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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이 끝나는 오후 2시.
유치원 문 앞은 아이들을 데리러 온 엄마들의 유모차와 자전거, 차들로 북적거린다.
많은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사이로 엄마를 향한 아이들의 외침과도 같은 말들이
귀에 와서 꽂힌다.

"나, 00랑 같이 걸어갈래!"
"엄마, 오늘 00랑 놀고 싶어."
"00네 집에 가면 안돼?"

엄마들의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유치원이 끝나는 오후 2시부터 저녁시간까지.
이 애매한 시간을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뭔가를 하느냐,
아님 이것저것 귀찮으니 다 생략하고 아이와 단둘이 집으로 직행해 지지고볶으며
저녁까지 시간을 보내느냐.
5살 때 까지만 해도 둘째 아이는 유치원이 끝나고 나면, 나랑 둘이서 장도 보러 가고
동네 서점에도 들렀다가 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누나가 오기를 기다렸다.

3,4시쯤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같이 간식도 먹고 놀기도 하던, 그런 좋은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누나는 올해  5학년이 되면서 자기 또래 친구들 세계에 푹 빠져 지내느라
6살 동생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둘째도 이제 홀로서기를 할 때가 온 것인가.
한동안 적응을 못 하고 짜증과 떼쓰기만 늘어 엄마를 힘들게 하던 둘째는
이래선 안되겠다 마음먹은 건지,
언제부터인가 유치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 약속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00랑 놀기로 약속했어!"
"00가 오늘, 자기 집에 놀러오래. 유치원 오른쪽으로 신호등 두 번만 건너면 된대."
"오늘 우리집에 친구 오라고 하면 안돼?"

하...... 아이들의 약속은 말 한마디면 될지 모르지만
어른들의 약속은 보다 복잡하고 디테일한 여러 단계를 거쳐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6살 아이가 알 리가 없다.
음... 어... 저... 다음에... !
쉽게 답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에겐 답답하게만 보일 것이다.

이런 어정쩡한 시간들을 제법 보내고 난 뒤,
아이와 친구, 그 친구의 엄마와 내가 한 세트처럼 잘 맞는 관계를 찾게 되었다.
아이들도 동갑, 엄마들도 동갑인 친구같은 관계.
아이가 둘 다 막내다 보니,
첫아이 때처럼 필요 이상으로 애쓰며 노력하거나 크게 기대하는 것 없이
적당히 돌보고 적당히 아이들을 방목(?)하는 육아 스타일이 잘 맞아서
요즘은 아예 품앗이 육아로 하루는 친구네 집에서, 하루는 우리집, 이런 식으로
서로 아이를 맡아주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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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둘이지만, 아이들은 끊임없이 놀이를 찾아가며 논다.

게임과 동영상 없이도 하나의 놀이에서 다른 놀이로. 

놀 때의 안전이나 먹을 것 정도만 챙겨줄 뿐, 아이들 사이에는 거의 끼어들지 않지만

몇몇 한정된 장난감만 가지고도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놀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스럽게 놀랍다. 허접한 놀이라 하더라도, 아이들 스스로가 규칙을 정하고

상상을 더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데 그런 놀이의 과정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놀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스스로 배우는구나! 싶다.


베이비트리를 통해 알게된 이불터널놀이는 두 아이의 단골 놀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않는데, 로봇을 좋아하는 두 아이가 저 안에만 들어가면

가정적인 놀이 모드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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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들 못지않은 남자 아이들의 수다를 한 귀로 들으며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는데 이날은 빵을 만들었다.
정신없이 놀다가 빵굽는 냄새를 맡은 아이들은
5분마다 한번씩 부엌에 와서 오븐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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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다 굽히길 기다리는 동안, 잠깐 인터넷을 열어보았을 때

그땐 세월호 사고 수습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라,

아이들을 잃은 엄마들이 바다를 향해 피자와 햄버거를 차려두고

울먹이는 기가 막힌 사진과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빵이 다 구워졌다는 오븐의 신호음이 났을 때,

따뜻한 빵을 꺼내 바다에서 아직 구출되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햄버거를 만들어 보았다.

소박하고 약간 촌스러운 맛이 나는 햄버거지만, 한창 식욕이 왕성했을 그 아이들에게도

이 수제 햄버거를 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순간을 느낄 때마다 뭔가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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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세계에 흠뻑 빠져 놀다

우르르 몰려와 무언가를 먹는 아이들만큼 이쁜 모습이 또 있을까.

친구가 있어서 더 좋고, 친구와 함께 먹어서 더 맛있는 법.

아들은 자기가 먹던 걸 멈추고 친구가 즐겁게 먹는 걸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치고는 씩-  웃는다.


친구가 돌아간 뒤, 목욕을 하고 난 저녁 시간.

마침 TV에서는 일기예보가 방송되고 있었다.

화면 위의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가 갑자기 나에게 묻는다.

"엄마, 00(오늘 같이 논 친구)네 집은 저 지도에서 어디 쯤이야??"


고작 200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진 친구네 집인데,

아이는 지도 위에서 찾아 확인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일이면 곧 다시 만날텐데 .. 친구가 그렇게도 좋니?!


둘째 아이에겐 친구라는 존재와 그 친구와 함께하는 놀이, 시간이

이제 엄마품보다 더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다.

아이의 사회성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그런 시기 말이다.

아이 친구의 엄마와도 적당히 가깝게, 때론 적당히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에

엄마인 나도 아이도 방과후 시간을 건강하게 보내고 있어 무척 다행스럽다.


요즘은 부쩍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엄마 한 사람을 위해서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언제든 놀러와주고, 또 놀러 갈 수 있는 친구네 집이 있다는 건

아이와 엄마의 일상에 얼마나 큰 안정감을 안겨주는지..


애써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내어 살아보자고 날마다 나 자신을 달래고 있지만,

요즘은 어쩐지 사는 재미가 없고 쉽게 무기력해 지는 것 같다.

게다가 날씨까지 습하고 툭하면 비가 오질 않나.. 나만 이렇게 마음 조절이 힘든건가.

이런 하루하루 속에서, 잠시 몇 시간만이라도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품앗이 육아는 일상의 숨통을 탁 트이게 해 준다.

나에겐 너무 고맙고도 소중한, 이런 잠깐의 여유를

아이 친구의 엄마도 안심하고 누렸으면 하고 바래본다.

슈짱 엄마! 늘 고마워요. 이사가지 말고 우리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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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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