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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 숙제로 누나가 붓글씨 쓰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

"우와~ 누나, 잘 쓴다!!!  나도 학교가면 이렇게 할 수 있어?"
"음.. 넌 .. 옷이나 안 버리면 다행일 거 같은데?!"

또래보다 좀 더 야무진 만 열 살 누나와
또래보다 많이 늦은 만 다섯 살을 코앞에 둔 남동생.
이 둘의 요즘 일상적인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본격적인 3.5춘기에 들어서면서 매사에 냉소적으로 되어가는 누나는
철부지 동생을 늘 이렇게 말로 무시하거나 뭉개버리기 일쑤다.
사춘기가 가까워지면 후각도 예민해지는 건지, 누나는 동생에게 "냄새난다"는 말도 참
자주 한다. 그도 그럴것이, 노는데 한번 집중하면 화장실가는 걸 까먹거나 너무 오래 참아
오줌을 찔끔, 속옷에 자주 지리는 동생에게서 나는 묘한 냄새는 여자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향기 .. 그럴 때마다 누나가 외치는 한 마디, 
"난 여동생이 갖고 싶었다구!!!"

이런 누나가 가끔은 싫어지기도 할 듯 한데, 온갖 무시와 굴욕에도 불구하고
누나에 대한 남동생의 외경심(?)은 나날이 깊어만 간다.
좀 더 옛날에 태어났다면 '몽실언니' 같았을 지도 모르는 그의 누나는
실은 말로만 툭툭거릴 뿐,
동생에게 어떤 요구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훌륭한 해결사가 되어주기에..
집안에 있는 모든 장난감과 책, 도구들을 이용해 함께 놀아주는 누나는
어린 동생에게 그야말로 명품 놀이교사와도 같아 보인다.
다섯 살과는 비교도 안되는 고난이도의 언어를 구사하며 상상의 놀이세계로 안내하고,
레고 블럭으로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마을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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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할 새도 없이 누나만큼 야무지고 유쾌한 친구들을 데려와
언제든 놀이에 끼워주기 때문이다. 그가 있는 자리는 언제나 그녀들의 가.운.데.
그 위치를 잘 유지하지 않으면 언제 놀이에서 제외될지 모르니,
그의 자리차지를 위한 노력은 거의 필사적이다.
큰 상자들을 연결해 집을 만들거나 하는 공사에 가까운 공작놀이도 다 누나들이 있어 가능한 일.
상자로 만든 집에 페트병 뚜껑으로 손잡이를 만들고 귀여운 우편함까지 달아 대문을 완성하는,
섬세한 누나들의 손놀림에 비해 동생의 손은 ...
닿기만 하면, 부서지고 파괴시키는 마법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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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께서 30년동안 고이고이 보관해오신, 아빠가 어린시절 좋아했던
울트라맨 주제곡들이 담긴 LP판을 ... 동생은 작년 만 4살 생일 때 받았더랬다.
뛸듯이 기뻐하며 집에 가져와서 턴테이블에 올려 들은 게 고작 3일!
3일만에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부수고 만 실력의 소유자..
30년이란 긴 세월과 단 3일간의 짧은 부활의 시간을 가진 레코드 ..
그 뒤로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래서 CD가 발명된 거겠지;;
가족 모두의 한숨이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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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영향력을 거의 절대적으로 받던 만2세 무렵까진
이 남동생의 취향이 가끔 의심스러운 적이 많았다.
주방놀이 장난감 앞에서 중얼거리며 오랫동안 요리를 하거나
누나가 아끼는 인형을 데리고 놀거나 포대기로 자주 업기놀이를 하면서
엄마처럼 작은 가방을 들고 수퍼에 가는 흉내를 내곤 했더랬다.

요즘도 가끔 누나가 이렇게 만들어놓곤 하는데, 은근히 즐기는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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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주에 만5살 생일을 맞은 남동생은
강하고. 크고. 엄청 무겁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세계의 것들이라면 무조건
동경하는 남자 어린이의 세계로 접어든지 이미 오래 되었다.
밥 먹으면서도  "엄마, 이거 먹으면 근육 생겨요??"
"이것 봐! 고기 먹으니까 팔이 단단해졌어. 누나, 만져봐!"
진지한 그의 물음에 응,응, 진짜 단단해졌네. 하며 건성으로 답해주는 식구들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밥을 먹는 내내, 팔뚝이나 가슴을 자주 만져보며 확인하는 그는
아주 심플한 영혼의 소유자..^^

엄마 아빠에겐 아직도 작고 귀엽기만 한 둘째지만.
아들은 요즘 부쩍 자신이 동경하는 세계를 찾아 떠나고 있는 것 같다.
멋지고, 강하고, 싸움놀이가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그런 남자 어린이의 세계로.
오랫동안 그의 곁을 머물던 누나의 향기를 벗어나
진짜 남자의 향기가 그에게서 풍겨나는 시기가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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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퍼에 장을 보러 가면, 무거운 장바구니를 나한테서 뺏듯이 들며 이런다.
"엄마, 이건 내가 들께!"
음.. 쫌 멋있네?!   딸 키우면서는 못 겪어봤던 기분인 걸.
근데, 아들이 내 장바구니를 가로채듯 들고간 진짜 이유는 자기가 젤 좋아하는 과자가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란 사실을 약 3초 후에 깨달은 뒤, 좀 씁쓸..

아무튼 아들은 그렇게도 기다리고 벼르던 만5살의 생일을 맞았다.
4에서 5가 되는 날을 그토록 간절하게 바랬던 건,
다름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 케잌을 먹고 싶어서..
아니 케잌보다 그 위에 장식된 장난감이 갖고 싶은게 더 큰 이유겠지만.
어떤 목적이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가장 강렬하게 내적 동기를 발동시키는 그..
딸과는 다른 아들의 세계, 여자와는 다른 남자의 세계를,
나는 세상에 태어난 지 5년밖에 안되는 아들을 통해 매일매일 배우고 있다.

생일 하루 전날밤, 아빠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한 살 더 먹었으니까, 자기 전에 장난감은 다 치우고 자야지~"
아들이 냉큼 답하기를,
"아냐, 한 살 더 먹으려면 아직 하루 남았으니까 안 치워도 돼!"
캬... ...
남편과 나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저럴 때 보면, 제법 똑똑한 거 같은데, 왜 아직 숫자도 제대로 모르는 거야??"
"내 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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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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