주었다.

-필규는 올해 중학생이 되어 어려운 공부와 고단한 일정을 열심이 따라주었고

키도, 몸도 생각도 놀랄만큼 자랐기에 자랑스러운 마음과 뜨거운 사랑을 담아

이 상을 드립니다 -

 

남편이 아들에게 준 상은 '버럭버럭 상'이었다.

- 1년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 하였으며 아직은 조금 서툴지만 즐거운 하루를

지켜내는 마음을 알기에 정유년 한해는 버럭버럭 하는 모습이 다정다감한

오빠의 모습으로 기대하는 뜻에서 이 상을 드립니다 -

 

대들고 큰 소리치고 버럭거리는 아들이라도 아끼고 대견해하는 아빠의 마음이

고스란하다.

 

2016 가족상상주여식 3.jpg  

 

나에게는 잔소리의 제왕상이었지만 남편에게 아들이 준 상은 '아낌없이 주는 상'이었다.

- 위 사람은 자녀들에게 뭐든지(잔소리, 사랑, 원한는 것 등등....) 아낌없이

주었기 때문에 이 상을 드립니다 -

 

흥! 남편은 아이들, 특히 아들에게 아주 후하다.

아들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다 남편이 사 준다.

나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거절도 하고, 설득도 하고,

미루기도 하지만 남편은 그런 법이 없다보니

아이들이 모두 엄마보다 아빠를 더 관대하게 여기는게 당연하다.

심지어 윤정이도 아빠에게는 '산타클로스 상'을 주었다.

 

2016 가족상장 수여식4.jpg

 

- 위 사람은 우리라 해달라는 걸 거의 다 해줘서 산타클로스 상을 드립니다' 란다.

매일 제일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내면서 부딛치는 엄마보다 밤 늦게 들어와서

아이들이 기대했던 선물들을 내미는 남편에게 더 후한 점수가 가는 것은 당연하다.

내용을 서로 비밀로 하고 만든 상장인데 아이들이 보는 관점들은 어찌 이렇게

비슷한지 살짝 억울했다.

 

윤정이가 내게 준 상은 '행복한 눈,코,귀 상'이었다.

-위 사람은 맛있는 요리를 하여 눈,코,귀를 행복하게 해 줘 이 상을 드립니다-

 

흠.. 이 상은 맘에 쏙 든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늘 사랑해주는 고마운 딸의 마음이 전해졌다.

새해에도 열심히 만들어야지.. 기운이 났다.

 

필규가 윤정이게 준 상은 '노래와 춤 상'이었다.

방과후 활동으로 방송댄스와 우크렐레, 바이올린을 하면서 즐겁게 열심히

애쓴 동생을 인정하는 상 이었다.

남편과 내가 윤정이게 준 상은 '반짝 반짝 햇살 품은 상'과 '고마운 딸 상'이었다.

세 아이들 중에서 제일 건강했고, 부모를 제일 많이 이해해주는 맏딸에 대한

애정을 담은 상이었다.

윤정이는 뿌듯한 표정으로 상을 받았다.

 

2016 가족상장 수여식5.jpg

 

이룸이는 아빠에게 '회사상'을 주었다.

-매일 새벽의 일어나서 회사가니가 수고해요. 사랑해요'라고 적었다.

자고 일어나면 출근해 있는 아빠의 수고를 아는 것이다.

나에게는 '청소상'을 주었다.

- 매일 집을 청소해줘서 고맙고 사랑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쓰여 있었다.

피곤해도 매일 거실과 방마다 걸레질을 하는 엄마를 위로해주는 상이다.

오빠에게는 '돌봄상'을 주었다.

-개를 돌봐주고 개가 오빠을 좋아하고 난 오빠 너무 너무 사랑해.

새해 복많이 받아'라고 썼다.

 

오빠를 좋아하는 막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룸이가 받은 상에는 막내를 향한 가족들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아빠에게는 '늘 놀라움상'을, 오빠에게는 '항상 즐거운 상'을

언니에게는 '아기 맥가이버상'을 받았다. 나는 막내에게 '최고 이쁨상'을 주었다.

언제나 기발한 표현으로 가족을 즐겁게 해 주고 많은 면에서 재능을 뽐내는

막내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가득 담긴 상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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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까지 다들 고단하고, 투닥거리고, 삐지고, 다독거리면서 한 해를 마감했다.

새해에는 열 다섯살이 되는 아들과 열 한살이 되는 큰 딸, 그리고 여덟살이 되어 드디어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는 막내까지 세 아이와 펼쳐갈 날들이 어떻게 채워질지

기대가 크다.

 

본격적인 50대에 접어든 남편과, 50을 향해가는 내가 가꾸어갈 부부간의 이야기에도

마음을 모을 생각이다.

 

1년 전과 변함없이 모두가 한 자리게 같이 있고, 크게 아프지 않은 것이 제일 고맙다.

 

2017년 마지막 날에도 조금 더 변한 모습이지만 여전한 애정과 건강함으로 이 자리를

빛 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에 늘 따듯한 관심을 보내주는 독자들과 베이비트리 모든 식구들에게

진심으로 뜨거운 사랑을 보낸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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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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