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를 보도하는 한 프로그램에서 이런 얘기가 있었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도 있고
부모를 잃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도 있지만,
자식을 잃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없다 ..

그만큼 아프고 끔찍한 일이기 때문에 영어나 우리말에도
자식을 잃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없다고 한다.
일본어로도 그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렇듯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일을 너무 많은 부모가 겪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사고 이후로 정부의 무능한 대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슴 아프기만 한 건,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잃은 부모님들의 슬픔이다.

어느 때부턴가 사람과 생명을 먼저 생각하지 않게 된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 앞에
아이들과 연관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엄마들의 한숨은 깊어졌다.
이번 세월호 침몰소식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나는 또 한 엄마의 글을 읽으며 참 많이 울어야 했다.

육아와 살림을 참 똑.소리나게 하는 엄마가 있어, 그의 블로그에 자주 놀러가곤 하다
얼마전부터 올라오는 놀라운 제목의 글들을 읽게 되었다.
평범한 주부의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올리기 위해 시작했다는 그의 블로그에
원내 폭력, 피해아동, 가해아동이란 단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가 특정 아이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었음에도
원내에서는 피해를 당한 아이가 오히려 문제가 있어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사실이 정반대라는 증거를 피해 아동측에서 명확히 제시를 해도
원측에서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가해아동을 감싸는 식으로 대처했다고 한다.
같은 유치원 엄마들도 "아이 인생 생각해서" 게시글을 내리라며
피해 아동의 엄마를 비난했다 한다..

그저 예쁘게만 살고 싶었는데
그것조차 쉽지않은 세상이네요..

이제 겨우 6살 아이를 둔 엄마가 이번 사건을 겪으며 쓴 글이 너무 가슴아팠다.
세월호 사고로 고통받는 엄마들의 모습과 겹쳐져 더 절망스러웠다.
고통받는 아이를 곁에서 느끼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은데
피해 부모들을 상처입히는 오해와 막말 그리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어려움에 처한 아이와 엄마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외면하는 현실이 끔찍하게 와 닿았다.

힘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당하는 게 당연한 사회
자기 이익과 관련이 없으면 남일보듯 하는 사회
모두가 경쟁자고 적이니 나만, 내 가족만, 내 측근만 잘 챙기려는 사회 ..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도 침몰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사회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시민으로서의 우리의 잘못은 없었을까.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남보다 내가 먼저, 남의 아이보다 우리 아이가 더.. 하는
욕심으로 사회의 모순에는 점점 둔감해진 건 아닐까.
교육과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을
엄마들이 개인적으로만 풀려고 하지않고
함께 연대해서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왔다면
공교육의 장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일궈왔다면
지금의 엄마들과 아이들이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정말, 한국 엄마들의 큰 연대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함께 힘을 모아 아이들을 지키려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학교와 부모, 지역사회의 노력에 대해 알려주신 분의
글에서처럼 나부터 그런 사회 시스템 구축에 참여해야 한다.

작년부터 나는 큰아이가 다니는 일본 초등학교 학부모회의 임원을 맡게 되었다.
등교길 안전을 위해 일본 초등학생들은 아침에 집단 등교를 하도록 되어있는데
내가 사는 동네 초등부 아이들의 인원점검 및 관리, 등교길 안전 지도,
피난훈련 시의 하교길 지도 등이 내가 학부모로서 맡고 있는 일이다.

DSCN2462.JPG

작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오면서 얼떨결에 맡게 된 이 임원 일이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
마음 고생도 많이 하고, 아직 어린 둘째가 있어 몸도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임원을 맡고있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엄마들도 자발적으로 등교길 교통 정리를 돕거나
눈비가 오고 태풍이 오는 날은 비옷을 입고 아이들의 등교길에 따라나서 준다.
아빠들도 시간여유가 있을 때는 이 일에 함께 참여하고
지난 겨울, 폭설이 내렸을 때 젖먹이 아기를 업은 엄마들까지 삽을 들고 나와
아이들의 등교길에 쌓인 눈을 묵묵히 치우던 모습은 아직까지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임원이 아니라해도 아이들 안전과 연관된 일이면, 극성스러울만큼 어디든 따라나가
길 건너는 걸 도와주고 자기 아이든 남의 아이든 상관없이 돌봐주는 엄마들이 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처음에는 꼭 이런 일까지 해야하나.. 싶었던 내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비롯한 같은 동네 아이들이 엄마들의 이런 일상적인 노력으로
안전한 등교문화가 정착되어 가는 걸 확인하게 될 때의 안심감과 보람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일본 학교 학부모회 엄마들의 자부심 가득한 표정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도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학교 일의 상당부분을 부모들이 자원봉사로 맡아서 오랜 세월 해온 결과,
일본 사회에서 학교와 학부모는 거의 동등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학부모 정기총회에 참석해 보면, 교사들보다 학부모의 위치가 더 위가 아닐까 싶을만큼
선생님들이 학부모들 눈치를 보기도 한다.
아이들의 전반적인 교육을 위해 책임과 역할을, 학교와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고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들을 매 순간 점검하고 보강해서 체계화시켜가고 있다는
자신감이 일본 학부모들에겐 있다.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 봉사, 정성을 다해 학교 활동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상적인 연습들이 지진과 같은 재해 시에, 몸에 익은 그대로 재현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기가 막히고 안타깝기만 한 세월호 사고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가 크게 배우고 성숙하기 위해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정부의 책임을 정확하게 묻고 사고 수습을 끝까지 지켜보는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우리 모두의 성장을 위해서는 시민들도 각자 책임을 나눠가져야 한다.
속옷 바람으로 침몰해가는 배에서 허겁지겁 탈출하는 선장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무한 반복되는 걸 지켜보며 외국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한국 사회의 성장과 한국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이 영상 하나로 무참히 무너져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새로운 소식들이 전해질수록 한국과 한국인은 이제,
책임감이 없는 사람, 안전에 대해서는 원시인 수준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나라로
인식되어져 가고 있다. 나 개인이 한 일이 아니라 해도 외국에서는 한국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세월호 사고를 금새 떠올리고 연관지어 생각한다.
억울해도 할 수 없고, 나 개인이 어떤 오해와 피해를 겪게 된다 하더라도
같은 한국인으로서 감당하고 함께 헤쳐나갈 수 밖에.
 
다만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
너무나도 추악한, 어른들이 만든 사회를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수많은 어린 생명을 빼앗고 상처만 남겨주는 것 같아 참담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될지 몰라 허둥지둥하는 마음이지만,
우선 내가 맡고 있는 동네 아이들의 안전부터 열심히 지킬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려 한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함께 반을 이루어 등교를 하며
고학년이 어린 1,2학년 아이들의 안전을 함께 돕고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엄마들이 감동한 일이 있었다. 등교길 안전 외에도
아이들이 서로 배려하고 도우며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한 결과였다.
아이들 스스로도 위기 상황이 찾아오면 무력하지 않고, 자기의 역할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동네 엄마들과도 서로 돕고 원만하게 지내는 일상적인 교류와 방법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볼 생각이다.
 
한국에서도 이제
아이들의 성적과 공부를 위해서만 모아왔던 엄마들의 에너지를
좀 더 크게 모아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쓸 수 있는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제도와 사회의 성숙과 함께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의 변화도 함께 따라야 하지 않을까.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사회적 엄마를, 큰 소리로 불어내어
소중한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의 힘을 보태자.
그렇게 모은 힘으로 안전 사고 뿐 아니라, 아이들이 다니는 기관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따돌림이나 크고 작은 폭력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가자.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고 나면,
남일이라 여겼던 이 모든 일이 나의 현실로 곧 찾아올 날이 있을 지도 모른다.

진도에서는 아직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울고있는 엄마들이 있다.
우리 엄마들의 연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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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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